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지난 17일 ‘말 실수’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공무원 및 공기업 채용 인원 확대를 시사하는 황우여 원내대표의 발언이 나온 것. 이는 취임 초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견지해오던 ‘작은 정부’ 기조에 반하는 내용으로, 취업을 고민하고 있는 젊은 층에는 아주 민감한 내용 중 하나다.
뒤늦게 “일부 의원의 요구가 있었고, 이를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몇몇 언론을 통해 ‘내년 공무원 채용 대폭 증원 확정’이란 기사가 나간 뒤였다.
18일 정가에서는 황우여 신임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지도부의 지나친 약속 남발이 구설수에 올랐다. 4ㆍ27 재보선 패배로 물러난 지도부를 대신해 7월 초 전당대회 전까지 임시로 당을 관리하는 게 황 대표와 새 지도부의 역할임에도 민감한 이슈에 대한 ‘空約(지키지 못할 약속)’이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 대표의 공약 논란은 원내대표 당선 직후부터 시작됐다. 경선과정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추가 감세를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선 이후 ‘찬반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당과 정부 안에서도 견해가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접근했다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황 대표의 약속은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구미 단수 현장을 방문에서는 “단수로 손해와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 보상이나 배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또 4대강 관련 가물막이 공사 지역에 대한 점검 및 감사원 감사 청구까지도 거론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4대강 공사 자체 재검토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 앞서 한국노총을 방문해서는 타임오프제, 복수노조제 등과 관련된 한국노총 측의 건의에 대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검토하겠다고 화답, 노동법 재개정 문제와 이해관계가 깊은 정부 부처 및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오는 25일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다룰 추가 감세 철회도 관심의 대상이다. 일부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법인세 및 소득세 추가 감세를 중단하고 대신 복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황 대표도 일단 찬성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의총이 감세를 화두로 황 대표와 일부 계파 간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와 관련해 당 안팎에서는 20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에 주목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황 대표가 지금까지 거론하거나 검토 중인 내용 상당수가 청와대의 기존 방침과 다른 것이 많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호응이 없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만 하다 끝나는 대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