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44)은 ‘소년이 온다’ 속 가상의 영국 인문학자의 글을 빌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통찰을 전한다. 소설이 담은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문답이다. 세월마다, 계절마다 우리 역사는 ‘미결(未決)의 죽음을 남겼다. 언제는 부정한 권력의 폭력이었고, 어느 땐 자연의 무자비한 복수였으며, 때로는 탐욕의 무참한 결과였다.그래서 이 땅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아름답기 위해서 참혹해야 했다.
소설가 한강 인터뷰.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2011년 펴낸 전작 ‘희랍어시간’은 시력 잃은 남자와 청각 잃은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저는 인간의 가장 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면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글이었죠. 그 다음엔 인간의 가장 밝고 눈부신 삶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제목까지 지어놓았습니다. 하지만 1년 이상을 뒤척였습니다. 왜 안 됐을까 제 내면을 들여다 보았죠. 제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공포를 마주했습니다. 1980년의 광주의 기억이었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에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할까? 이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은 결코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용산참사와 같은 또 다른 미결의 죽음들은 한강에게 공포에 대한 오랜 원형적 체험을 불러냈다. 소녀 시절 어른들 몰래 펴보았던 광주항쟁 사진집 속 처참한 희생자들의 모습과 어른들이 나누던 불길한 소문들. 그 속에 한 소년의 죽음이 있었다. 한강은 광주에서 태어나 5ㆍ18 직전 서울로 올라와 자랐는데, 광주 옛 집을 샀던 이의 열대여섯살된 아들이 희생됐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의 숨죽였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작가는 그 희미한 옛 기억을 좇고 기록과 자료를 찾아 소설로 지어냈다. ‘소년이 온다’는 5ㆍ18 당시 도청에 남아있다가 진압군에 희생된 소년의 이야기를,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소년을 알았던 다양한 이들의 시점과 목소리로 그려냈다.
1993년 시로 등단하고 소설로는 신춘문예 당선과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한 한강은 20여년을 돌아서야 스스로에게조차 미결이었던 역사의 비극을 마주했다. 이달 책을 펴내고 최근 만난 한강은 자신의 소설을 두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했다. 또다시 미결의 죽음을 바닷속에 남기고 새로운 계절을 맞아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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