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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 골프칼럼] (44) 미국 골프를 점령했던 바비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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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프를 점령했던 전설의 골퍼 바비 록.


“드라이버는 쇼이고 퍼팅은 돈이다.” 이 명언을 남겼던 선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골프영웅 바비 록(Bobby Locke 1917-1987)이다. 퍼팅이 골프의 50퍼센트라고 생각한 바비 록은 골프 역사상 퍼팅을 가장 잘했던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의 플레이는 모든 샷에서 상상을 초월했다.

머쓱해진 샘 스니드
1946년, PGA 투어에서 40승 이상을 올리며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34세의 샘 스니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청을 받고 시범경기를 위해서 현지에 도착했다. 민간 항공기가 없던 시절에 배를 타고 그 먼 길을 간 샘 스니드에게는 두둑한 초청료가 지불되었다. 미국 최강의 골퍼가 온다는 소식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골프계는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적당히 거만한 샘 스니드를 기다리던 시범경기 상대는 29세의 바비 록 이었는데 그는 17세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대회인 남아공 오픈을 우승하고 20세에 프로가 된 베테랑 골퍼였다. 두 선수는 남아공을 돌며 16회의 시범경기를 펼치며 대결했는데 결과는 12승 2무 2패로 바비 록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미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골퍼에게 크게 창피를 당한 샘 스니드는 바비 록에게 미국 PGA에 가서 활동할 것을 권유했다. 미국으로 데려가서 PGA 골프의 매운 맛을 보여주려고 했거나 아니면 친분이 생겨서 돈을 벌게 해 주고 싶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PGA 선수들의 굴욕
1947년 4월 PGA 투어가 한창 진행 중인 시즌 중간에 도착한 바비 록은 미국 골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바비 록은 모든 샷을 훅의 구질로 쳤는데 (드로우가 아님) 오른 쪽으로 OB가 될 듯한 볼들이 정확히 왼쪽으로 휘어져 들어와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퍼팅마저도 모두 훅으로 휘어지며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퍼팅 라인을 처음 본 미국 선수들이 놀라는 사이 바비 록은 1947년에만 파죽의 6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2위에 올랐다. 벤 호건과 샘스니드 등이 전성기를 누리며 버티고 있는 PGA 투어를 초토화 시킨 것과 다름 없었다.

바비 록을 실력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것을 알게 된 미국 선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이 자기들의 상금을 빼앗아 간다는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바비 록은 1948년에는 시카고 빅토리 내셔널 대회에서 2위에 16타 차이로 우승하며 PGA 선수들의 자존심을 뭉개 버렸다. 바비 록의 16타 차이 PGA 우승 기록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실력으로는 도저히 바비 록을 막을 수 없게 되자 1949년에 PGA가 그의 출전 금지를 결정 함으로써 바비 록의 미국 정복 스토리는 끝나게 된다. 출전 금지 사유는 대회 참가 약속을 번복했다거나 슬로우 플레이를 했다는 등 사소한 핑계였다. 이것은 미국 PGA가 선수들의 압력 때문에 내렸던 불공정한 결정이었으며 훗날 PGA는 그 결정을 부끄러워했다. 출전금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바비 록은 59개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11회 했고 톱 3에 30회 오르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무도 흉내내지 못한 바비 록의 퍼팅
미국 활동이 금지되자 유럽으로 무대를 옮긴 바비 록은 디 오픈에서 4회나 우승했으며 프로대회 통산 75승을 기록했다. 1951년 미국 PGA가 출전금지를 해제했지만 다시는 미국 투어에 출전하지 않았다.

바비 록의 퍼터는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히커리나무 샤프트의 골동품이었는데 그의 퍼팅 스트로크는 못 본 사람은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퍼터 헤드를 인사이드로 뺐다가 밖으로 밀면서 사이드 스핀을 만들어 왼쪽으로 휘어지게 만들었다. 오른 발을 뒤로 빼고 서는 클로즈 스탠스를 한 것도 희귀하고 손목을 크게 꺾으면서 치는 것도 특별하다.

바비 록은 이런 퍼팅 방법을 어디서 배웠을까? 제 2차 세계대전 때 공군에 복무하면서 이집트에서 만난 영국 프로가 가르쳐 주었다는 설과 1938년 남아공을 방문했던 월터 하겐에게서 배웠다는 설이 있다. 바비 록 이후 아무도 그의 퍼팅방법을 따라 하지 못했다. 유튜브에 남아있는 그의 퍼팅 모습을 찾아 볼 것을 권한다. 바비 록은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시력에 장애가 생기면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골프 대디였던 필자는 미국 유학을 거쳐 골프 역사가, 대한골프협회의 국제심판, 선수 후원자, 대학 교수 등을 경험했다. 골프 역사서를 2권 저술했고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라는 칼럼을 73회 동안 인기리에 연재 한 바 있으며 현재 시즌2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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