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위원장은 연기금의 성실한 주주권 행사에 대해 “기업들은 싫어하겠지만 여기있는 동안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노블리스오블리주, 기업의 역할 등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을 충실히 해보고 싶은 의지가 있다”고 했다.
학자적 양심과 소신의 발로, 그의 표현대로 ‘교과서적 원칙’에 충실한 정책 건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곽승준이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과는 10년 인연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2001년, 캠프에 승선한 이후 지난 대선까지 줄 곧 ‘MB정책통’ 자리를 지켰다. 곽 위원장의 부친이 현대건설 부사장 시절, 당시 사장이던 이 대통령을 보필한 남다른 가족사도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경제 실세 6인방(강만수 사공일 윤진식 류우익 백용호 곽승준)’ 의 일원이 됐고, MB노믹스설계를 주도한 세칭 ‘왕의 남자’ 다.
정권 초 최연소 수석(국정기획수석)을 지냈고 지금은 국가 미래를 고민하는 미래기획위원회의 수장이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각종 부동산 대책, 금산분리 완화, 중소기업 지원정책 등이 그의 손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UAE 유전을 수주했다.
이런 그가 “성실한 주주권 행사는 법적 기본의무이자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라고 했을 때, 세간은 내용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그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했을까에 귀를 세운다. 인지상정이다.
때로는 무슨 말이냐보다 누구의 말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권력의 입이라면 특히 그렇다.
MB정부 황태자의 정책 건의는 곧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뜻으로 통한다.
곽 위원장의 입을 빌린 정부 정책은 실망스럽다. 연기금 주주권에 관한 제도와 시스템 개선은 뒤로 밀린 채, 대기업 견제라는 감성적 구호가 머릿말을 장식했다.
치밀한 준비없는 정책은 종종 선한 취지를 어리석은 결과로 만든다. 이 지점에서 정책 불신과 시장 혼란은 극대화 된다. 지금이 딱 그렇다.
청와대와 인연닿은 인물들이 시중은행의 최고 경영진 자리를 꽤찬 현실에서, 정부의 지배아래 놓인 연금의 주주권 강화가 시장원리라는 강변은 공허하게 들린다.
“개인적 소신”이라며 발빼는 청와대도 무책임하지만 결자해지는 곽 위원장의 몫이다.
곽 위원장은 연기금 이슈를 제기하며 양심, 소신, 정의, 미래 등 미사여구를 총동원했다.
공직자보다는 학자 또는 시민단체에 어울릴법한 퍼포먼스다.
곽 위원장이 아이디어 넘치는 ‘열혈남아’ 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크게 오버했다.
가뜩이나 레임덕 우려가 깊은 이명박 정부에 공연한 짐 하나를 더 안겼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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