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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이형석 문화부 차장]‘나가수’유감
지난 2009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영국 대중음악계에선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 ITV의 인기 신인발굴 프로그램인 ‘엑스-팩터(X-Factor)’의 우승자 조 맥엘더리의 노래를 누르고 록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곡 ‘킬링 인 더 네임’이 발표 17년 만에 영국 차트 1위를 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에 영국의 음악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넘버 원’이라는 고유한 지칭이 따를 정도로 매해 대단한 관심을 받아왔다. 지난 2005년부터는 엑스-팩터의 우승자가 줄곧 이 타이틀을 차지해왔다. 수백만명이 투표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선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2009년 이에 염증을 느낀 한 음악팬이 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만의 차트 1위를 만들어보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거대 지상파 방송에 맞선 반란은 성공했다.
최근 국내에선 유명 가수들이 가창력 대결을 통해 탈락자를 가리는 경연 형식의 MBC 쇼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세간의 화제다.
참여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하고 매주 경연곡과 결과가 연예계의 핫 이슈가 되고 있다. 참여가수들이 음원차트를 점령했고,이들의 공연도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에 몇 년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거나 TV에선 홀대받던 가수들의 ‘인간극장’ 같은 감동적인 뒷얘기가 더해지면서 온통 찬사일색이다.
하지만 여전히 뒷맛은 개운찮고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참여가수들이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이들이라는 사실과, 가창력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며 탈락자를 가린다는 경쟁의 룰이 서로 충돌을 빚고 있다. 온통 아이돌 일색으로 만들었던 ‘주범’인 지상파가 새로운 주인공들을 내세워 가요계의 자활력을 무너뜨리고 음원차트를 점령하는 식으로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나가수’ 열풍이 ‘보는 음악을 벗어나 듣는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열었다’는 평가도 뒤따르는데,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다. 편집조작 논란과 일부 참여가수들의 ‘연기하는 표정’에서 보듯 ‘강요된 감동’이 만들어낸 착시현상은 아닐까.
최근 ‘위대한 탄생’ ‘기적의 오디션’ ‘신입사원’ ‘코리안 갓 탤런트’ ‘탑 밴드’ 등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케이블TV ‘슈퍼스타케이’의 성공에 편승한 기획들이다.
이를 보면 지상파TV는 마치 대중문화의 콘텐츠를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대형할인마트’ 같다. ‘나가수’의 가수들은 자신의 영역인 공연이나 앨범이 아닌 ‘대형할인마트’에 모셔진 ‘명품’, 각종 신인발굴 프로그램은 ‘통큰 치킨’ 같은 기획상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영화계에선 TV맛집의 문제를 폭로한 ‘트루맛쇼’가 화제다. 결국 문제는 ‘맛’도 ‘가창력’도 TV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빚어낸 아이러니가 아닐까. ‘MBC, SBS, KBS에 절대 나오지 않은 식당’처럼 “슈스케를 통해 데뷔하지도 않고 ‘나가수’에도 나오지 않는 가수”임을 떳떳하게 자랑하는 뮤지션은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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