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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프장의 발견] 안양 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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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현관앞의 고목백매화(4월초)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이제 대중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골프장도 많아지고 그 특성도 저마다 다양해졌습니다. 그런 한편 골프의 문화는 아직 얕고 좁습니다. 골프 문화를 더 깊게 넓게 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국 골프장의 발견]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단편적이기 쉬운 기사 형식을 뛰어넘어 이용자로서의 후기, 인문적 모색을 통한 글쓰기와 시각적 제작(사진, 영상)을 통합하여 우리나라 골프코스들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탐사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글과 사진 등 내용은 게재 후에도 지속 업데이트 할 것입니다. 첫번째로, 안양 컨트리클럽에 갑니다. 가장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이기에 대중적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골프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곳이라 첫머리에 두어야겠기 때문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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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홀의 다박송과 멀리 보이는 낙우송들(6월)


안양CC에서 쳐 본 사람
골퍼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골퍼에는 두 부류가 있다……안양CC에서 쳐 본 사람과 못 쳐본 사람.” 정작 안양컨트리클럽(이하 '안양CC') 회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몇 번이라도 라운드 해 보았던 이들이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 앞에서 자랑 삼아 했을 듯한 이 말은 안양CC가 우리나라 골퍼들의 마음에서 차지해온 위상과 의미를 짐작케 합니다. 요즘 들어 안양CC보다 더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트리니티 클럽> 같은 프라이빗 골프클럽도 생겼고, 삼성생명 보험 영업 차원의 초대로 안양CC에서 라운드 할 기회를 얻는 이도 있으니 약간 느슨해진 감도 있지만, ‘안양CC’는 여전히 한국의 골퍼들에게 각별한 ‘최고 명문클럽’입니다.

‘한국 최고 명문’을 일궈온 역사
국내외 골프코스들의 랭킹을 매기는 기관들은 안양CC를 거의 매년 빠짐없이 한국 최고 순위의 골프클럽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물론, 골프장에 성적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모호한 행위입니다. 선정과 심사의 평점 기준과 심사의 엄정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랭킹 1위와 2위 사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권위있는 한,두곳 국제 기관을 제외하고는 이 랭킹을 골프코스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일부 사설 심사 기관들도 있어, 선정 의도를 순수하게 보기만은 어렵습니다. 어쨌든) 2019년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 심사위원회’는 최근 안양CC를 한국 1위, 아시아 2위의 골프코스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에는 제주의 <클럽 나인브리지>와 순위가 뒤바뀌기도 하고 최근 한두 해에는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의 경치를 높이 쳐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안양CC는 국내 골프장 순위를 매길 때 꾸준히 최상위권 자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렇듯 가치가 높게 지속되는 골프장을 흔히 ‘명문’이라 부르는데, 안양CC가 우리나라 으뜸의 명문인 이유는 굳이 랭킹 평가 기관의 발표 에 기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곳이 ‘명문’이라는 평가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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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장의 살아 있는 역사 문화 유적’
잘 알려진 대로 안양CC는 삼성그룹을 일군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과 서구의 명문 클럽에 손색없는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뜻을 세워 1968년 문을 연 골프장입니다. 한때 ‘안양 베네스트’라고 하여 다른 삼성그룹 소유 골프장과 형제 이름을 갖기도 했으나 2013년 <안양 컨트리클럽>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성이 소유, 운영하는 골프장 가운데서도 다른 골프장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뜻이겠습니다.

이 안양CC가 우리나라 골프 역사의 여러 의미 있는 사건들을 만들어 온 ‘살아있는 역사 유적’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일제 강점기 서울 효창공원 안에 운영되었던 9홀 규모의 <경성구락부>라 알려져 있고, 1930년에 현재 어린이 대공원 자리에 건설되었던 <군자리코스>가 최초의 18홀 정규코스(파69, 6,045야드)였다고 하나, 국제적인 기준으로 제대로 갖추어진 골프장은 안양CC가 나라 안에서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안양 중지’ 우리나라 골프장 잔디들의 조상
안양CC 설립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골프를 무척 좋아했음은 물론 조경에 대한 안목과 의욕이 남달랐다고 알려집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고 스스로 역사에 무언가 남겨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꽃과 나무, 잔디 등 자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저는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골프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골프장에서 자연의 복원을 감안하지 않은 무신경한 파헤침으로 돈벌이에 급급한 건설, 관리 행태를 가슴 아프게도 자주 목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안양CC에서처럼 극진히 모셔진 꽃과 나무와 잔디를 보면 머리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고인은 안양CC 안에 잔디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잔디를 개발하도록 독려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들에서 자생하는 잔디인 ‘야지’는 잎이 넓고 여름에 강하지만 추위에 약하고 일찍 누래지는 반면 양 잔디는 잎이 가늘고 겨울에도 녹색을 지키지만 한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 내립니다. 또한 일본 골프장에서 많이 쓰이는 ‘고라이 잔디’는 잎이 가늘고 역시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하기 어렵죠. 그래서 잎 넓이가 중간 정도라는 뜻의 ‘중지’를 이곳에서 개발했고 그것이 ‘안양 중지’라 하여 우리나라 많은 골프장들 잔디들의 조상 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조선 잔디’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골프장 대부분을 덮고 있는 품종이 사실은 ‘안양 중지’의 자손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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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프론트데스크


한국의 '골프장 인재 사관학교' 역할
코스 관리뿐 아니라 골프장 경영과 인재 배출 면에서도 안양CC를 빼놓고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를 말하기 힘듭니다. 이 골프장 설립 당시의 삼성그룹은 제일제당처럼 직접 소비자를 만나는 소비재가 중심 사업이었고 신세계백화점, 신라호텔 등의 접객 서비스업에서도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사업을 통해서 터득한 고객 섬김의 자세, 그리고 브랜드 관리와 경영의 체계적 노하우가 골프장 운영에도 적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경영 감성과 노하우를 익힌 사람들(이른바 ‘안양출신’)이 이후 수많은 골프장의 경영자로 발탁되면서 안양CC의 관리, 운영 비법이 한국의 많은 골프장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니, 지금도 안양CC는 ‘한국의 골프장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안양CC는 국내의 모든 회원제 골프장들이 따라야 할 귀감 또는 넘어야 할 벽의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동래베네스트, 가평베네스트 등 같은 삼성 계열 골프장들이 당연히 안양CC를 거울삼아 운영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다른 대기업 운영 클럽들 또는 프리미엄 프라이빗을 지향하는 모든 클럽들이 저마다 성격과 추구하는 길은 다를지라도, ‘안양CC 처럼’ 또는 ‘안양CC 이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설정하여 매진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곳보다 아름다운 코스는 있더라도, 이곳처럼 아름다운 코스는 없다.”
살구꽃 피는 이른 봄에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설 때, 벚꽃 날릴 무렵 2번 홀 페어웨이를 걸을 때, 연꽃 피는 여름 6번 홀 연꽃 다리 길을 건널 때…… 이곳은 코스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특별히 더 아름답다고 칭송 받는 장소는 계절마다 다릅니다.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골퍼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일어나는 느낌이 다르겠으나 이곳은 철저하게 정원 조경의 정밀한 미적 설계에 의해 아름다움이 연출된 곳이어서 대개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시간에 설계자의 의도에 감응하게 됩니다. 이 골프장 모든 곳의 조경은 은근하고 치밀합니다. 모든 홀은 3분할 또는 4분할로 안배되어 플레이어가 걷고 머무는 곳마다의 시선을 계산한 경치가 연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귀하고 특색 있는 나무와 꽃들은 눈이 머무는 곳마다에 시각의 황금비율을 마감하며 서 있습니다.

한 홀 한 홀 걸어갈 때마다 고아한 미장본 그림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는 듯한데, 저 혼자 과민한 호들갑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3차원적 안배 위에, 계절과 시간의 흐르는 자연 섭리에 따라 꽃이 피고 나뭇잎이 변하니 뭐랄까 다차원적 풍광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코스는 당연히 걸어가며 곳곳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즐겨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두 명의 캐디가 반 자동 카트를 밀고 걸으며 경기를 보조하고, 승용 카트는 없으므로 플레이어는 전 홀을 걸어서 라운드 해야 합니다.

1968년 처음 문을 열 때에는 미야자와 조헤이라는 일본인(뒤에 통도 파인 이스트, 88CC등을 설계하기도 함)이 설계하여 투 그린이었고 일본 코스 느낌이 있었는데, 1997년 세계적인 골프코스 설계자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Robert Trent Jones Jr.)에게 맡겨 코스 리뉴얼 공사를 했고 2013년에 클럽하우스를 새로 짓고 코스를 보완하는 부분 리뉴얼 공사를 하여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코스로 거듭 변모했습니다. 삼성 그룹이 직계 3대에 이어졌으니 소유주의 변화에 따라 코스의 취향도 변화했다고 보는 이도 많습니다. 다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고 이병철 회장의 치밀한 조경 연출의 맥락과 정수는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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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클럽 치기 세상에서 가장 좋은 페어웨이


‘세상에서 우드클럽 치기 가장 좋은 페어웨이’
3대에 이른 코스의 변화는 단순히 취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진화’라고 보는 게 맞는 듯합니다. 이곳의 회원들은 연배가 높은 분들의 비중이 적지 않지만 코스는 전장이 짧지 않고 세컨샷 공략과 그린 주변 플레이도 어려운 편입니다. 18홀 총 연장 6,951야드(6,356미터)의 코스로 길지 않은 것 같으나 실제 플레이 해 보면 블루 티, 레귤러 티 길이가 수치상의 제원보다 길게 느껴집니다. 공을 띄워서 치지 않으면 장해물을 피해 레귤러 온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린은 당연히 빠르게 관리되는 데다가 그린 면의 변화 굴곡도 많은 편이라서 예민한 퍼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대여섯 타 더 친 스코어카드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잔디 관리 상태가 워낙 융단같이 곱고 좋아서 페어웨이에서 공을 치기에 더없이 좋은 점이 그런 핸디캡을 상쇄합니다. 짧고 촘촘하게 관리된 안양 중지는 언제나 공을 살짝 들어 예쁘게 떠 받치고 있죠. 숏티를 짧게 꽂아 올려놓은 듯한 느낌으로 아마도 ‘세상에서 우드 클럽 치기 가장 좋은 코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만하신 분들은 옛날에 비해 어려워졌다고 하고 힘 좋은 이들은 생각보다 전장이 길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힘이 좋으면 뒷편 ‘백티’로 가서 치면 됩니다. (물론 레귤러 티도 결코 짧지 않고 난도가 높은 코스입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설계한 코스는 대개 모든 수준의 골퍼들이 골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샷 밸류를 극대화하며 칠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이 특징이라는데 이곳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14개 클럽을 모두 사용하도록 설계된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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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파3홀 정원같은 조경(6월)


“땅 값보다 나무 값이 더 비쌀 것이다”
이곳 클럽하우스에 들어설 때부터 한눈에 봐도 신령스러운 느낌의 아름드리 백매화 고목이 손님을 맞는데, 이곳만큼 진귀한 나무들을 한 곳에 많이 모셔놓은 골프장은 우리나라에는 따로 없는 것이 분명하고 세계적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1번 홀의 살구나무 고목들, 10번 홀의 반송 군락, 11번 홀의 노송들, 13번 홀의 분재 같이 아기자기한 반송들, 14번 홀의 장려한 목련, 15번, 17번 홀의 낙우송들, 클럽하우스 앞의 커다란 다박송들…… 이 밖에도 다른 곳에 있으면 단박에 눈에 띌 진귀한 나무들이 코스의 이곳 저곳마다 눈에 드러나지 않게 빛나고 있습니다. 값을 따지는 속된 습성이 민망하기는 하나 이곳에 모셔진 나무 값을 합하면 수천억 원 또는 조 단위 가치일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나무들이 계절마다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살구꽃, 벚꽃, 홍매화, 백매화, 복사꽃, 해당화, 목련들이 차례로 꽃을 피울 때 이곳에서 라운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게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나무 말고도 땅에서 올라온 초본들도 질세라 꽃을 피웁니다. 아네모네, 수선화, 꽃범의 꼬리, 연꽃, 능소화 들이 차례로 만발하고 가을에는 낙우송, 은행나무, 단풍나무들이 꽃보다 더 현란하게 물듭니다.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나무를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은행나무를 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17번 파3홀 티잉 그라운드 옆에는 고인의 홀인원 기념식수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삼성 임원 출신들 가운데 그 홀에 이르면 말없이 그 나무에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골프장을 짓는다는 것은 어쨌든 자연 상태의 땅을 헤집어 사람의 놀이터로 만드는 일이겠습니다. 그 죗값을 덜기 위해서인지 코스를 만드는 이들은 ‘재 자연화’, ‘자연을 다시 조성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울지언정 사람의 눈에 그런 것이지 자연 그대로인 것만이야 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안양CC를 만든 고 이병철 회장은 원래의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으로서의 질서를 부여하는 쪽으로 ‘재 자연화’의 개념과 철학을 세웠던 듯합니다. 사람이 공을 치고 노는 공간이되 그 자체의 생태적, 미적 완결성에 있어서 극한에 이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9번홀 그린 옆에는 묵색 빗돌에 ‘무한추구(無限追球)라는 이 회장의 생전 휘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구’ 글자가 구할 구(求)가 아니라 공 구(球)인 것이 흥미로운데 골프장에 있어서도 이렇듯 한계 없는 완결성을 추구했던 것으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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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홀 그린옆 고 이병철 회장의 무한추구 휘호 빗돌



'귀빈'들만 오는가
안양CC의 서비스 철학은 "만인중(萬人中)의 1인, 1인을 위한 만인( 萬人)"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 가운데 하나입니다. 회원 또는 회원 동반자 아니면 절대 라운드 할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삼성생명 우수 고객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가끔 여기서 열리기도 해서 회원 동반 아니어도 라운드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신세계 그룹의 <트리니티클럽>이 가장 폐쇄적인 클럽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지만, 폐쇄적인 것이 곧 좋은 클럽임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습니다. 종합적으로 보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클럽은 아직 이곳, ‘안양 컨트리클럽’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없는 클럽의 깐깐한 심사 조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곳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집니다. 왕년의 톱스타 가수가 회원 신청을 했는데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유명한 소문도 있었죠. 사고 팔 수 있는 회원권을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회원 자격은 오로지 수천만 원의 소멸성 연회비를 냄으로써 유지됩니다. 회원 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는군요.

이곳 현관에 도착하면 내장객 모두에게 발렛파킹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예전에는 보스톤 백도 라커룸까지 직원이 가져다 준 적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나올 때만 직원이 라커에서 받아 차에 실어줍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켜야 할 격식도 다소 간소해진 듯합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재킷 착용을 해야 하던 에티켓 조항이 '골퍼의 품위가 느껴지는 자율적 복장'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클럽하우스는 2013년 미니멀한 디자인 스타일로 새로 지은 것입니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졌는데 그래도 단아하고 작은 느낌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골프장 클럽하우스 가운데는 필요 이상으로 위압적이거나 부자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취향으로 멋을 낸 건축물이 적지 않은데 저는 ‘사람을 존중하여 받들지 않는’ 느낌의 클럽하우스는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도록 해야 더 깊이 느껴지는 것이죠. 저의 눈에는, 안양CC의 클럽하우스는 이전의 것에서 더 정감이 느껴졌으나 지금의 것에서도 ‘딱 그만큼까지만’ 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감과 절제미를 느끼게 됩니다.


몇 가지 자잘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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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홀.


11번 홀 노송 숲에 얽힌 야사(野史) -
11번 홀은 가장 긴 파4홀로 유일하게 그린 주변에 벙커가 없습니다. 길이가 긴 홀이니 티샷에 힘이 들어가기 쉽죠. 자칫하면 슬라이스가 나서 티샷 낙하지점 오른편 노송 숲에 빠지기 쉽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노송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생전에 함께 라운드 할 때 이 홀에 오면 정주영 회장 티샷 볼이 오른편으로 휘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공이 살아 있어서 고 이병철 회장이 이곳에 소나무를 심으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이죠.

"308동을 보고 친다"-4번 홀 내리막에서는 건너편 멀리 보이는 308동을 보고 치는 게 좋았었는데, 2013년 부분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페어웨이와 그린 사이에 아름다운 실개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308동 쪽으로 정확하게 치면 최단거리를 남겨놓은 페어웨이에 떨어뜨릴 수 있으나, 물에 빠질 염려도 있어서 그보다 약간 왼쪽으로 치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아파트 건물이 보이는 것이 골프장의 경관 조경에는 약간 아쉬운 점도 있겠으나 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망이 참 좋을 것이니 이 또한 안양CC가 쌓는 공덕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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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스테이크


티하우스의 수박스테이크와 13번 홀 그늘집의 흑맥주-전반을 끝내고 ‘티하우스’에서 간식을 먹을 때, 계절 과일을 추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름에 나오는 ‘수박 스테이크’(두껍고 크게 썰어서 스테이크처럼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다)가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죠. 플레이 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13번 홀 그늘집에서 내는 저온숙성발효 흑맥주도 맛이 깊으니 마셔볼 만합니다. 13번 홀쯤에서 마시는 맥주야 어느 곳에선들 맛이 없겠습니까마는......

글과 사진 류석무
글쓴이는 기업 경영인입니다. 하는 일이 골프에도 다소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골프 상식에 밝고, 업무상 골프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좀더 생각과 목적이 있는 골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도화도주’라는 필명으로 골프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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