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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첫 교단 서던 날 니 숨소리가 어찌나 힘이되던지…
시각장애인 김경민씨가 안내견 미담이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준 미담아. 1년쯤 지나 네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 오는구나. 너의 몸을 만질 때 문득 잡히는 혹들, 하얗게 새어버린 너의 눈썹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쩍이나 많아진 애교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한 흔적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7년 전이었던 2007년 2월, 경기도 삼성에버랜드 안내견 학교에서 우린 처음 만났어. 아마 넌 두 살이 채 못 되었을 거야.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참 많이 어색했단다. 너랑 잘 지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야.

서먹해하며 맘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던 나에게, 먼저 다가왔던 건 미담이 너였어. 기억나? 훈련소에 입소하고 1주일이 지났을 때였을 거야. 퇴소 1주일을 남겨두고 감기몸살로 내가 많이 아팠었잖아. 난 훈련소 방 안에서 어지럼증으로 휘청거리다 결국엔 주저앉고 말았지. 조련사 선생님을 부를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쓰러졌었잖아. 정신이 혼미해지며 토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 넌 코를 킁킁거리며 네 몸을 나에게 부비기 시작했었어. 그때 처음으로 마음으로 널 안으며 너를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나중에 조련사 선생님으로부터 미담이 네가 내 몸의 이상징후를 먼저 알아채고 킁킁거렸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단다. 그때부터 넌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어. 잠을 잘 때도 내 머리맡에 네가 있었고, 집을 나설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교정을 함께 걸을 때도 언제나 넌 내 곁에 있었어. 그렇게 넌 나와 함께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많은 일이 있었어. 19살부터 시작된 대학생활,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지금까지도 언제나 넌 나의 곁에 있어 주었어. 교육사회학 시간이었을 거야. 그 교수님은 수업을 길게 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었어. 내가 ‘미담아 쉬어’라고 하자 여느 때처럼 넌, 웅크리고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어. 1시간이 지났는데도, 교수님은 쉬지 않고 수업을 계속 하셨지. 강의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어. 그때 갑자기 바닥에 엎드렸던 네가 일어나 자리를 맴돌기 시작했어. 수업을 진행하려던 교수님이 널 보더니 웃으시며 ‘조금 쉬었다 하자. 미담이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 나왔단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영어시간 내내 교수님을 바라보던 미담이 너 때문에 졸던 아이들이 교수님으로부터 면박을 당한 일부터, 2011년 학교 졸업식 때 너와 함께 학사모를 쓰고 연단에 오른 기억까지, 나의 학교생활은 모두 너와 함께였단다.

내가 ‘영어선생님’이 돼 첫 발령지인 서울 인왕중학교로 부임했을 때도 내 곁엔 네가 있었어. 생의 첫 수업, 그렇게 떨렸던 날도, 교탁 한쪽에서 들려오는 너의 숨소리에 내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얻었는지 넌 모를거야. 꺄르르거리던 나의 첫 제자들을 기억할 나이가 될 때도, 아이들과 함께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준 너의 모습이 같이 떠오르겠지.

미담아. 사람들이 자주 나에게 넌 어떤 의미인가를 물어 봐. 넌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의 일부? 나의가족? 어떤 가족도 24시간 함께하지는 않아. 너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쉽게 찾지 못하겠어. 네가 날 떠날 때까지 1년여가 남았어, 그때까지 좀 더 사랑해주고 좀 더 안아줄게. 사랑해 미담아.


※이 기사는 지난 20일 있었던 김경민(26) 씨와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경민 씨는 초등학교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뒤,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미담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경민 씨가 임용고시에 합격해 인왕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현재까지도 미담이는 함께하고 있습니다. 미담이는 현재 9살로 삼성화재의 위탁으로 삼성에버랜드에서 교육을 받고, 1살이 넘었을 때 경민 씨에게 입양됐습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60살 가량 된 미담이는 1년 뒤쯤이면 은퇴해 경민 씨를 떠날 것입니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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