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복기하라, 리스크경영>“기업은 봉” 3류 정치도 바뀔 때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8일, 국회에서 나온 폭탄발언 하나에 온 나라가 술렁였다. “동양그룹과 유사한 대기업이 4곳 더 있다”는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 뉴스창에 뜨자마자, 개인 투자자들은 알파벳 맞추기에 여념 없었다. “내 주식도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쓸린 투자자들의 눈에는 때마침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운 종합주가지수도 들어오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질의와 이에 대한 금감원장의 답변 덕에 졸지에 ‘문제아 4인방’이 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내놓고 “우리 회사는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나온 말 한마디에 기업과 금융시장 모두가 혼돈에 빠지고 만 것이다.

국회와 여의도 정치권에게 기업은 좋은 먹잇감 중 하나다. 유권자들의 시선이 경제 불안을 향할 때는 ‘투자 확대’를 주문하고, 고용 불안에 떠는 유권자를 위해서는 ‘채용 확대’를 기업에 요구한다. 또 자영업자들의 표가 필요할 때는 ‘문어발 식 확장, 불공정 행위’ 등을 운운하며 기업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국감장, 또는 청문회장으로 대기업 총수를 불러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차기 당선을 위한 ‘필수 코스’가 됐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기업이나 경제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한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중복 투자를 정리하겠다며 민간 기업간 합병과 지분 교환을 강제했지만, 그 결과물은 ‘거대 부실기업 양산’으로 나왔고, 중소기업만 뛰라며 대기업을 쫓아낸 자리에는 외국계 기업들이 판치기 일쑤였다.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의 영업을 강제로 금지시켜도 재래시장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소식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수 많은 정치인들이 나서 통화 기본료 1000원을 내렸지만, 소비자들은 사용료가 몇 배나 더 비싼 스마트폰을 선뜻 집어들었다. ‘경제’를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손댄 결과는 모두에게 부작용만 가져다 줬을 뿐이다.

이런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반복될 수록 늘어나는 건 중소ㆍ벤처기업이나 소비자 복리 후생이 아닌, 반기업 정서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기업 및 경제현안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기업가에 대한 호감도는 지난해 73%에서 51%로 22%포인트나 급락했다. 기업에 대한 호감도 역시 68%에서 63%로 떨어졌다. ‘탈세하고 자기 배만 불리는 곳’으로 기업을 여기는 국민들에게 ‘국가 조세수입의 대부분은 기업들이 낸 법인세’라는 말 따위는 결코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이 터뜨릴 ‘기업 폭탄’은 이게 전부가 이니다. ‘글로벌 스텐더드’로 포장한 정치권의 순환출자 규제 논란, 일감몰아주기 법안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논의 등은 자칫 우리 기업들, 특히 중견, 중소 기업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나 재계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은 분명히 정치인들이 해야할 일”이라면서도 “재계 전체를 ‘악’으로 묶거나,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기업 정책을 좌지우지 하려는 정치권의 태도 역시 반성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