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비대위 구성을 놓고 또다시 충돌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당헌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또 다른 권력투쟁 성격이 짙다. 비대위는 전당대회 룰을 정하는 등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새 지도부가 선출될 때까지 한나라당을 이끌어갈 비대위는 공식출범도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안상수 대표 등 전임지도부가 구성한 비대위에 대해 소장파 의원들이 절차상 효력 문제를 들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양 진영이 팽팽한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소집될 의원총회에서 공개적으로 파열음이 나올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같은 당헌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안 대표 측은 당헌 제26조(대표최고위원은 원활한 당무수행을 위하여 필요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를 들어 대표 등 최고위원회가 비대위 구성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미 구성된 비대위가 절차 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장파들은 같은 당헌을 들어 최고위원회에 비대위를 구성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비대위를 특별위원회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당헌 제30조(‘대표최고위원이 사고ㆍ해외출장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 최고위원선거 득표순으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를 근거로 오히려 원내대표에게 지휘권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는 “당헌에 보면 대표가 유고 시 원내대표 대행체제로 가도록 돼 있다”며 “당 대표 역할을 비대위원장이 대신한다는 게 외부에서 볼 때는 충돌되기 때문에 법률적 효력을 신중히 해석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신임 정책위의장은 “비대위를 두고 양쪽에서 서로 당헌을 가지고 주장을 하니까 말이 많아지고 있다”며 “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비대위 구성에 대해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민주적이지 않은 절차를 거치면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비대위는 특별위원회가 아니기 때문에 당헌에 따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대위를 만들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은 새로운 쇄신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이것이 국민의 바람”이라며 “비상상황에서 당의 모든 권한은 의원총회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과거와 달라져야 하며 그 첫째가 계파 없애기”라면서 “계파 안배라는 구체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가 제안한 비대위가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계파 안배 식으로 짜여진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