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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전의 세계>주식시장 신종 작전이 판친다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북에서 총알 하나만 넘어와도 국내 증시가 출렁이지. 우리도 한번 해볼까!” 지난해 12월 강남의 한 룸살롱. 작전세력 중 한 명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올 초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들은 바로 작전 모의에 들어갔고 지난 1월 부산의 한 PC방에서 실행에 옮겼다. 메신저를 이용해 증권사 관계자와 애널리스트 203명에게 ‘북한의 영변 경수로가 폭발해 고농도 방사능이 서울로 유입 중’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고, 이후 주가지수가 급변동하는 과정에서 ‘ELW(주식워런트증권)풋’과 ‘ELW콜’ 상품을 매매해 돈을 벌어들였다.

이들은 유포 내용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일본어로 바꾸고, 지난해 3월 일본 원전 폭발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까지 첨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실행에서 차익 실현까지 걸린 시간이 단 9분. 국내 주식시장의 허점을 제대로 노린 신종 작전의 하나였다.



# “코스닥 W사의 주가흐름이 이상하다.” 지난해부터 인수ㆍ합병 추진과 대선 유력 후보와 연관 지어 이름이 여러 차례 오르내리던 기업이었다. W사를 지켜보던 금융감독원은 계좌 조회ㆍ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을 통해 시세조종 입증자료를 포착,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최근 W사 인근의 한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일반 사무실로 위장된 현장에서 W사의 시세조작 혐의에 대한 상당한 추가 입증자료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W사 임원 2명을 비롯한 6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W사는 검찰에 적발된 2명의 임원을 퇴사 처리했으며, 이번 일은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발뺌했다.



주식투자는 다른 어떤 재테크보다도 많은 준비와 노력,그리고 주의가 필요하다. 주식시장 자체가 갖고 있는 변동성은 물론 준비 안 된 개인투자자를 노리는 다양한 사냥꾼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바로 작전세력이 그들이다.

수년 동안 아껴가며 모은 돈, 혹은 평생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을 날리고, 때로는 그 이상의 돈을 잃어 개인 파산은 물론 가정 파탄,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주식투자의 실패 사례 뒤에는 작전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사기꾼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나 관성화돼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이런 암적 존재인 작전세력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책 등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피상적인 소개에 그치거나 그들의 모습을 화려하게 포장해 금융 신지식인 등 잘못된 이미지를 주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영화 ‘작전’에서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멤버십 고급 룸살롱에서 품위 있게 작전을 모의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주인공이 하루 만에 단타로 20%의 수익을 올리는 장면이 연출된다. 전개상으로는 멋있는 장면이지만 너무 꾸며진 내용이다.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 하루 20%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그는 1년 안에 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다. 작전을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게 아니라, 자칫 두둔하고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작전은 정보의 불균형과 막대한 자금을 이용한 불공정한 게임이다. 절대 미화돼서는 안 되는 속임수일 뿐이다.

많은 투자자는 작전에 당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지만 작전세력은 방법과 수단을 계속 진화시키며 또 다른 사기를 준비한다. 보물선을 찾는다는 발표에서부터 해외자원 개발 착수 뉴스, 영변 핵시설 폭발, 최근 정치테마주에 이르기까지 소재도 기상천외하다.

작전세력 구성원 역시 고액자산가에서 사채업자, 금융전문가, 기업 임원, 전ㆍ현직 증권맨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작전세력에 몸담고 있는 전직 증권맨 이재영(36ㆍ가명) 씨는 “모든 주식 작전의 대전제는 해당 기업 대주주나 경영진의 참여와 용인”이라며 “W사처럼 시세조종 현장에 회사 임원이 가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펼쳐지는 상당 부분의 작전은 내부자 거래에서 비롯된다. 내부자 거래는 회사 임직원과 주요 주주, 회계법인 같은 대리인과 작전세력이 결탁,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뒷돈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망 기업과의 인수ㆍ합병을 비롯해 신기술 발명, 신제품 출시, 신사업 진출 같은 호재성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매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내부자 거래 유형이다.

금융당국은 내부자 거래 처벌을 강화해 오고 있지만 내부자 거래 세력들이 얻는 이득에 비해 그 처벌 강도가 약해 도처에 그리고 암암리에 내부자 거래에 의한 작전이 자행된다. 금융당국이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주식거래를 감시하지만 구조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전세력의 시세조종은 대부분 작전이 끝난 뒤에야 밝혀지는 일이 많다”며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 혐의가 있는 업체를 내부 조사만 할 게 아니라 공시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알리는 등 작전세력으로부터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보다 치밀한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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