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 전제 김정일 초청
현실성 결여된 정치카드
핵안보정상회의 전까지
최소한의 신뢰부터 구축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밝혔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개발, 핵테러 문제를 국제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대응을 모색하는 회의체이다. 북한, 이란 등 핵무기 개발을 통해 국제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나라들에게 핵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하게 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권력 과도기에 있는 김위원장이 전략적인 판단을 하여 핵포기 결단을 내린다면 국제적인 차원의 체제보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김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양자, 3자, 4자, 다자 등 다양한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상황을 급반전시키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예상했듯 북한은 ’도전적 망발’이라면서 이 대통령의 제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아무런 상황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제의는 지금까지 해온 무수한 대화제의의 한 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두 가지 전제조건이 문제다. 첫 번째 조건은 ’북한이 핵포기 의지를 국제사회와 합의할 때’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MB 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그랜드 바겐을 북한이 수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핵문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은 그동안 그랜드 바겐을 무시하여 왔다. 두 번째 조건은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명백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부인으로 일관하여 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 내부정세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등장이후 북한 권력 내에서 신구 세력간의 이합집산과 세대교체가 긴박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핵보유와 선군정치는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기반이면서 권력이양기의 권력누수를 유일하게 방지하고 있는 버팀목이다. 핵포기와 섣부른 국제사회의 등장은 기존 체제의 붕괴와 급속한 개혁개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일-김정은 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아닐 것이다. 둘째, 남북간 신뢰의 문제이다. MB 정부 출범이후 남북 간에는 이렇다 할 대화와 협력보다는 상호 불신과 대결구도를 지속하여 왔다. 남북간 기본적인 신뢰도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대남정책의 급반전을 이룬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북한이 거부하고 있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는 없다. 내년 3월쯤 예정되어 있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앞으로 10개월 남았다.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남북 비핵화 회담 혹은 남북접촉 등을 통해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해소하고 6자회담을 한, 두 차례 열어 UEP를 포함한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될 수 도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에 생뚱맞은 모습이 연출되지 않으려면 남북 모두 앞으로 10개월간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