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쿨~보수, 요체는 변화와 개혁이다
튄다, 오버한다? 일부 지적엔 동의 못해
내가 제시한 정책은 전문가들이 1년여 공들여 준비한 것
“기업의 이윤 추구도 중요하지만 공익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지난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던진 말이다. 이런 발언들이 유난히 잦아졌다. 취임 초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자청했던 이 대통령에 대해 대기업들은 “변했다”고 하고, 일부 보수층은 “배신당했다”고 한다. 공정사회를 화두로 대ㆍ중소기업의 동반 성장, 초과이익공유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등 쏟아지는 정책들은 MB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거리들이다. 대통령은 변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MB 정부의 정책 기조는 어떻게 될까.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만나 보니 의문이 풀리는 단초들이 나왔다. 2001년 MB 캠프에 합류한 곽 위원장은 MB의 복심으로 통한다.
-좋게 말하면 ‘어젠다 메이커’, 나쁘게 말하면 ‘튄다’ ‘오버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다른 부처가 하지 않는 걸 하니까 그럴 것이다. 우리는 준비 많이 해서 내놓는다. 정부 부처는 사무관이 정책 입안해서 과장, 국장을 통해 결정된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전문가그룹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1년 이상 공을 들인다. 툭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미래기획위원장인데, 위원장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소통과 통합을 통한 사회공동체 유지다. 세대 간 소통구조가 너무 다르고, 너무 다양해서 통합도 어렵다. 그래도 사회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
- 더불어 사는 사회의 요건은.
▶나눔과 기부, 배려의 따뜻한 시장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진화하면서 다른 체제와 경쟁에서 이겨왔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 상황에서 기업은 이윤 추구가 최고의 선이었다. 체제 경쟁이 끝나고 나서 기업의 최고선이 이윤 추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워런 버핏의 기부만 해도 그렇다. 진화한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
- 우리나라의 시장 자본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
▶우리만 옛날식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처음 창업 자본주의였다. 이병철, 정주영, 록펠러가 그런 사람들이다. 100만명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우수한 사람이다. 이어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가 온다. 그런데 경영자 자본주의는 관료주의로 간다. 그래서 1970년대 경영자 재량가설(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 경영자 자신들이 직장을 잃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동기에 있다는 이론)이 나온다. 이윤 극대화ㆍ주주 보호ㆍ국민경제 극대화는 하지 않고 경영자 효율 극대화에만 매달린다. 단기 성장에만 매달린다.
-아직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라는 것인가.
▶펀드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 선진국이 다 그렇다. 펀드는 기업을 투명하게 만들고 활력소를 준다. 펀드를 혈액에 비유한다면 혈액은 투명해지려는 속성이 있다. 펀드는 주주 가치를 증가시키고 사회를 투명화시킨다.
-보수 진영에서 “MB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좌파적이다. 배신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업 프렌들리를 하는데, 그런 말이 나오나. 대기업 실적이 증명하지 않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MB 정권이) 시장주의, 자본주의에 어긋나나를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득권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 정부의 철학은 따뜻한 시장경제로 변함없다.
-기업들의 불만이 많다. MB 정부의 정책 기조를 오해한 것인가.
▶산업도 바뀌고 있다.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기업 존속에 필수다. 생태계를 유지하자는 게 중소기업ㆍ중견기업ㆍ자영업자만 서포트하는 것 같고 대기업 편을 안 드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건전해지려면 독점은 안 된다. 생태계를 강조하는 게 반기업 정서는 아니라고 본다.
-시각이 굉장히 진보적인데.
▶난 신고전학파다. 자본주의경제를 가르치던 사람이다. 자본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동반 성장, 초과이익공유제 등 대기업들은 정부의 압박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궁금해하는데.
▶강압할 수 없다. 자율적으로 해야지. 사회적 투자를 하는 게 기업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기업들도 그런 것을 보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이 왜 사회 공헌을 하나? 국민의 인식이 나빠지면 기업도 어렵다. 또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주주들이 기업 가치를 올려야 한다. 그래서 화두(연기금 주주권 강화)를 던진 것이다. 법적으로 다 하게 돼 있다. 워런 버핏도 주총에서 승부를 본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통해 간접적인 압박을 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있는데.
▶경영권 간섭은 절대 못한다. 기름값 내리라고 하니까 좋은가. 그게 관치다. 민영화한 주인 없는 포스코ㆍKT 포스코, 정권 바뀌면 경영진은 물러난다. 그게 관치 아닌가. 주주 가치를 올렸으면 물러나지 말아야지, 연기금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적 투자는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올린다.
-고환율 정책 등을 통해 대기업을 도왔는데,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호응하지 않아 서운한가.
▶개인적으로 서운한 게 아니고, 대기업도 할 얘기가 있다. 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가 어렵다. 정부 정책도 일자리에 초점을 맞췄나 봐야 한다. 일자리만 보면 임시투자세액공제보다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가 낫다. 법인세를 감면하지 말고 거둬서 정부가 일자리 만들면 되지 않나.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지적도 타당성이 있다.
-한나라당이 감세 때문에 시끄러운데.
▶교수 입장에서 보면 좋다고 본다. 건설적인 노선 투쟁이다. 우리 국민은 포퓰리즘 여부를 구분한다. 모든 국가가 복지를 추진한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이라고 하지 않는다. 정부와 정당의 역할은 시장경제에서 도태하는 사람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고 정 못 살면 먹여살려야 한다. 가용자원을 효율적으로 생각해보는 게 좋다.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복지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로 싸울 일이 아니다. 섞어야 한다. 저출산이 중요한 문제라면 출산을 늘리는 복지는 보편적 복지를 써야 한다. 고소득층도 다 해당된다. 주거(집)는 선택적 복지다. 집 있는 사람에게 집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영유아 보육비 지원은 보편적 복지다.
-무상 급식은?
▶노코멘트. 모르겠다.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좌파보다 훨씬 더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쿨보수다. 진보는 이념에 강하고 보수는 이념에 약하다. 보수가 얼마나 헐렁헐렁하냐. 보수의 요체는 변화와 개혁이다. 오히려 진보가 변화를 싫어한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 좌우에 다 묶여 있다. 보수가 싫으면 진보, 진보가 싫으면 보수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호불호’가 있다. 정당들도 그렇게 가고 있다. 이념에 갇혀 있으면 못한다. 그래서 실용적이다.
MB와는 아버지때부터 2대째 인연
“점수로 치면 난 70점, 이젠 벌여놓은 기획 마무리 할 시기”
“기획이잖아요. 이제는 마무리해야죠.”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어떤 정책을 또 쏟아낼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임기가 1년10개월 남았으니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을 차례”라면서 “공기업 민영화 등 아직 손을 대지 못한 작업은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곽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10년 인연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선거를 준비하던 2001년 캠프에 합류한 이후 지난 대선까지 줄곧 ‘MB정책통’으로 자리를 지켰다. 가족사도 남다르다. 곽 위원장의 부친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당시 사장이던 이 대통령을 보필하기도 했다.
MB 정부 출범 후에는 경제실세 6인방(강만수, 사공일, 윤진식, 류우익, 백용호, 곽승준)의 일원이 됐고, MB노믹스를 주도한 왕의 남자다. 정권 초 최연소로 국정기획수석을 지냈고 산업은행 민영화, 각종 부동산 정책, 금산분리 완화, 중소기업 지원 정책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금지, 이동통신비 인하, 사회적 기업 육성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최근에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UAE 유전개발권을 획득했다.
미래기획위원회의 영역에 대해 곽 위원장은 “여러 부처에 걸쳐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을 융합해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업무”라고 했다. 외교ㆍ통일ㆍ국방, 신성장동력 등 새로운 경제, 교육 개혁을 비롯한 사회 개혁, 문화 콘텐츠, 미래 전략 등 5개 분과를 두고 외부의 전문가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곽 위원장은 “점수로 치면 70점 정도 되는데 1년10개월 남았으니 100점 맞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그는 “인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정치계절이 오면 지지율은 떨어진다”면서 “10년 후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보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곽 위원장은 30년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진화한 자본주의, 이념이라던지 과거 청산보다는 실용 노선 등 미래에 대해 많은 화두를 던진 건 이명박 정부가 평가받을 항목이라고 했다.
조동석 기자 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