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포르투갈)=조동석 기자]“나중에요” ,“그래도 못 드려요”.
“국내 정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녹음기 수준이다. 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계산기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을 순방하면서 외교관 임무 대신 정치를 말한다는 것은 박 전 대표가 평소에 지켜왔던 원칙에 어긋난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2일 국회 본청에서 연찬회를 열고 박 전 대표의 역할을 봇물처럼 주문했지만, 그는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날(이하 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가진 동행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내 정치에 대해 한마디 할 만도 했지만 입을 닫았다. 생일을 맞은 동행 기자의 조촐한 생일축하 겸 가벼운 생맥주파티를 하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취재진의 온갖 유도 신문도 그의 굳게 닫힌 입을 열지는 못했다.
대신 가벼운 주제를 화제로 삼았다. 항공편 연착으로 동행 기자단이 하루 늦게 리스본에 도착하자 “고생 많았다”고 위로했다.
그의 한마디에 목말라하는 기자단에게 박 전 대표는 “그래도 (뉴스를) 못 드려요”라고 말했다.
앞서 박 전 대표는 유럽특사 첫 일정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국전 참전비에 헌화한 뒤 동행한 기자들로부터 “ (역할론도 나오는데) 당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지금 이런 말을 할 장소가 아닌데, 나중에 뵐게요”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대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외국에 나와서 국내 얘기를…”이라며 말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출국 전 4ㆍ27 재보선 참패에 대해 “저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권 말기 여권의 위기는 정권 초기와 다르다.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면 무너질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여권 상황에선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박 전 대표에게 당 비대위원장직이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기려는 여당 의원들이 상당수다. 그들은 “총선에서 지면 대선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선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유럽 순방은 박 전 대표에게 ‘관망의 시간’인 듯하다. 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