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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백과사전 110] 일본 골프장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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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산 정상 구릉에 조성된 일본의 가장 오랜 코스 고베골프클럽 초창기 모습. [사진=고베골프클럽]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일본은 골프 역사가 오랜 동시에 2400여 곳의 코스를 가진 아시아 최대 골프장 강국이다. 일본에서의 골프장 건설은 간사이 지방에 위치한 고베에서 근대화와 함께 시작되고 발전했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미국 페리 제독의 요코하마 내항과 통상 요구에 고민하다가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10년 뒤인 1868년 고베항은 해외에 문을 열었고 영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이 영사관을 대거 설립하면서 밀려들어왔다. 한반도가 원산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처음 골프장이 만들어지듯 일본에서는 고베에서 골프장이 시작되었다.

1903년 영국인 아서 헤스켓 그룸(Groom)에 의해 4홀로 개장한 고베의 로코산(六甲山)골프장(오늘날의 고베골프클럽)은 오늘날에도 라운드가 이어지고 있다. 엄격한 회원제 코스로 전동카트를 쓸 수 없는 워킹 코스이며, 코스 규모가 좁아 클럽을 10개 이내의 별도 하프백에 메고 걸어서 라운드 해야 한다.

고베의 로코산 정상 구릉지에 조성된 고베GC는 해발 1천미터에 가까워서인지 겨울이면 골프가 불가능했다. 당시 일본에 살던 영국인 윌리엄 존 로빈슨은 1914년에 고베와 오사카 사이의 나루오항 인근 경마장에 나루오골프협회를 세워 9홀 골프장을 조성했다. 그리고 1920년에 스즈키 상점의 직원 39명이 돈을 모아 나루오골프클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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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영국의 크레인 3형제가 조성한 나루오 클럽 11번홀.


알리슨이 설계한 코스들
나루오GC는 설립 10년이 지나면서 땅값이 비싼 해안지대 대신 저렴한 산간 지대를 찾아 골프장을 현재의 가와니시 구릉지로 이전했다. 당시 코스 설계와 공사는 조 크래인(Joe E. Crane) 3형제가 맡았다. 1930년에는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인부들이 삽과 곡괭이로 일일이 지반 공사를 했다. 공사를 마칠 무렵인 1931년에 영국에서 건너온 유명 설계자 찰스 H.알리슨이 벙커를 더하고 코스를 감수했다. 현재 나루오는 일본에서 4위, 세계 100대 코스중 96위에 올라 있다.

알리슨은 제임스 브레이드, 해리스 콜트, 톰 모리스 등 영국에서 잘 나가는 선수 출신 설계가 그룹에는 끼지 못했다. 그래서 1930년에 본토를 떠나 일본에서 그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고베에서 히로노를 만들고 나루오와 이바라키 동코스의 리노베이션을 맡았다. 도쿄로 넘어가서는 카와나의 후지코스, 가스미가세키GC를 설계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코스들이 오늘날 일본의 베스트 코스 최상위권을 형성한다.

일본에서 가장 좋은 코스이자 세계 100대 코스 35위에 올라있는 코스는 고베 북서쪽의 히로노GC다. 1931년 고베시 경제인들이 중심이 돼 조성 공사에 착수해 1932년 6월에 개장됐다. 알리슨이 일주일만에 설계하고 착공에 들어간 지 1년 반만에 완공된 이 코스는 개장 후에 아사카 왕자가 기념 첫 플레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알리슨이 벙커를 만들 때 시도한 턱을 높인 벙커를 알리슨의 이름을 따 ‘아리손 벙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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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페어웨이를 막아서는 알리슨 벙커가 특징인 히로노 2번 홀.


오사카와는 달리 미국에서 유학하며 골프를 접했던 일본의 선각자들이 1913년 도쿄 고마자와에서 첫 18홀 골프장인 도쿄골프클럽을 만들었다. 그리고 1924년에 도쿄 인근의 7개 클럽이 모여 일본골프협회(JGA)를 결성한다. 도쿄GC의 경우에도 20여년 뒤인 1932년에는 사이타마의 아사카로 이전했고 194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영국에서 코스 설계를 배운 일본인 설계가 고묘 오타니가 맡아 코스를 조성했다. 여름과 겨울의 그린을 각각 만든 투그린이 여기서 시작됐다. 하지만 1년만에 도쿄GC는 폐쇄되는데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때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골프장은 복원되었고, 2009년 길 한스가 리노베이션을 진행해 오늘에 이른다.

일본은 1920~40년대는 식민지인 한국, 대만, 만주까지 하나의 골프 여행권에 두었다. 그 얘기는 당시 한국에 건설 조성된 골프장이 모두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효창원 청량리 코스 등 초창기 코스가 모두 병참지나 철도역 근처에 주둔했다. 수많은 코스들은 전쟁의 기운이 심화되면서 대거 축소됐고 급기야 1941년에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무렵 일본의 23개 코스는 군용지나 농경지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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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콜로니얼 양식의 클럽하우스를 간직한 히로노.


캐나다컵으로 골프 전성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었던 일본을 부흥시키는 데 골프가 큰 역할을 했다. 히로노 골프장은 1948년 6월 후반 9개홀, 이듬해 6월에 전 홀이 재개장되었다. 다른 골프장들도 폐허를 딛고 재건에 나서 1956년에 일본에 코스는 총 72개까지 늘었다.

일본 골프 부흥의 결정적인 발화점이 있었다. 1957년 도쿄 가스미가세키에서 각 나라에서 2명씩 출전하는 국가대항전인 캐나다컵(월드컵)이 열려 나카무라 도라키치, 고이치 오노가 극적으로 우승하면서부터다. 일본 전역에서 골프 인구가 급증했고 골프장 건설붐이 일었다.

골프 실력이 수준급이던 아이야마 다케오(相山 武夫)는 직접 설계가로 나서 6년여에 걸쳐 요코하마컨트리클럽을 조성했다. 아이야마는 1960년 동코스 9홀을 시작으로 1965년에는 서코스까지 36홀을 모두 완공했다. ‘골프를 일본에 보급하겠다’는 뜻을 품은 아이야마는 애초부터 골프 대회 개최도 염두에 두었다. 1978년에 서코스에서 일본오픈을 개최했다. 그의 손자이자 현 이사장은 2012년에는 일본여자오픈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 10월에 40년만에 다시 일본오픈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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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오픈이 열리는 요코하마 서코스는 골프 애호가 아이야마 다케오가 공들여 설계해 1965년 개장한 코스다.


아이야마와 같은 이들이 일본의 근대화를 타고 넘쳐났다. 1960년에서 5년간 골프장 195곳에서 424곳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1970년대에는 1천 곳을 돌파했다. 1987년에 농지와 수림지 보호를 완화한 리조트법이 발효하면서 두 번째 건설붐이 일어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골프장이 우주죽순 생겨났다. 경제적으로도 1980년대는 일본 경제의 활황을 타고 일본 열도 전체가 골프장 건설에 몰두했다.

올림픽으로 부활의 희망
1990년대 후반부터 20여년간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는 부동산 버블 불황의 기간이 찾아왔고 2000년대 초반이면 일본 골프장의 회원권 가격은 원래 가격의 고작 5%대로 폭락했다. 골드만 삭스와 론스타와 같은 해외 투자은행들이 일본 골프장을 헐값에 사들였다.

일본은 몇 년 전부터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활력을 되찾았으나 2000년대 초까지 늘어나던 골프인구는 점차 줄고 있으며 골프장은 정점을 지나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다. 2년 뒤에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골프 개최지를 도쿄 북쪽에 위치한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잡은 건 그 점에서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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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골프종목의 코스로 선정된 가스미가세키 골프장.


지난 1957년 캐나다컵을 개최하면서 일본에 골프붐을 일으켰던 가스미가세키는 도쿄올림픽을 통해 옛 영광을 찾으려 한다. 가스미가세키는 C.H.알리슨이 설계한 전통적인 일본 명문 코스다. 겨울에 어는 것을 대비한 투그린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라운드할 수 없었다.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이래 도쿄 내부에 있는 매립지 코스인 와카슈 도쿄링크스 등에서 골프 종목을 개최하자는 여론이 높았다. 친환경적이고 도쿄 내해의 입지에 위치해 대회장을 오가기도 좋았다. 하지만 일본골프협회는 도쿄를 벗어나 북쪽에 있는 가세미가세키를 경기장으로 확정했다. 1957년 캐나다컵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통해 침체에 빠진 골프 부흥을 옛 기억을 통해 되살리겠다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다.

* 태평양 전쟁: 1941년12월12일 일본 제국과 미국, 영국, 네덜란드, 소련, 중화민국 등의 연합국과의 사이에 발생한 전쟁이며 일본 정부는 이를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패전 후에 연합군 최고사령부 (GHQ)에 의해 전시 용어로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등으로 단어가 바뀌어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기사에서 대동아 전쟁으로 기재한 내용을 수정합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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