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의료급여 2824억 삭감
보편적 복지 기조 속 극빈층 피해
방위사업비·R&D 예산도 줄어
진통 끝에 지난 1일 새벽 통과된 새해 예산안은 한마디로 정해진 형편에서 복지를 늘리기 위해 나머지 재정지출의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증세, 국채발행 등 추가 재원창출 없이 복지예산을 증액하다 보니 저소득층 의료비, 국가안보, 성장동력 등 전통적 필수 예산들까지 줄어드는 이른바 ‘풍선효과(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듯 문제해결 후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가 발생했다. 보편적 복지 기조 속에서 오히려 극빈층이 피해를 입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나=복지지출의 확대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가난한 사람들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예산 2824억원이 삭감됐다. 의료급여는 정부 지원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156만명이 병원에 갔을 때 진료비를 거의 내지 않거나 소액만 내고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다. 무상 보육 등 무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이같이 빈곤층 의료 지원에 들어가는 돈은 대폭 줄인 것이다.
방위사업비와 정부의 R&D(연구ㆍ개발) 예산도 뭉텅이로 빠졌다. 차세대 전투기(F-X) 도입 예산은 정부안(4300억원)에서 1300억원이 줄어들어 2017년에 도입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 밖에 대형 공격헬기(AH-X) 도입 예산 500억원, K-2 전차 597억원 등 모두 4000여억원의 방위사업비가 줄어들었다. R&D 예산 관련, 지식경제부의 미래산업선도기술 개발에서 100억원, 그린카 등 수송시스템산업 원천기술 개발에서 50억원, 나노융합2020에서 30억원이 각각 삭감됐다. 해외자원개발 예산으로 편성된 유전개발사업 출자분에서 300억원, 해외자원개발(융자)에서 700억원도 삭감됐다.
▶무상보육 전환으로 4300억원 증가=수정 예산안에는 ‘박근혜표 복지정책’이 대거 반영됐다. 우선 정부의 선별적 무상보육이 국회에서 전면 무상보육(0~5세)으로 재전환됐다. 정부는 애초 2013년 예산안을 짤 때 0~2세 보육료는 상위 30%에 대해선 차등 지원하기로 했지만 국회에선 전 계층에 보육료를 똑같이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보육료 예산이 정부안에서 4359억원 증액됐다.
‘반값 등록금’ 정책에 발맞춰 저소득층 등록금 부담도 추가로 덜게 됐다. 국가장학금 규모를 정부안에서 5250억원이나 더 늘려 소득 수준이 낮은 대학생에 대한 등록금 지원율을 높이기로 했다. 높은 전세가로 고생하는 서민들을 위해 전세자금 대출보증을 1조원 늘려 모두 13조2000억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경로당 난방비 지원(293억원)도 부활했다.
재정지원 일자리도 늘렸다. 사회서비스와 취약계층 일자리를 중심으로 직접일자리를 정부안보다 1만2000개 확대했다. 구체적으로 지역공동체일자리 5000명, 장애인활동지원 5000명, 아이돌봄지원 2000명 등이다.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모두 3710억원 증액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200억원), 새천년대교(400억원), 서울지하철 7호선 인천 석남 연장선(100억원), 부산 초읍터널(20억원)에 추가로 배정됐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