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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과도한 스윙 분석 때문에 은퇴한 랄프 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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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프로골펴였던 랄프 걸달(1911-1987). 사진은 1939년 마스터스 대회 때의 모습이다.


텍사스 출신의 랄프 걸달(Ralph Guldahl, 1911~1987)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PGA 투어에서 우승,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났다. 그는 어린 시절 낮에는 캐디를 하며 다른 골퍼들의 스윙을 관찰했고, 밤이 되면 혼자 연습하며 골프의 꿈을 키웠다. 칩샷을 연습할 때는 야구장으로 가기도 했다. 키 188cm의 거구가 된 걸달은 19세에 프로가 됐고, 데뷔 시즌에 첫 승을 달성했다.

포기했다가 되돌아온 골퍼

1933년 US 오픈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11홀을 남기고 9타 차로 뒤지고 있던 걸달은 뒤늦게 맹렬한 추격을 전개했다. 하지만 마지막 홀에서 통한의 보기를 하여 1타 차이로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에도 걸달은 큰 대회에서 번번이 우승을 놓치면서 골프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결국 1935년 골프를 중단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헐리우드에서 목수 일을 했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프로 골프의 세계로 돌아왔다.

컴백한 걸달은 1936년 당시의 메이저 대회였던 웨스턴 오픈에서 우승했고, 이후 1937년과 1938년 US 오픈을 거푸 제패했다. 1939년에는 마스터스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걸달의 우승을 지켜 본 보비 존스는 당대 최고의 스윙을 보았다고 극찬했다.

1938년 US 오픈은 프로골퍼가 넥타이를 매고 우승을 했던 마지막 대회였는데, 걸달은 매 홀을 시작할 때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때로는 관중들에게 티샷의 방향을 예고하기도 하며 인기를 높여갔다.

문제의 레슨북 출판

1939년에 인기가 최고조였을 때 한 출판사가 걸달에게 레슨 북을 출판하자고 제의해왔다. 당시에는 대회의 우승 상금이 아주 작았고, 책을 출판하면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으므로 걸달은 계약했다. 사진으로 자기의 스윙을 찍어서 살펴 보았고, 거울 앞에서 본인의 스윙을 자세히 분석하며 집필을 시작했다. 원고는 두 달 만에 완성됐다. 스스로 자기의 스윙을 그렇게 자세히 관찰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1940년 ‘Groove Your Golf’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됐는데, 추천의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보비 존스였다. 그런데 책출판 후 걸달은 급격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걸달과 함께 경기를 한 동료 선수들은 “최고였던 걸달이 (갑자기)전혀 골프를 못 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걸달의 부인도 책을 쓰면서 그의 골프는 끝이 났다고 말했다. 결국 걸달은 짧은 전성기를 끝내고 1942년 은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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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마스터스 챔피언들. 오른쪽 끝이 랄프 걸달이다.


두 달 동안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거울 앞에서 자기의 스윙을 분석하며 원고를 썼던 걸달은 레슨을 위해 스윙을 단계별로 세분화하여 설명했다. 스윙을 여러 개의 퍼즐조각으로 쪼갰던 그는 그 퍼즐을 다시 맞출 수 없었다.
과도한 분석에 의한 마비현상

걸달의 반면교사

골프 스윙은 자기의 몸에 익숙해진 대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론을 생각하며 스윙을 한다면 미스샷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유명 프로에게 샷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면 미스샷이 나온다.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스윙을 이론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뇌의 기능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걸달은 어릴 때부터 혼자 배웠던 스윙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마비증세를 가져왔고 그의 골프 경력도 거기서 끝이 났다.

이 이야기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된다. 골프 라운드에 나가서 배웠던 이론을 생각하며 스윙 한다면 좋은 샷을 할 수 없다. 스윙 이론을 생각하지 말고 몸에 익힌 대로 스윙을 한다면 자기가 가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거기까지가 현재의 실력이고 연습을 함으로써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이다. 그래서 “라운드에 나가면 골프 스윙을 플레이하지 말고, 골프를 플레이하라”는 말이 명언이다.

메이저 대회 3승을 포함해 PGA 16승을 올린 걸달은 1981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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