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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가족 돌보느라 자기 아픈 줄도 모르고…가족 돌봄자들이 위험하다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A(70) 씨에게 비극이 닥친 것은 지난 2013년,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A 씨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뒤 약 1년간 극진히 간호했다. 그러던 A 씨는 지난달 19일 돌연 아내를 요양병원에서 퇴원시켜 집으로 옮겼다. 자식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A 씨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자신도 제초제와 살충제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A 씨는 결국 살인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어느날 갑자기 닥친 병마로 인해 금슬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들 부부의 삶이 나락으로 빠진 건 한순간이었다.


A 씨처럼 병든 가족을 돌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가족 돌봄자’들이 늘고 있다.

A 씨의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4일에는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 주차장에서 B(28ㆍ여) 씨가 차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십여년간 지적장애 1급인 언니를 돌봐온 B 씨는 유서에서 “할만큼 했는데 지쳐서 그런다”며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달라”고 말했다.

또 지난 3일에는 경북 포항에서 모녀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딸의 병세 악화를 보다 못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몸이 불편한 환자 뿐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는 가족 돌봄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일 서울의 한 치매지원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센터에 방문하는 치매 환자 보호자의 3분의 2 가량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치매의 경우 약을 먹는다고 낫는 병도 아니고, 치료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가족들이 더욱 지칠 수밖에 없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스스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이 관계자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모든 관심이 환자에 쏠려 있다”면서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세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지난달에 발표한 ‘노년기 가족돌봄의 위기와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도한 돌봄 부담은 환자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전체 노인 학대 3424건 중 85%가 가정 내에서 벌어졌다. 학대가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살해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위한 여러가지 제도를 마련한 상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일부 제도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정부는 지난 2012년 8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가족이 질병이나 사고, 노령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경우 최장 90일까지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돌봄휴직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최 연구위원은 “실질적으로 제도에 대한 인지도나 이용률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치매교육도 센터가 지리적으로 멀거나 생업에 나가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로 참여율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최 연구위원은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돌봄수당이나 연금제도 등을 통해 가족돌봄자를 직ㆍ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가족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개발하는 방식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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