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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일본 최고의 선수가 한국을 찾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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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선수권에서 최연소 3관왕을 달성한 이토 미마가 한국의 보람할렐루야탁구단으로 합숙훈련을 왔다.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천안)=유병철 기자] 지난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2017년 전 일본 탁구선수권대회. 명실상부 일본 최고인 이 대회는 올해 ‘10대 돌풍’으로 뜨거웠다. 남자는 설명이 필요없는 ‘일본 열도의 기대주’ 하리모토 토모카즈(15)가 ‘간판’ 미즈타니 준을 결승에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2003년 6월 27일생으로 역대 최연소 우승이었다(14세 207일).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큰 뉴스가 있었다. 하리모토는 2017년 세계선수권 8강, 월드투어 우승 등으로 이미 기대를 모은 까닭에 어느 정도 돌풍이 기대됐다. 반면 여자부에서 이토 미마(18)가 최연소 3관왕(단식 복식 혼합복식)에 오른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여자탁구는 중국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고, 선수층도 두터운데 이토 미마가 신기원을 연 것이다.

이런 이토가 지난 30일 일본의 열기를 뒤로 하고 ‘조용히’ 한국을 찾았다. 여자탁구는 이미 일본이 한국을 넘어선 지 오래인데 훈련을 하러 한국에 왔다? 언뜻 이해가 안 됐지만 알고 보면 ‘확실한’ 이유가 있다. 바로 스승인 오광헌 감독(48 보람할렐루야탁구단) 때문이다.

무명선수였던 오 감독은 일본에서 지도자로 크게 성공했다.1995년 일본의 작은 대학(슈쿠토쿠대)에 코치로 들어가 2016년말 귀국할 때까지 한국인 지도자 신화를 썼다. 소속 대학팀을 최강으로 만들었고, 2009년 일본 여자탁구대표팀의 코치가 됐고, 2013년부터는 여자 주니어대표팀의 감독도 겸했다. 바로 이 주니어대표팀에서 오 감독은 이토, 히라노 미우, 히야타 히나 등 지금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일본 여자 10대선수들을 키워낸 것이다.

“오 선생님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주니어대표팀에서 만났어요. 포핸드 파워, 스핀, 푸드웍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요. 탁구는 연습파트너가 중요한데, 일본에서는 남자선수들과 훈련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을 가끔 찾는데, 오 선생님이 마침 한국남자실업팀의 감독이니 딱이었습니다. 한국선수들은 집중력이 좋아서 훈련에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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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미마(오른쪽)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4년간 자신을 가르친 오광헌 감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이토는 물론, 함께 한국을 찾은 어머니 이토 미노리 씨도 오광헌 감독과 막역한 사이다. 이토가 탁구의 기초를 다지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오광헌 감독은 “이토와 그의 라이벌인 히라노 미우 등은 정말 애정이 가는 선수들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일본주니어팀을 이끌었던 2016년 세계주니어선수권 단체전에서 일본이 중국을 꺾고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 일본 최고의 선수가 돼 찾아오니 정말 뿌듯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토의 한국 합숙훈련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오광한 감독이 회사에 보고하자 탁구단 구단주인 보람그룸의 최철홍 회장은 “보람할렐루야탁구은 단순히 성적을 넘어 탁구를 통해 국제교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최고의 선수가 온다면 무조건 환영이고,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이토는 오광헌 감독 때문인지 몰라도 철저한 친한파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들으며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시온(미래에셋대우) 김대우(보람할렐루야), 안재현(삼성생명) 등 또래 선수들과도 친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해요. 저도 장근석과 윤아가 나온 '사랑비'라는 드라마의 팬이었지요. 소녀시대 멤버인 윤아는 너무 좋아해서 일본의 라이브 콘서트를 가곤 했는데 2013년 콘서트 현장에서 현장 PD분의 소개로 무대로 올라가 윤아와 직접 만났어요. 유투브에 그 영상이 남아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떡볶이 김밥 비빔밥 갈비 등 한국음식 마니아기도 하다.

18세 일본 최고의 여자 탁구선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먼저 자신을 포함한 일본선수들은 중국선수들과 스피드와 기술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아직 다리움직임과 머리싸움에서 조금 밀리는데 해볼 만하다고 자신했다. 한국의 또래선수인 김지호(삼성생명)에 대해서는 “중2 때 세계주니어카뎃에서 같은 팀으로 중국을 이긴 바 있다. 나와 기량차가 크지 않은, 좋은 선수다. 디펜스가 참 강하고, 플레이가 좀 단순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여자의 경우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나름 예의를 갖추는 인상이 짙었다.

실제로 세계 5위(1월 기준)인 이토는 중국도 신경을 쓰는 강자다. 지난해 중국 2부리그에서 14전 전승을 거둬, 올해 1부(슈퍼리그) 출전이 유력했지만 중국이 일본을 견제해 일본선수의 출전을 불허했다. 어린 나이지만 객관적으로 한국 여자선수들보다는 훨씬 앞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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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미마는 "한국팬들이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탁구는 정말 좋은 운동이니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했다.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일본의 주니어선수들은 두 가지 타입으로 운동을 한다. 한국처럼 학교팀 소속인 경우도 있지만, 이토처럼 유망주들은 개인자격으로 탁구아카데미(이토는 간사이탁구아카데미)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한다. 수업이 없을 때는 7시간, 학교수업을 듣는 날은 5시간씩 매일 땀을 흘린다.

이토는 “이번 3관왕은 뭐라 표현할지 모를 정도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도 월드컵,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월드투어 등 많은 대회가 있다. 일본 국가대표로 확정이 된 만큼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표현이 강렬했다.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서비스와 리시브 포인트가 좋고, 움직임도 빠르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 플레이에 적응할 때 보다 과감하게 대응한 것을 보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오광헌 감독은 “워낙 성실하고, 똑똑한 선수다. 지금처럼 겸손한 자세로 성장한다면 일본 최고을 넘어 중국을 꺾고 세계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토는 탁구얘기를 할 때는 진지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애어른 같았다. 하지만 탁구에서 나오면 한국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10대 소녀였다. “쇼핑 참 좋아해요. 한국에 여러 차례 왔지만 명동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기회가 되면 꼭 가고 싶어요. 제주도도 갔었는데, 천지연인가 폭포가 아주 멋있어요. 다시 가고 싶어요.”

오전 훈련 후 인터뷰를 마친 이토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오후 일정이 오광헌 감독과 함께 천안 시내로 쇼핑을 나가는 까닭이었다. “애들은 다 그렇지. 나는 시내에 데려다주고, 지리 좀 알려주면 된다. 한국을 잘 알고, 좋아하는 만큼 별 걱정이 없다. 쇼핑하는 동안 나는 근처에서 기다린다.” 오광헌 감독의 말은 마치 자기 딸을 대하는 듯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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