영수회담 역사는
여야 영수(領袖))회담은 말 그대로 여당과 야당의 정치 우두머리가 만나 각종 정치현안을 논의하고 해법을 찾는 자리다. 과거 ‘정치 불통’의 3공화국 때도 이철승, 김영삼 등 야당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을 정도로 영수회담의 역사는 길고 오래됐다.
외국에서는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골프 회동을 갖는 등 영수회담은 정치 타협과 협의를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영수 회담은 특정 장소를 정해놓지는 않지만, 주로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청와대에서 열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최근 기록만 놓고 보면 김대중 정부하에서 영수회담은 연 1회 이상 모두 일곱 차례 열렸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98년 11월 사정정국 이후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만나 경제청문회 개최와 정치관계 입법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 등 6개항에 합의한 것을 비롯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01년 의원 이적 파동 등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영수회담을 열어 해법을 모색했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로 접어들면서 그 회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보스정치 타파와 정치 개혁을 위해 당ㆍ청 분리가 필요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기본 인식으로 인해 야당 대표와의 회동도 뜸해 진 것이다.
노 대통령 때는 2005년 9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2007년 2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 정도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같은 영수회담 퇴조 현상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5월과 9월에 각각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회동했을 뿐 더 이상의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탈여의도 정치를 펴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도 여야간 갈등으로 국정이 마비되는 사례가 빈번한 국내 정치현실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잦을 수록 좋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평이지만, 노무현 대통령 이래 영수회담은 정치 이벤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영수회담의 빈도가 낮아지면서 최근에는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맡던 시절에는 영수회담으로 불려도 상관없지만, 여당에 당 대표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회동에 영수회담이란 이름표가 붙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