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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붓딸 성폭력 아버지가 무죄?
국선변호사 이혼소송 동시진행
법원 “이혼하려 딸 이용”무죄 판결
법률조력인 제도 허점 때문


A 씨는 지난 2012년 딸이 자신의 남편이기도 한 의붓아버지로부터 4년 가까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동안 남편의 폭력에도 견뎌왔던 A 씨였지만 자신의 딸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을 수 없어 결국 남편에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2년여간 진행된 재판은 남편의 무죄로 끝났다. 항소를 거듭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의붓딸을 일곱 살부터 4년 가까이 강제 추행한 의붓아버지 B(32) 씨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국선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이혼소송을 동시에 진행한 게 화근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사건이 발생하자 A 씨는 1심 진행 중 상담센터를 통해 딸 다연(가명) 양의 법률조력인(국선변호사)을 고용했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데다 변호사 선임비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률조력인은 사건에 대한 조언은 거의 하지 않고, 웬일인지 A 씨에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과 남편과의 이혼소송을 동시에 진행할 것을 권했다. A 씨는 약간 의아했으며 혹시 이혼소송이 성폭력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까 주저했지만 조력인은 “이혼소송과 형사사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A 씨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혼소송은 아이 성폭행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이 지속되면서 심신이 지친 다연 양의 진술이 자꾸 바뀌자 재판부는 A 씨가 이혼하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고 판단해 의붓아버지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황당하고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변호사 윤리에 대한 근원적 판단 잣대가 필요한 사례라는 게 중론이다. 변호사 윤리장전에 따르면 변호인은 사건 유치를 목적으로 예상되는 의뢰인과 접촉하거나 사무직원, 제3자로 하여금 선임을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9조), 현재 수임하는 사건과 이해가 저촉되는 사건을 수임해서는 안 된다(17조). 이 사건의 경우 변호사가 재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이혼소송을 A 씨에게 권했으므로 변호사 윤리에 반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해당 법률조력인은 헤럴드경제 기자와의 통화에서 “A 씨가 먼저 이혼소송을 의뢰했다”며 “이혼소송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문제지, 이혼소송을 병행한 것이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A 씨는 “최종 판결이 끝나고 상담센터에 갔을 때 센터에는 형사사건 의뢰서만 있었고, 변호사 사무실에만 형사사건과 이혼소송 의뢰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법률조력인 제도를 활용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조사(2013년 3월)에 따르면, 법률조력인 제도 이용자 중 만족한다는 대답은 47.5%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 갈 때 법률조력인이 피해자와 동행하는 경우는 26%에 그쳤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법률조력인들이 이처럼 태만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이유로 ‘저렴한 수임료’를 꼽고 있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지난해 법무부에서 법률조력인을 600명가량 지원했는데 수임료가 건당 60만원에 불과해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사람에 할당되는 사건도 많고, 성폭력 사건과 같은 민감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전문성은 점차 결여되고, 동기 부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민원이 늘면서 법무부는 2013년부터 국선전담 변호사 제도를 도입했다. 월 800만원 보수를 받는 국선전담 변호사는 개인적인 사건 수임이 아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아직 아동ㆍ장애인 성폭력 사건에는 국선변호사가 법률조력인으로 배정되는 제도도 병행 중이다. 결국 다연 양 같은 사건을 현재로선 근원적으로 해결할 법과 제도는 없는 셈이다.

변호사협회 측은 “현재 국선변호사가 사선(개인적 수임)을 병행하는 행위를 제어할 방법까지는 없다”며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할 경우 지방 변회나 변협에 진정해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최선인 실정”이라고 했다.

서지혜 기자ㆍ권재희ㆍ이현용 인턴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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