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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샬캐디 석경희 씨의 ‘필드에서 찾은 행복’

  • 기사입력 2020-05-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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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캐디 석경희 위원은 골프장에서 일하는 자체가 즐겁다고 말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필드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강원도 횡성의 18홀 퍼블릭 골프장 벨라스톤에서 마샬캐디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된 석경희(53) 경기 진행위원의 대구 사투리는 낭랑하고도 힘찼다.

“좋은 일자리라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알리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도 자연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골퍼 입장에서도 마샬캐디는 정말 필요합니다. 밤늦게 끝나고 기숙사 생활하는 것도 만족스럽습니다.”

벨라스톤 골프장은 지난해 5월에 전 홀 라이트 시설을 갖추면서 마샬캐디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간에 근무하는 캐디들이 밤늦게까지 하루 두번 일하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샬캐디 22명이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3부 야간 라운드를 맡는다. 야간 골프는 마샬캐디피가 주간 라운드의 절반 정도이거니와 그린피도 적당해 젊은 골퍼들에게 인기다.

홍재원 벨라스톤 본부장은 “마샬캐디는 ‘위원’이란 직함으로 부르는데 골프를 잘 이해하는 분들이라 진행도 잘 돕고, 야간 라운드까지 일하기 힘든 하우스 캐디들의 수급 문제도 해결해준다”면서 “여성 마샬캐디는 두 분 뿐인데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야간 라운드에는 낮에 근무를 마치고 오는 젊은 골퍼가 많은데 나이든 남자 마샬캐디보다는 주부 마샬 캐디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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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출간한 〈레저백서 2020〉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캐디선택제를 하는 골프장은 121곳으로 전년도 94곳에 비해 27곳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캐디 선택제나 노캐디제를 적용하는 골프장이 최근 5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 말처럼 지방의 퍼블릭 골프장이나 군 골프장 등에서 셀프 라운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개장한 전남 영암의 사우스링스영암의 경우 45홀 코스에 전면 노캐디, 2인 카트제를 표방한다. 게다가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사람간 비대면 접촉이 늘면서 캐디없는 셀프 라운드가 늘고 있다.

한국골프소비자원의 서천범 이사장은 '필요성은 느끼지만 지금 당장 노 캐디 제도를 실시하기 어려운 골프장은 마샬캐디제나 드라이빙 캐디를 부분 도입하는 게 좋은 대안'이라고 말한다. 카트를 운전하고 그린에 올라가면 퍼터를 준비해주는 등의 최소한의 게임 진행을 돕는 게 마샬 캐디다. 비용은 일반 캐디피의 절반을 약간 넘는다. 강원도 원주의 센추리21 골프장은 주간에도 카트 운전만 해주는 드라이빙 캐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골프를 아는 은퇴자들은 마샬캐디를 통해 일자리와 취미를 함께 하고, 골프장으로서는 캐디 수급 고민을 덜고 수익에 도움되고, 골퍼들은 팀당 5만원 정도 저렴한 캐디피로 라운드할 수 있는 1석3조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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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캐디는 거리를 불러주는 등 코스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카트를 운전하며 퍼터를 가져다 주는 등의 일을 한다.


골프를 시작한 지 15년이고 예전부터 다양한 운동을 즐겨했던 석 위원는 80대 중반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골퍼다. 두 달여 전 경력단절 여성이나 은퇴자 골퍼가 참여할 수 있는 마샬캐디의 존재를 알고 한국골프소비자원을 찾아가 마샬 캐디를 지원했다.

지난해 말까지 건강식품 관련 일을 했으나 올초 대구에서 확산된 코로나19는 그의 일과 일상생활을 막아버렸다. 갇혀있다시피 하던 생활의 탈출구가 골프장이었다. 강원도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한다. “저희 4인 가족이 모두 각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 컸고요. 저는 골프장에서 일하는 자체가 좋습니다. 마샬캐디의 취지는 적극 찬성입니다. 골프가 대중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도 보람있고요.”

그가 푸른 들과 좋은 공기에 집착하는 숨은 이유가 더 있다. 가족 중에 아무도 하지 않는 골프를 시작하게 된 건 2003년 대구 지하철역 화재 참사가 계기였다. 참혹한 당시 사고로 친한 지인을 잃었다. 암흑길처럼 세상살이에 막혔던 때 그는 탈출구로 골프를 시작했다. 막히지 않은 트인 공간과 푸른 자연에서 그는 안정을 얻었다.

대구의 아픈 기억이 횡성에서 마샬캐디를 하는 연관고리일까 다시 물었더니 쾌활한 대답으로 돌아왔다. “제가 원래 하고싶은 건 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4차원이라고들 합니다만, 삶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골프장은 어떤 이에게는 레저와 휴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유와 안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