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노래 다 외워 왔죠? 못 외운 사람 있으면 옆 사람이 꿀밤 한대씩 줘요. 작게 부르면 더 쪽팔려. 크게 당당하게 부르자고” 탁 교수의 유머 섞인 한마디 한마디에 모인 학생들 사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노래 만이 아니었다. 각 가사마다 어떤 포즈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촛불집회 현장서 ‘반값등록금 립덥’ 제작= 언뜻 보면 학생들의 단체 공연을 준비하는 듯 한 모습. 하지만 이날 탁교수와 학생들이 준비하던 것은 다름 아닌 ‘립덥(Lip-dup)’ .립덥은 ‘립싱크’와 더빙의 합성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기를 하는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물을 말한다.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물 촬영 방식으로 수십명 이상이 영상에 한꺼번에 출연하며 끊김없이 ‘원테이크’로 촬영을 한다. 탁 교수는 이날 집회에 참석한 200여명의 학생, 시민들과 함께 YB의 ‘나는 나비’ 립덥을 제작했다. 일명 반값등록금 립덥이었다.
탁교수는 촬영 전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촬영은 집회가 아닌 예술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는 “과거의 집회는 과격하고 격정적인 시위나 소극적이고 법의 틀 안에 놓여있는 1인 시위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젠 집회 장소가 문화를 즐기는 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촬영도 그 일환이다. 대중들과 함께 촬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등록금 문제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를 지지해온 탁 교수는 ‘반값등록금 립덥’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 나라 교육의 비참한 현실”을 전할 계획이다.
▶격식 따윈 없어. 자유롭게 즐겨봐…1020세대 립덥 인기↑=립덥의 가장 큰 매력은 격식없는 자유로움이다. 물론 촬영을 위해 동선 등을 미리 계획해야 하지만 정해진 형식은 없다. 서구권 젊은이들 사이에서 활성화된 립덥은 자신의 감정을 표정과 몸짓으로 발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도 립덥은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등록금립덥 제작에 나섰던 탁 교수는 지난 5월 자신이 강의를 맡고 있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학생 수십명과 함께 빅뱅의 ‘붉은노을’ 립덥을 제작해 유명 포털사이트에 게재한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단국대학교 학생 250여명이 팝송 ‘The great escape (위대한 일탈)’에 맞춰 제작한 ‘단국대립덥’과, 제주서중학교 학생들이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을 기원하며 제작한 립덥 ‘제주도 좋은 걸’도 유튜브와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 10일 촛불집회에서 립덥 촬영 현장을 지켜보던 이종수(31ㆍ회사원)씨는 “립덥이라는 용어를 오늘 처음 들어봤는데 매우 흥미로운 촬영이더라.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이 보기좋았다”고 말했다.
권효진(29ㆍ대학원생)씨는 “미국에서 유학을 할 당시 외국인 친구들과 립덥 촬영을 해본 적이 있다. 마치 가수가 돼 뮤직비디오를 찍는 듯한 느낌이었다.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수진@ssujin84> 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