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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경택“9억7천만원에 낙찰된 그림,3천만원이었는데 아무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지난 2007년 제 그림이 낙찰되며 ‘7억원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줄곧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앞으론 더하겠네요. 같은 그림이 크리스티 홍콩의 리세일에서 10억원 가까운 값에 팔렸으니 말이죠. 제 그림이 해외 마켓에서 높은 값에 팔린 건 반가운 일이지만 (작품은 가려진 채) 가격만 자꾸 논해지는 작가가 되는 건 원치 않아요. 사실 작품값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최고가를 또다시 경신했는데도 작가 홍경택(45)은 의외로 담담했다. 색색의 볼펜과 색연필이 화폭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처럼 집적돼 ‘강렬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기는 그의 ‘Pen(펜) 1’이라는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경매’(25일)에서 열띤 경합 끝에 663만홍콩달러(한화 약 9억7100만원)에 팔린 뒤 그의 소감이 궁금해 전화로 만났다.

그는 앞으로 ‘9억원 작가’니 하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닐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홍경택의 ‘Pen 1’은 작가가 1995~1998년에 그린 ‘Pen’ 시리즈 중 하나. 대형 캔버스 3폭을 이어붙여(259×581㎝), 볼펜과 연필을 빼곡하게 배치한 그림은 파워풀한 매력을 선사한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각적 충만감을 전해주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648만홍콩달러(7억7760만원)에 판매되며 기염을 토했다. 홍콩 크리스티 한국작가 출품작 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홍경택은 단박에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이 그림을 7년간 보유해온 외국인 낙찰자가 크리스티 경매에 그림을 다시 내놓으며 리세일이 이뤄진 것. 그러자 국내 화랑가에선 ‘과연 호황기의 가격이 유지될 것인가’‘거품이 꺼지지 않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각종 억측도 나돌았다.

이번에 홍경택의 ‘Pen 1’은 경매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고가작품만 따로 모은 이브닝세일에 포함됐다. 한국작가 작품 중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에 나온 작품은 백남준의 입체작품 2점과 홍경택의 회화가 유일했다. 다행히 홍경택의 작품은 리세일에서도 반응이 뜨거워, 홍콩 크리스티 한국미술 출품작 중 최고가를 다시한번 경신했다.


“2007년 팔렸던 제 그림이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론 사실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어요. 유찰되거나 값이 뚝 떨어지면 엄청 망신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일이고요. 낙찰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무엇보다 거품이 아니었음이 확인돼 반가웠고요. 앞으로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함을 절감했죠”.

사실 최고가를 두 번이나 경신했지만 홍경택에게 주어지는 소득은 별로 없다. 작품이 작가의 품을 떠나, 컬렉터에게 팔려나가면 그 것으로 작가는 끝이다. 경매 차액은 온전히 컬렉터의 몫이다. 그렇더라도 홍경택은 자신의 작품이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꾸준히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크리스티 이브닝세일을 지켜본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180만홍콩달러에서 경매가 시작된 ‘Pen 1’은 플로어(경매장) 응찰자와 전화응찰자가 경합을 벌이며 16회의 호가를 거쳐 663만홍콩달러에 전화응찰자에게 낙찰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경쟁력을 다시한번 입증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결과”라고 했다. 홍경택 작품을 구입한 사람은 유럽계 컬렉터로, 전화응찰을 통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천호동 토박이인 홍경택은 스타작가가 됐지만 여전히 천호동 뒷골목의 낡은 건물에서 조수들과 밤낮없이 작업 중이다. 그는 말한다.

“모두들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줄 알지만 정반대다. 무명생활이 무척 길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이 잔뜩 모아놓은 알록달록한 펜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구나 싶어 미친 듯 그린 게 ‘Pen’ 연작이다. 원색의 펜들을 오일물감으로 세밀히 그리며, 세번 네번 칠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 나중엔 탈진할 정도였다. 세폭의 연작을 완성하는데 꼬박 4년이 걸렸다. 그런데 작품을 낸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아무도 사주지 않았다. 미술전문가며 관계자들은 ‘그림이 참신하다’, ‘멋지고 강렬하다’고 환호하며 전시를 통해 발표할 기회를 주었지만 수집가들은 값만 물어보곤 그만이었다. 무척 서운하고 힘들었던 시기다. 지금 9억원에 낙찰됐다고 하지만 ‘Pen 1’은 처음엔 고작 3000만원이었다. 몇년을 혼신을 다해 그린 세폭의 그림이 몇천만원도 못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서운했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홍경택이 제작한 ‘Pen’연작은 지금까지 20점에 이른다. 그 중 절반은 해외로 팔려나갔다. 작가는 초기에 그린 대작 ‘Pen2’와 ‘Pen3’를 아직도 갖고 있다. ‘Pen2’는 120호 크기의 그림 6점을 위 아래로 이어붙인 대작이고, ‘Pen3’는 200호 크기 작품 넉점을 가로로 이어붙인 8m 길이의 대작이다. 이들 작품은 현재 국내의 모 미술관이 컬렉션을 검토 중이다. 



펜, 책 등이 무수히 집적된 그의 회화에 대해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주변 집기를 강박적 기하구조 속에 재배열하는 패턴화의 열정, 총천연색의 대폭발, 초현실적 형상주의와 팝아트의 재기발랄이 한데 묶였다”고 평했다.

그의 그림은 모 그룹 회장이 수집하기도 했다. SBS TV의 방송 프로그램에 그 회장의 집이 공개됐을 때, 홍경택의 그림도 함께 전파를 탔다. 그런데 그 회장이 “당신 그림은 너무 강렬해 볼 수가 없다”고 하자 홍경택은 “그럼, 그림 앞에 살짝 커튼을 치세요”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몹시 강렬하고, 또 몹시 가볍다. 그런데 그 가벼움 속에 우리의 삶이,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인 현대인의 고통과 절실함이 켜켜이 녹아들어 있다.


홍경택은 늘 새로운 작업을 갈망한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한 후 ‘Pen’ 시리즈의 주문이 가장 많지만 그는 ‘Pen’시리즈 외에 책 연작, 펑케스트라(Funkchestra) 등 갖가지 시도를 거듭 중이다. 한가지만 붙들고 있는 것은 고인 물처럼 답답해 끊임없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것. 모노드라마처럼 손(手)이며 발(足)을 주제로 한, 진지하면서도 감각적인 작품도 시도한바 있다.


최근 그는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로비에 ‘펑케스트라 인 모션’이라는 타이틀의 6채널 영상작업을 설치했다. 아찔할 정도로 사이키델릭한 화폭 중앙에 비틀즈, 메릴린 먼로, 백남준 등 유명 인사를 그려넣은 ‘모뉴먼트’, 꽃과 새를 어우러지게 한 ‘밸류어블’, 화려무쌍한 패션이미지를 표현한 ‘패션쇼’ 시리즈가 화려하게 결합된 영상작품으로 이 또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 한국을 대표하는 팝아티스트 홍경택은 이렇듯 오늘 여기, 우리의 삶을 반영한 경쾌하고, 강렬한 작품으로 많은 팬을 사로잡고 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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