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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하찮은 것에 대한 경의…조각가 정현의 ‘녹드로잉’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유성이 쏟아지는 듯 하다. 달리 보면 철물 파편들이 강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인트를 칠한 철판을 긁어서 흠집을 낸 뒤, 오랜시간 동안 물을 뿌리거나 비에 젖어들게 만들어 철판의 녹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흐르게끔 유도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녹물이 새긴 시간의 흔적을 거꾸로 뒤집어 작품을 완성했다.

조각가 정현(58)이 15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버려진 재료, 혹은 가장 하찮은 것으로 상징되는 침목(枕木),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의 재료에서 거친 질감과 물성 강한 조각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던 작가가 이번에는 드로잉 위주로 전시를 꾸몄다. 

Untitled, 2014, 철판에 녹드로잉, 116x55㎝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 걸린 70여점의 드로잉은 성난 사람의 얼굴, 어지럽게 뒤엉킨 풀, 불타는 나무와 같이 날선 모습을 하고 있다.

콜타르와 오일바를 질료로 나무껍질, 구긴 종이, 고래 아가미 등을 일반 붓 대신 사용한 그의 드로잉은 때론 신경질적으로도 보일만큼 거칠다.

8톤짜리 쇳덩어리도 작품으로 가져왔다. 전시장 안과 밖에 배치된 파쇄공은 제철소에서 쇠 찌꺼기를 용광로에 넣을 크기로 깨뜨리기 위해 쓰는 거대한 쇳덩어리다.

본래 무게 16톤짜리 파쇄공이었던 것이 자석이 붙은 크레인으로 25m 높이까지 끌어올렸다가 떨어뜨리는 과정을 수년간 반복하면서 찢기고 패이고 깎여나간 것이다. 

Untitled, 2013, Steel, 110x126x126㎝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작가는 “파쇄공 표면에 선명하게 찍힌 이 상처들을 통해 시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련과 인고,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를 작품에 담았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계속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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