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전 예정에 없이 금융감독원을 방문한 것은 저축은행 불법 예금인출 사태의 정치적 폭발력을 감안한 전격적인 행보다. 현장에서 이 대통령은 당국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이번 사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대응하라 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로 서민들의 고민과 분노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대통령이 직접 금감원을 찾아 대책을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가, 공정사회와 친서민 기조를 앞세워 집권 4년차 ‘일하는 정부’를 구상해 온 이명박 정부에 치명적인 악재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부실과 비리는 차치하고라도, 은행 측이 VIP고객과 서민고객을 차별함으로써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사회 기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국정 우선순위인 서민경제의 주름살을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진원지가 부산이라는 점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가뜩이나 뿔난 부산ㆍ경남(PK) 민심에 불을 지른 격이다.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못할 경우 정부의 국정 장악력 약화는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反)MB 정서가 결집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불법인출 내용을 보고받은 이 대통령이 그 즉시 국무위원들에게 “철저히 조사하고 엄격히 대응하라” 면서 “없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발생하는 비리가 아니고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서민경제 정책을 다시 살피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4.27 재보선 다음 날 수석들과 티타임을 갖고 “우리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서민들의 불만이 많은 것이 사실” 이라며 “앞으로 서민경제를 더 세심하게 챙기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또 지난 3일 경제 5단체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는 “대기업들이 미소금융에 좀 더 신경을 써 주기 바란다” 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행보는 앞으로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 속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와 1차 대응책이 마련되는대로, 친서민 정책의 현실 괴리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집중 검토할 것”이라며 “그동안의 정책실행 수준을 뛰어넘어 현장 점검과 보완 등으로 서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정체성 논란에 빠진 ‘MB노믹스’가 친서민 중심으로 재편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양춘병기자@madamr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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