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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릿고개 한국영화…흥행가뭄 해갈할 대작이 안보인다
킹스맨·어벤져스·매드맥스 등블록버스터 외화에 점령당한 스크린200만 돌파 방화 4편, 500만이상 전무흥행 톱10 누적관객 1120만 vs 2560만흥미·볼거리 위주 오락물 편식도 문제
킹스맨·어벤져스·매드맥스 등
블록버스터 외화에 점령당한 스크린
200만 돌파 방화 4편, 500만이상 전무
흥행 톱10 누적관객 1120만 vs 2560만
흥미·볼거리 위주 오락물 편식도 문제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극장가에서 화제가 될 만한 흥행 성적을 낸 작품은 대부분 외화들이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약 612만 명)의 흥행 바통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약 324만 명)이 이어 받았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약 1047만 명)에서 화력이 폭발했다. 최근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미친(mad)’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영화계는 보릿고개다. 봄 나들이 철이 극장가 비수기라고 해도, 관객들이 외화에 몰리는 분위기가 최근 더 심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어벤져스’ 광풍만 잦아들면 숨통이 트일 줄 알았지만, 연이어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외화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문제는 6월에도 한국영화의 부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점. 이 달에만 ‘샌 안드레아스’(6월 4일 개봉)와 ‘쥬라기 월드’(6월 11일 개봉) 등 두 편의 블록버스터가 한 주 간격으로 관객 몰이에 나선다. 같은 달 ‘은밀한 유혹’(6월 4일 개봉), ‘연평해전’(6월 10일 개봉), ‘극비수사’(6월 17일 개봉),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6월 18일 개봉), ‘소수의견’(6월 25일 개봉) 등 한국영화가 포진해 있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외화들과의 체급 차는 커 보인다.

▶200만 돌파 韓영화, 단 4편=올해 상반기 2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는 단 네 편이다. 설 연휴 특수 덕을 본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약 380만 명)을 비롯해 ‘스물’(약 304만 명), ‘강남 1970’(약 219만 명), ‘악의 연대기’(2일 기준, 약 207만 명) 등. 500만 이상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스타 배우들과 감독이 만나 300만 이상 관객을 기대했던 ‘쎄시봉’은 최종 스코어 170만을 기록했다. ‘허삼관’(95만 명)과 ‘살인의뢰’(85만 명), ‘순수의 시대’(46만 명) 등은 100만 관객도 모으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서 제공하는 연도별 박스오피스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흥행 10위에 포함된 영화 중 한국영화는 5편(단, ‘국제시장’은 2014년 개봉작), 외국영화 역시 5편이다. 얼추 균형이 맞아 보이지만 관객 수를 따져보면 차이가 크다. 흥행 톱 10 한국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약 1120만 명으로, 약 2560만 명을 모은 외화의 절반 수준이다.

지금까지의 부진은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회복세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난 해 상반기 비수기(3~5월) 한국영화 점유율은 3월 26.2%, 4월 21.9%까지 곤두박질쳤다가 5월 49.2%로 치솟으며 두 배 이상 뛰었다. 올해는 3월 34.4%, 4월 25.6%까지 떨어진 점유율이 5월에도 31.5%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쳐, 석달 째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특히 2014년 5월 개봉편수와 비교하면(한화 13편, 외화 75편), 한국영화는 15편으로 2편 더 늘었고 외화는 69편으로 6편 줄었는데도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지난 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 포인트 이상 적은 수치를 보였다.

▶“국적 중요치 않아, 재미있으면 본다”=요즘 관객들은 재미있는 영화를 귀신같이 가려낸다. 상반기 흥행 성적표를 보면, 대규모 물량을 투입한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채피’, ‘인서전트’, ‘주피터 어센딩’ 등은 50만 관객도 모으지 못했고, ‘7번째 아들’은 10만에도 못 미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일단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마른 볏짚에 불 놓은 듯 스코어가 올라가지만, 혹평이 나오기 시작하면 제 아무리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100만을 넘기기 어렵다.

이는 관객들의 영화 선택 기준이 그만큼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영화와 관련된 정보가 넘쳐나고 SNS를 통해 입소문 또한 빠르게 퍼지면서, 티켓을 끊기 전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또 IPTV와 VOD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극장에선 스펙터클이 돋보이는 외화를 선택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한국영화에 대한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의리(?)도 옛말이고, ‘재미있으면 본다’는 선택 기준이 당연해졌다.

한 영화 관계자는 “관객 입장에선 영화의 국적이 어디냐는 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1만 원을 내고 최대 만족을 뽑아내는 게 관건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영화가 1순위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굵직한 한국영화가 나온 게 별로 없다. 각 배급사들의 ‘회심의 카드’가 흥행에 실패한 건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위기 의식은 없는 것 같다. 야심작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지금의 침체 분위기도 다시 역전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오락영화 쏠림 현상, ‘괜찮아요?’=‘오락영화’에 열광하는 극장가 분위기도 상반기 한국영화의 부진 이유 중 하나다. 관객들의 영화 취향이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흥미와 볼거리 위주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 또한 강하다. 극장의 주 고객인 20~30대 층이 과거보다 학업·취업 등의 스트레스에 과중하게 짓눌리다 보니, 극장에서 자연스럽게 현실 도피성 영화에 눈길을 주게 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킹스맨’부터 최근 ‘매드맥스’까지 올 상반기 흥행한 외화 대부분이 호쾌한 액션 위주의 블록버스터였다. 같은 기간 200만 이상 모은 한국영화도 4편 중 3편(‘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과 ‘스물’, ‘악의 연대기’)이 오락영화로 분류되는 장르물이다.

상대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정서가 짙은 한국영화는 성적이 나빴다. 임권택 감독의 신작 ‘화장’은 14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고, ‘칸의 여왕’ 전도연을 내세운 ‘무뢰한’(2일 기준, 누적 31만 명) 역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적을 내고 있다. 다수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박정범 감독의 ‘산다’ 역시 흥행 재미는 못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영화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상반기 화제작 중 하나인 ‘위플래쉬’ 역시 각종 패러디가 등장할 만큼 인기를 모았지만, 실제 흥행 면에선 150만이라는 소박한 관객 수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인들이 대중영화, 오락영화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해묵은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조폭 코미디나 섹시 코미디, 전형적인 신파를 벗어난 작품들을 꾸준히 만드는 이들이 더 많다. 하지만 색깔있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지다 보니, 관객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천편일률적’이라는 불신과 피로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려는 감독과 제작사의 허탈감이 커지다보면, 이들 역시 획일적인 대중영화 제작에 뛰어드는 비관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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