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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문도엽의 첫 우승 도운 '좋은 형' 권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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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문도엽.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뭔가를 성취하고자 함께 고생한 사람들 사이엔 끈끈한 정(情)이 있다. 눈물젖은 빵을 함께 먹은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애틋하다. 지난 주 KPGA선수권에서 우승한 문도엽(27)과 SK텔레콤오픈 챔피언인 권성열(32)이 그렇다.

둘은 5살 차이가 나지만 프로입문 동기다. 퀄리파잉 스쿨을 같이 치렀고 2013년 나란히 코리안투어에 데뷔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무명의 설움을 함께 겪었다. 서로를 위로했고 서로에게 용기를 줬다. 둘은 공교롭게도 정규투어 입문 후 6년 만인 올해 나란히 우승했다. 형인 권성열이 지난 5월 SK텔레콤오픈에서 먼저 우승했다.

첫 아들을 얻은 후 한달도 안돼 우승을 차지한 권성열은 연장전에서 버디 퍼트가 들어가자 오열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려 화제가 됐다. 권성열은 KPGA선수권 마지막라운드가 열린 지난 1일 연장전에 나가는 동생 문도엽에게 “정신 바짝 차리고 치라”고 엄하게 주문했다고 한다. 그 덕인지 문도엽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멋진 아이언샷으로 탭인 버디를 만들어내며 우승했다. 권성열은 문도엽이 우승하자 그린으로 뛰어들어 생수병으로 축하세례를 퍼부으며 즐거워했다.

문도엽은 권성열이 SK텔레콤오픈 연장전을 치를 때 연습장에서 휴대폰으로 경기 장면을 지켜봤다고 한다. 예선탈락후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연습장을 찾았는데 권성열이 우승한 뒤 포효하는 중계방송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골프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문도엽은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도련님 이미지가 강했다. 성질도 급한 편이었다. 경기중 작은 실수에도 제 성질을 못이기고 스스로 주저앉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이유로 타고난 재능에 노력도 열심히 했으나 선수로서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작년까지 준우승만 두차례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 KPGA선수권 때는 180도 달랐다. 1타차 선두로 3라운드를 마친 후 “우천 취소없이 당당하게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고 실제로 최종라운드에서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연장 두번째 홀서 소름돋는 아이언샷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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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오픈 우승후 오열하고 있는 권성열. [사진=KPGA]


문도엽은 매년 동계전지훈련도 권성열과 함께 다녔다. 중국 쿤밍에서 5주간 실시한 지난 겨울의 전지훈련 때도 둘은 룸메이트로 한 방을 썼다. 오지에 있는 골프장을 선택한 덕에 매일 저녁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체력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훈련이 없는 주말엔 함께 테니스를 치며 하체를 단련했다. 그 때 흘린 땀방울이 값진 우승으로 돌아왔다.

문도엽과 권성열은 우승도 닮은 꼴이다. 나란히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첫 우승을 거뒀다. 둘은 같은 스윙코치(앨런)를 두고 있다. 이태희(제네시스 챔피언십)와 맹동섭(KB금융 리브챔피언십)도 같은 코치 밑에서 올해 함께 우승을 맛봤다.

문도엽이 우승후 날린 “5년 정규직이 됐다”는 멘트도 권성열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권성열은 SK텔레콤오픈 우승후 “4년짜리 정규직원이 됐다”고 얘기했는데 문도엽이 이를 따라한 것. KPGA선수권자에겐 5년, SK텔레콤오픈 우승자에겐 4년짜리 코리안투어 시드가 나오는 것을 빗댄 농담이었다. 지난 시간 둘은 '직장이나 마찬가지인 시드를 잃고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Q스쿨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속에 살아왔다.

문도엽은 우승이 결정된 순간 권성열과 달리 울지 않았다. 대신 캐디(방창욱)가 그린 한편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 보니 문도엽과 권성열이 모든 게 닮은 꼴은 아닌 듯하다. 동고동락한 '좋은 형' 권성열을 따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문도엽은 "우승상금도 2억원이나 받았으니 성열이 형의 복덩이 아들 장난감은 제가 스폰서해야죠"라며 기분좋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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