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이 참으로 고생했다. 산 깎고 바다 메워 공항을 건설한들 이용객이 없으면 허당이라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수긍이 간다. 주공과 토공을 통합한 LH공사 본사도 다시 쪼개지 않고 한 곳으로 이전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한다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30여년간 자본ㆍ기술ㆍ인력이 축적된 대덕단지 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일면 복잡해 보이지만, 원칙과 상식대로 하면 문제가 없는 사안들이다. 애당초 혈서 쓰고 삭발하고 단식하면서 ‘MB 심판’ 할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임기 5년 중 아직도 21개월을 남겨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스스로 내려놓은 권위의 부메랑을 맞아 전임 대통령이 증폭시켜놓은 사회 갈등을 일거에 해소할 것이란 기대, 7% 성장ㆍ4만달러 국민소득ㆍ7대 경제대국의 747보잉기 탑승은 벌써 접었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아직도 좋아하는 듯한 MB가 초지일관하는 건 ‘강부자’ 내각부터 자기 사람만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와 탄식을 듣는 소통부재다. 지난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부터 영남권 신공항, LH본사 이전, 과학벨트까지 MB정부의 국책사업은 원칙과 설득, 신뢰가 깡그리 무시된 채 지역갈등 핵폭탄을 터뜨린 3무(無)의 재앙이다. 지지율이 20%대로 뚝 떨어진 대통령 나올 때 TV채널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대전으로 갈 과학벨트를 두고, 백지화니 대선공약집에도 없다느니 하면서 세종시 행정수도 수정안과 엿 바꿔 먹기 식으로 접근할 때부터 과학벨트는 정치벨트로 전락했다. 정치권에서 오염된 사건은 검찰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이번 사건은 과학이 정치로 오염되는 과정의 전형이다. 어쩌다 뒤처리 전문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국가의 미래사업이고 지역이기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는 담화문을 대통령 대신 읽는 김황식 총리가 딱하다.
대통령의 말바꾸기 비용은 국민이 혈세로 대신 지불하게 됐다. 당장 사업규모가 3조5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늘어났다. 1조7000억원을 과학벨트에 쏟아넣는 동안 다른 연구개발(R&D) 사업은 올스톱이 불 보듯 뻔하다. SOC예산을 모두 끌어다 쓴 4대강 사업에서 보았다. 무슨 연구를 할지 결정도 안 된 기초과학연구소 50개를 지역으로 쪼개놨으니 예산이 얼마나 줄줄 새겠는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내년에 쏟아질 엄청난 규모의 ‘빚공약’을 2년 후, 3년 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대구ㆍ경북과 부산ㆍ경남을 갈라놓고 영남-호남, 충청까지 들쑤셔 갈라놓았으니 지역감정ㆍ이기주의는 모든 국가적 이슈를 무력화하는 블랙홀이 될 듯하다. 정치권은 국책사업에서 떨어진 지역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준다면서 공약 개발에 착수했다.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중앙과 지방정부, 지역과 지역의 갈등을 조정하는 방안들이 논의되는 모양이다.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자, 지역공모제를 없애자, 공약폭탄을 막을 대책을 법제화하자는 식이다. 법과 제도가 없어서 갈등이 초래된 건 아니다. 오죽하면 여당 국회의원이 “정치적 백치인지, 표를 깨려는 천재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겠는가. 그보다는 지금이라도 MB정부 들어 유명무실해진 지역발전위원회를 활성화하고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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