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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이 ‘젠틀맨’이 미국 문화의 첨병이라고?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싸이의 ‘젠틀맨’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화작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는 ‘포르노 한류’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쓰고 있다. 정 교수가 지난 18일 프레시안에 쓴 ‘싸이의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라는 글은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한류 전도사를 가장한 미국의 첨병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많은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정 교수는 ‘젠틀맨’ 뮤비가 여성 학대에 가깝고, 여성 혐오적이며, 이 선정성의 수준이 ‘섹시’나 ‘에로틱’의 수준을 넘어서 포르노그래피 상품의 수준이라고 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고, 한 부분이 확대해석될 수도 있다.

인터넷에는 선정적이고 포르노 수준의 영상물들이 넘침에도 ‘젠틀맨’ 뮤비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정 교수의 생각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필자도 ‘젠틀맨’의 성패를 좌우할 뮤비를 보자마자 “너무 자극적이어서 불편하다는 시각도 있다. 싸이 앞에서 소스를 바른 어묵을 야릇하게 먹는 가인의 모습은 선정적이다”고 썼다. 



하지만 정 교수는 ‘신사’의 허위의식에 대한 폭로, 그 권위에 대한 조롱, 잘난 체 하는 ‘신사’를 물먹이는 삐딱한 시선에서 통쾌함이 느껴진다는 반응은 외면했다. 정 교수는 “나는 그게 도대체 풍자인지 전복인지 저항인지 알 수가 없는 

‘싸이 포르노그래피’에 열광하는 국민~”이라고 썼다. 문화에서 풍자나 저항은 ‘나, 지금 풍자하고 있네. 도발하고 있네’ 하는 식은 아니지 않는가. 싸이만의 B급의 삐딱한 시선의 전달방식은 세계인들도 즐기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싸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정 교수는 “그런데 싸이의 음악, 싸이의 춤이 과연 한국의 것인가. 사실 이거 몽땅 미국 것 아닌가”라고 한다. 이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싸이가 한복을 입고 나오길 바랬던가.

‘강남스타일’은 내수용이고, ‘젠틀맨’은 철저한 수출용이다. 예상치 못한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터지자, 차기작인 ‘젠틀맨’은 심하게 말하면, ‘강남스타일’ 속편으로 제작한 것이다. 싸이도 콘서트 ‘해프닝’ 무대에서 “강남스타일을 뽀개기 힘들다면 그 분위기는 가지고 가야한다”는 말로 ‘젠틀맨’의 컨셉을 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싸이의 음악과 춤이 미국 것이라는 건 어떤 근거로 한 말인지 의심스럽다. 요즘 한국 가수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중에서 영미권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지 않은 게 어느 정도나 될까. 그렇다면 아이돌 가수들이 선보이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클럽 음악은 모두 미국 것, 영국 것이 아닌가.

영화 ‘서편제’도 한국 것이지만 강제규 감독이 할리웃 연출방식을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도입해 620만의 한국 관객을 끌어들인 ‘쉬리’도 한국적인 것이다. 미국, 러시아, 브라질, 일본, 태국 등지의 한류팬 젊은이들이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에서 열광적으로 춤을 췄다. 한국 아이돌을 따라한 것이지만 열심히 모방하다보면 자기들의 콘텐츠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문화에서 국가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시각이다. 외부의 것이라도 수용해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가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 완성도의 관건이다.

정 교수가 “미국 사람들이 싸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문화를 제법 잘 따라하고 자신들의 음악을 가지고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한국인을 기특해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세계적 베스트 셀러 ‘도날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부제는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세뇌해 미국의 것을 찬양하기 만든다는 것이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보는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과 백인의 우월함을 주입받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사람들’ 등이 중국에서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중국언론과 기성세대가 이 드라마들을 열심히 보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가부장제와 한국 라이프스타일의 우월함을 세뇌시키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꾸짖어야 옳은 것인가. 이것이야 말로 문화적인 편협함이다. 사실 문화의 힘은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싸이를 한류 전도사를 가장한 미국의 첨병이라고 보는 시각은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이라는 문화현상이 너무 갑자기 터지다 보니 생긴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라고 믿고 싶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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