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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수 외할아버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서 비참하게 숨져
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이자 북한에서 유명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한 강홍식 씨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감된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단파 라디오 ‘열린북한방송’은 25일 탈북자 김영순 씨가 자신이 북한 요덕 수용소에 있을 때 직접 강씨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평양예술대학 무용학부를 나온 고위층이었지만 성혜림(김정남의 생모)과 관계 때문에 1970년 10월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9년간 복역했다. 이후 2001년 탈북, 2년 뒤 한국에 들어온 뒤 2008년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라는 책을 펴냈다.

김씨에 따르면 자신이 수용소에 들어갔을 때 이미 강씨와 그의 아들 강효선 가족이 수용소에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 뚜렷한 이유도 없이 끌려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효선 씨의 아내 이해순 씨와 무용학부 동기로 친분이 있는데, 이씨가 영화 출연을 위해 분장을 하던 중 갑자기 끌려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강씨가 영화계에서 걸출한 인물인데,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한창 진행되던 김일성 우상화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씨는 “강씨가 ‘영순아, 나 영화에 또 출연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등 수용소 안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강씨는 ‘펠라그라’라는 병에 걸려있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는 니아신(수용성 비타민의 일종) 결핍 때문에 일어나는 병으로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 나타난다. 이 병에 걸릴 경우 햇볕에 노출된 부위에 통증을 수반한 홍반이 생기며 시간이 지나면 수포가 발생한다. 더 심해질 경우 표피가 벗겨지면서 심한 색소 침착으로 이어진다. 김씨는 “강씨가 흑인처럼 얼굴이 새까맣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 '최학신 일가'에 '리챠드 목사'역으로 출연했던 강홍식                          [사진=열린북한방송]

김씨는 “강씨가 결국 이 병으로 요덕 수용소에 수감된지 1년 만인 1971년 가을께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후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된 1975년께 영화 선전사업이 강조되면서 1949년 강씨가 만든 북한의 첫 예술 영화 ‘내 고향’이 다시 주목받았다. 덕분에 남은 가족들은 그해 수용소를 나왔고 강효선 씨는 영화 ‘민족의 운명-노동계급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씨는 “탈북했던 2001년에 강효선 씨 가족이 평양통일거리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강홍식(1902~1971)

1902년 12월 9일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배우 활동을 하다 1925년 귀국해 영화 ‘장한몽’으로 조선영화계에 데뷔했다.

해방 이후에는 황해도 신천에서 예술공작대 책임자로 있으면서 조선영화동맹 위원 등을 지냈다. 

1949년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 ‘내 고향’을 연출했고 6.25전쟁 때는 ‘비행기 사냥꾼조’를 찍었다. 이후 ‘산뫼’, ‘바다로 가자’, ‘어랑천’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아내 전옥 사이에 딸 강효실과 아들 강효선, 강효제를 두었으며 강효실이 바로 최민수의 어머니이다.

강홍식과 전옥은 해방 이전 이혼했으며 강효실은 어머니와 함께 남한에 남아 배우로 활약,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 ‘주검의 상자’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92년엔 최민수가 주연을 맡은 ‘결혼이야기’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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