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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최고식당 엘불리의 천재셰프와 ‘예술’이 된 요리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지난 2011년 7월 30일, 스페인 카탈루냐 주, 크레우스 곶 코스타 브라바의 외딴 해변에 숨은 한 식당이 문을 닫았고 이 소식은 현지 언론은 물론 BBC, 뉴욕타임스, AP 등 세계 각국의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창업주의 반려견이었던 불독의 이름을 붙였다는 작은 식당, ‘엘불리’(Elbulli)는 어떻게 폐업 또는 휴업이 세계적인 화제가 될 수 있었을까?

객관적인 지표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엘불리는 세계적인 권위의 프랑스 식당 평가 책자인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14년간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았고,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식당에 5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2001년부터는 저녁에만 문을 열었고, 하루 50여명의 손님만 받았으며, 1년 중 6개월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엘불리의 고객들은 메뉴 선택권이 없었다. 매년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메뉴가 일괄적으로 제공됐다. 전세계에서 매년 250만명 정도가 예약을 요청하지만 그 중 8000명 정도만 엘불리의 테이블에 앉았다. 엘불리에서의 식사는 당연히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이루고 싶은 소원의 목록)가 됐다. 그러고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은 레스토랑 중 식대가 가장 저렴했다. 작은 접시에 담겨 40여가지 요리가 차례로 제공되는 저녁의 평균 가격은 250유로(33만원) 정도였다. 신문, 잡지, TV 등 세계적으로 수만건의 언론보도 대상이 됐던 세계 최고의 식당은 왜 문을 닫았을까? 이곳의 주인이자 셰프이며 ‘분자요리’의 창시자로 천재 요리사로 칭송받았던 페란 아드리아의 ‘철학’ 때문이었다. 새로운 요리의 창조를 위해 1년간 6개월 동안을 식당 문을 닫았던 페란 아드리아는 새로운 영감과 창조를 위해, 즉 ‘미학적인’ 이유 때문에 잠정적인 폐업을 결정했다. 


페란 아드리아와 엘불리에 대한 수많은 책과 기사, 심지어 영화까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는 27일 번역 출간 예정인 ‘엘불리의 철학자’(장 폴 주아리 지음, 정기헌 옮김, 함께읽는책)는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만큼이나 독특한 시각과 독창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책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고 수필가이며 프랑스 주간지 ‘레볼루시옹’의 편집장을 지낸 진보적인 사상가 장 폴 주아리가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를 예술과 철학으로 해석한다. 미식가의 허풍이나 철학자의 궤변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페란 아드리아를 ‘예술가’로 일컫고, 그의 요리를 작품으로 받아들인 것은 장 폴 주아리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세계적인 예술제로 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 현대미술전은 지난 2007년 페란 아드리아를 아티스트 자격으로 공식 초청했다. 물론 요리사가 초청된 것은 카셀 도쿠멘타가 창립된 1955년 이후 처음이었다. 프랑스 작곡가 브루노 만토바니는 2007년 엘불리에서 맛본 35가지 요리를 다시 기억해 내 그 순서에 맞춰 악보를 썼고, 그것이 ‘환상의 책-페란 아드리아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곡이다.

‘먹는다’는 가장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로 매개된 요리는 어떻게 작품이 되고, 요리를 한다는 것은 어떻게 예술적 창조행위가 될 수 있을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패러디한 ‘미식이성비판’이라는 제목의 장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장 폴 주아리는 먹는다는 행위를 진지한 미적, 학적 대상으로 거의 다루지 않거나 폄하해왔던 철학사를 일별한다. 니체는 일종의 ‘소화기관의 무의식’이 사상의 형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식욕을 ‘저열한 감각적 삶’(플라톤)이나 ‘식물이나 동물의 수준’(아리스토텔레스), ‘영혼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에피쿠로스학파) 등으로 여겼다. 라블레, 파스칼, 루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저자가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를 예술로 해석하기 위해 가져오는 개념은 칸트의 미학이론이다. 그는 칸트의 이론에 바탕해 독창성과 보편성, 대상이 아닌 대상의 ‘재현’에 대해 느끼는 아름다움, 감각의 경험에서 자아와 세계의 성찰로 이끄는 오성의 확장 등을 예술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증’한다. 


저자는 마늘을 곁들인 아몬드 아이스크림, 가스파초 랑구스틴, 배가 들어간 오리고기, 푸아그라 타탱, 야자유로 요리한 가자미와 커리, 피망 소스를 곁들인 참치회와 로즈마리 젤리, 캐러멜 메추리알, 흰콩으로 만든 거품을 천연 성게 가시와 함께 내놓은 에스푸마, 순전히 토마토만을 사용해 각각의 형태가 다른 소르베ㆍ그라니테ㆍ아이스크림ㆍ젤리ㆍ에어무스를 한 접시에 내놓은 요리, 12가지 향신료를 시계 눈금처럼 빙둘러 내놓은 메뉴(향신료와 그라니 스미스 사과 젤리 시계) 등 자신이 먹어보았던 음식들을 세세하게 예로 들며 감각에서 예술, 철학으로 이끄는 놀라운 순간들을 묘사한다.

이를테면 “나는 그 다양한 텍스처(표면의 질감)를 통해 토마토의 모든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런던의 안개를 가시적인 대상으로 만든 것은 터너의 풍경화라고 말했다. 플라톤이 만약 예술이 무엇이고 미십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면 그것을 토마토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이데아’라고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페란 아드리아는 네 시간에 걸쳐 손님들에게 이런 식의 낯선 감각과 감정을 연속적으로 선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 속에서 우리가 자신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된다는 점이다. 헤겔이라면 ‘감각적 형태로 현상하는’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놀라움, 반전, 보는 즐거움과 맛, 향, 촉각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칵테일” 등이다.

장 폴 주아리의 ‘분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현대사상가로 꼽히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 ‘해체’ ‘재구성’의 개념을 페란 아드리아의 작업에 적용하는 것에까지 이른다. 이와 함께 1962년 독일의 한 의사가 열었던 해변가의 요깃거리 식당이 미슐랭 가이드 별 셋 레스토랑이 되기까지,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군대취사병에 불과했던 젊은이가 세계 최고의 요리사까지의 여정을 담아내며 ‘유럽 요리의 약사’까지 아우른다. 페란 아드리아의 전속 사진작가였던 프란세스크 기야메의 요리 사진도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엘불리의 철학자’는 미각과 시각을 흥분시키는 ‘파충류의 뇌’에서 예술과 철학을 논하는 ‘포유류의 뇌’까지 감각적이고 지적인 포만감을 주는 책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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