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내 손에 커다란 칼이 쥐어져 있었군


<제239회> 죽음의 계곡 41



권도일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젖어들었다. 30년 전이라면 자기가 갓 태어나 이빨도 안 났을 무렵이다. 그 당시에 도로를 달리던 차량의 겉모습은 어떠했을까? 간혹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형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처럼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의 자동차에 비하면 상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50년 전의 차량이라면….

“권도일 씨. 인도나 방글라데시에 가보셨나요?”

“죄송합니다만, 미처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그럼 필리핀이나 베트남에는?”

“베트남에는 얼마 전에 다녀왔지요.”

“그곳에 굴러다니던 자동차 형태를 기억하십니까?”

“벌떼처럼 몰려다니던 오토바이 무리가 먼저 떠오르는군요. 물론 자동차도 보았습니다만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폐차 처분한 것들이 대다수였지요.”

“그 차를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감개무량했습니다. 낡아서 버린 차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끌고 다닌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으니까요.”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하자는 겁니다. 그나마 베트남 땅에 굴러다니는 차는 30년, 혹은 50년 전에 우리가 생산했던 차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권도일 씨는 말 그대로 똥차를 몰고 나가서 이겨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야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재벌 2세는 집무실 벽에 붙어있는 장식장을 열더니 고급 양주 한 병을 꺼내어 잔에 따랐다. 건배를 하자는 거였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건배일까? 권도일은 그가 하자는 대로 잔을 마주치고 단숨에 양주를 들이켰다.

“권도일 씨 아버님은 이미 반신불수가 되었지요. 그에 비하면 내 아버님은 아직 너무도 정정하십니다. 거성자동차를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시니까요. 하지만… 내 아버님 역시 반신불수와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재벌 2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을 이어나갔지만 권도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재벌그룹 회장을 반신불수라 여기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노회하다는 말을 아십니까? 경험이 많아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낡았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제 아버님을 두 가지 모두의 뜻으로 평가합니다. 교활하게 여겨질 만큼 경험이 많기도 하지만… 낡았습니다.”

“아…… 그래서 반란을 꿈꾸고 계시는 겁니까?”

“반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도 나름대로의 아성을 구축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동지가 필요하다는 말도 되지요. 권도일 씨! 제 힘이 되어주세요. 계획대로 똥차를 몰고 나가서 승리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아 주세요. 그 과정에 들어가는 경비는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크리스 뱅글을 저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우리 셋이서 새로운 장사를 도모해 봅시다.”

분위기는 진지했지만 권도일의 가슴 속으로는 시원한 한줄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경우도 생기는 법인가.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저는 여태까지 M&A의 희생자가 된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제가 엄청나게 큰 칼자루를 쥐고 있군요. 그런 칼자루를 내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잡초는 자라기 전에 뿌리째 뽑아야 하는 법, 애초에 자동차 업계를 넘본 사람은 유민 회장이었다. 그는 소규모 튜닝 회사인 블루아우토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거성 자동차 재벌의 2세는 아예 유민의 야심을 뿌리째 뽑아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싹을 자를 만한 칼을 권도일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점점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알리바바 더보기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