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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속 · 과잉입법…애먼 기업들만 멍든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에도
대기업은 계열사간 거래증가…중기 · 중견기업만 稅부담 고통

“유럽에도 없는 너무 센 법안”…화평법 · 화관법도 논란 여전

z국회가 규제혁파의 사각지대



국회의 졸속ㆍ과잉 입법에 대한민국 경제가 멍들고 있다. 정치적 합의 또는 실적쌓기용으로 양산한 법안들의 폐해는 대기업은 물론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견ㆍ중소기업들도 멍들게 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법안이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부작용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 편법상속을 막기 위해 법을 만들었는데 애먼 중소ㆍ중견기업들의 과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 1월 중소ㆍ중견 기업에 대한 과세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6월만에 다시 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과세 대상은 전년대비 73% 줄어든 2800명에 그칠 전망이다. 


그러나 대기업들도 보란듯이 느슨한 법망을 빠져나가 지난해 10대 그룹의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는 154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 시행 1년 만에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국회가 얼마나 아마추어식으로 입법과 규제를 양산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화학물질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화평법(화학물질 등록ㆍ평가에 관한 법률)도 대표적인 졸속 의원입법 사례로 꼽힌다. 당초 환경부와 산업부가 조율 끝에 지난해 상반기 정부합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일부 야당 의원들이 정부안보다 강한 법안을 기습 발의해 본회의까지 통과시켰다. 사업장 매출액의 5%의 과징금을 매기는 폭탄 조항을 담은 화관법(화학물질 관리법)도 지난해 5월 발의 후 32일만에 입법화됐다.

그러나 막대한 관리 비용과 과징금 부과 능력이 없는 중견ㆍ중소업계의 반대가 들끓자 정부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법안을 대폭 손질해야 했다. 화학물질 사고 발생시 해당 기업의 매출액 대비 최대 5%까지 부과하기로 했던 화관법안은 ‘일 부과기준’으로 과징금 산정기준을 조정하면서 크게 완화됐다. 화평법 하위법령안도 화학물질 등록 대상과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과잉입법’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내년 시행을 앞두고 다시 조정될 여지가 남아있다. 한 외국계 화학기업 CEO는 “유럽에서도 유례가 없을만큼 강도가 센 규제법안”이라고 말했다.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장에 산업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소속 정당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무리한 법안이 거침없이 통과된다. 2013년 12월31일과 2014년 1월1일 새벽 사이 113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그중 58%에 해당하는 65개 법안이 가결 당일 혹은 가결 전날 제안됐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의원입법의 경우 신중한 검토 절차 없이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얼마나 쉽게 법안을 가결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비전문성도 문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고려하기보다 지역구 관리에 유리한 예결위, 교문위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인기 상임위에 몰리는 의원들을 여야 수뇌부가 자의적으로 조정해 배치하다 보니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한 초선의원은 “수백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찬성 버튼을 누르는 선배 의원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변호사, 로스쿨 출신 보좌관들이 늘어나가는 추세지만, 산업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들은 드물다. 노동계와 긴밀히 교류하는 야당 의원과 보좌관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산업계를 대변해 이를 방어할만한 정치인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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