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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2017 종합선수권이 남긴 4대 키워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신예돌풍’, ‘유남규의 7전8기’, ‘레전드 은퇴’, ‘춘추전국시대’. 이상 4가지는 27일 막을 내린 2017년 신한금융한국탁구챔피언십-제71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이 남긴 키워드다. 4가지 모두 모처럼 주요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며 오랜만에 탁구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4가지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생활체육 붐과는 반대로 침체에 빠져있는 한국탁구의 중흥이다. 자질이 빼어난 어린 선수들에게 대대적인 투자를 해 이들을 육성해야 하고, 성인탁구도 절대강자가 없는 지금이 ‘하향평준화’의 오명을 벗고 인기스포츠로 나아가야할 적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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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탁구 최초로 '중학생 4강'을 달성한 대광중 3학년의 기대주 조대성.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뜨거운 10대 돌풍 ‘신유빈-오준성-조대성’


‘여자 탁구신동’으로 익히 알려진 신유빈(13 청명중1)은 여자 단식 1회전에서 강다연(문산수억고3)을 3-2로 꺾었다. 강다연은 실업명문 대한항공 입단이 확정된 고교 톱랭커다. 초등학교생 오준성(11 오정초)은 남자 단식 1회전에서 고교생 손석현(아산고1)을, 이어 2회전에서는 실업팀의 강지훈(한국수자원공사)을 각각 제압했다. 2013년 이 대회가 초등학생 출전을 허용한 이래 초등학생이 실업선수를 꺾은 것, 또 3회전까지 오른 것은 모두 처음이다. 신유빈은 2회전에서, ‘오상은의 아들’ 오준성은 3회전에서 각각 탈락했다.

10대 돌풍의 마지막은 가장 강렬했다. 조대성(15 대광중3)은 2회전부터 김경민(KGC인삼공사), 조승민(삼성생명), 이승준(한국수자원공사), 이상수(상무)까지 실업선수 4명을 차례로 격파하고 4강에 올랐다. 이상수는 올해 세계선수권 4강에 빛나는, 한국 최강자(세계 10위)다. 중학생 4강은 이 대회 사상 남자부에서는 처음 나온 ‘사건’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남규(삼성생명 감독),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IOC위원)도 중학교 시절 최고 기록은 8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4강에서 진 스토리. 장우진(22 미래에셋대우)에게 0-4로 졌는데, 나름 이유가 있다. 조대성이 최근 미래에셋대우에서 훈련을 한 까닭에 장우진이 사전에 스타일을 잘 파악했고, 노련미를 바탕으로 중학생 돌풍을 일축한 것이다. 이는 조대성이 향후 많은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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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의 눈물.' 마침내 단체전 첫 우승을 일군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이 우승을 확정한 직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유남규의 ‘7전8기’


2016년초 탁구계는 깜짝 놀랐다. 탁구명가 삼성생명이 여자팀 감독으로 레전드 유남규를 전격 영입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이 삼성맨이 된 것은 탁구계의 문법으로는 아주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생명 여자팀은 최악의 침체에 빠져 있었다. 박해정, 류지혜, 이은실 등이 은퇴한 뒤 정상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 대회도 2004년 통산 19번째 우승을 달성한 후 12년 동안 스무 번째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

유남규 감독은 승부근성이 강하다. 스스로 “어린 시절 하늘에 있는 별을 따달라고 악을 쓰다가 기절했을 정도”라고 말한다. 유 감독은 삼성생명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선수들과 악착같이 훈련했다. ‘기술’에 관한 한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유 감독이 이렇게 하면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 워낙 전력이 약했고, 운이 따르지 않았다. 감독 부임 후 9번의 대회에서 8번이나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승률로 치고 최고였지만 다른 팀들이 돌아가면서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 전까지는 7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징크스를 풀기 위해 양복을 입고 벤치를 보는 등 ‘기행’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유남규 감독은 이번 대회 결승에서 포스코에너지를 3-0으로 완파한 뒤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삼성생명이 당분한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교 최대어인 김지호와 김유진이 가세했고, 주세혁이 이번 대회부터 정식코치로 유 감독을 돕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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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종합탁구선수권 남자단식에서 정상에 오른 수자원공사의 김동현.


춘추전국시대

이번 대회는 전 종목에서 2연패가 없었다. 남자단체는 KGC인삼공사가, 남녀 단식에서는 각각 김동현(수자원공사)와 전지희(포스코에너지)가 정상에 올랐다. 여기에 남녀복식(김민석-임종훈, 최효주-정유미)과 혼합복식(장우진-이시온)도 챔피언이 바뀌었다.

이는 국내 실업탁구가 대회마다 우승팀이 바뀌는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로 돌입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단체전은 물론이고, 개인 종목에서도 누구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같은 경쟁구도는 나쁘지 않다.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 정상과의 격차, 여자는 세계 4강권에서 밀려난 지 오래이고, 세계 2위권을 자부하던 남자도 독일에는 확실하게 뒤졌고, 일본 대만 등과도 호각세다. 자칫 2016년 리우 올림픽 노메달이 재연될 수 있는 위기인 것이다.

추교성 금천구청 감독은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91년 지바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 쾌거는 탁구붐으로 이어졌다.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탁구중흥은 요원하다. 대표팀의 경기력 강화와 함께, 프로리그 출범 등 국내실업리그가 탁구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이 2018년 프로리그를 출범하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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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탁구의 '2기 황금기'를 열었던 3인방이 공식 은퇴했다. 런던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시상식의 모습으로 왼쪽부터 유승민, 오상은, 주세혁.


레전드 은퇴

대회 마지막날인 27일에는 전 국가대표인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박미영, 당예서의 공동 은퇴식이 열렸다. 오상은은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주세혁은 “애국심이 강했던 탁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스토리가 소개되고, 레전드들이 은퇴소감을 밝힐 때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는 선후배들이 울컥할 정도로 의미있는 자리였다.

레전드의 은퇴는 큰 숙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상은-주세혁-유승민은 남자황금세대 2기에 해당된다. 안재형-유남규-김택수-추교성-이철승으로 이어지는 1차 황금기에 이들 3인방은 2003 세계선수권 단식 준우승(주세혁), 2004 아테네올림픽 단식 우승(유승민),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등의 쾌거가 이어졌다. 3인방 덕분에 큰 공백 없이 한국 남자탁구가 세계정상권을 지켰다. 하지만 2기가 은퇴하는 현재,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이상수(상무) 등 아직 후배들은 ‘3기’를 자신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분발이 필요하다. 여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세계 정상과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는 까닭에 대대적인 경기력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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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회 마지막날 열린 이벤트 경기에서 유남규 감독이 현정화 감독을 상대로 다리 사이로 서브를 넣고 있다. [사진=월간탁구 더핑퐁]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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