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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식 ‘닥공 골프’ 노래잉업, 대안 미디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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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잉업의 대표 크리스 솔로몬이 자신의 로고가 새겨진 스마트폰 케이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지난주말 제주도 클럽나인브릿지에서 마무리된 한국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CJ컵@나인브릿지의 프레스센터에서의 일이다.

황금색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를 옆에 놓고 저스틴 토마스(미국)가 우승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우승 소감을 말하고 마지막 질문을 받는 순간, 토마스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두번째 연장 홀에서 마크 레시먼의 두 번째 샷을 한 공이 물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서 레이업(Lay up)할 생각이 없었나?” 현장에 있던 몇몇 PGA투어 관계자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시 호주의 레시먼과 18번 홀에서 열린 두 번째 연장 홀에서 토마스는 우드를 잡고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 근처에 올려 버디를 잡아 우승했다.

토마스도 웃으며 답했다. “솔직히 말해 레이업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먼 데까지 와서 레이업을 해서 우승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웃는 맥락은 질문한 이가 노래잉업(No Laying Up)의 크리스 솔로몬이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솔로몬을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여서 그가 농담처럼 질문한 의도를 잘 알았고 있었다.

노래잉업은 4년전 설립된 미국의 골프 오타쿠 사이트다. 다음 샷을 쉽게 가져가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치는 ‘레이업을 하지 않겠다’는 게 이들의 모토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닥공 골프’다. 로고 이미지도 재미있다. 티샷을 슬라이스 내고 클럽을 들어 '포어(볼)'을 외치는 사람이다.

그들은 PGA투어의 아시안 스윙을 따라다니면서 다양한 골프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종의 대안 미디어다. 노래잉업은 자신의 슬로건을 적은 티셔츠를 판매하며, 투어와 관련된 각종 글을 사회관계망(SNS)에 올리고 홈페이지에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PGA투어는 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해주며 투어의 이모저모를 취재하도록 편의를 베푼다. 지난 주에도 노래잉업은 나인브릿지의 연습라운드에서 선수들의 동정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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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잉업이 말레이시아 CIMB클래식에서의 해프닝을 올리자 정규 골프미디어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2주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CIMB클래식에서 이들은 뉴스의 중심에 섰다. 대회장인 쿠알라룸푸르의 TPC쿠알라룸푸르의 서코스는 PGA투어 코스였고, 동코스는 이번 주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사임다비말레이시아가 열리는 곳이다. 당시 대회 2라운드 중에 큰 비가 내려 경기는 4시간 가량 중단됐다.

비가 서서히 그치고 대회가 재개되려하자 선수들은 일제히 굳은 몸을 풀고 워밍업 하려고 연습장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연습 공간이 너무 좁아서인지 어떤 선수는 벙커에 들어가서 아이언 샷을 하기도 하고, 어떤 선수는 이웃의 동코스 페어웨이로 들어가 샷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그 상황을 노래잉업이 놓치지 않고 SNS에 올렸다. 그러자 제시카 코다 등 LPGA투어 선수들이 발끈했다. ‘2주 후에 LPGA대회가 열리는 코스를 남자 선수들이 무턱대고 들어가 디보트 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기존 미디어인 골프채널과 골프다이제스트는 자칫 묻힐 뻔 했던 전날의 해프닝과 LPGA투어 선수들의 반응을 기사로 다뤘다. 정규 미디어가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 노래잉업이 기밀하게 침투해 보도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노래잉업은 투어의 최신 현상과 사건에 대해 그들만의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24일 타이거 우즈가 자신의 공식SNS계정에서 스팅어 샷을 하는 동영상을 올리자, 노래잉업의 코멘트는 이랬다. “타이거 우즈가 샷을 하고 클럽 돌리기(club twirl)를 멋지게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복귀가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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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22일 모나한 PGA커미셔너와 30분간 단독 인터뷰를 했다. [사진=노래잉업 홈페이지]


노래잉업은 소위 ‘밀레니얼’로 불리는 미국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감성을 콘텐츠로 담아낸다. 4명으로 구성된 노래잉업 구성원들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골프의 모든 것을 비평한다. 지난 22일에는 나인브릿지에서 크리스 솔로몬이 제이 모나한 PGA투어 커미셔너와 팟캐스트 단독 인터뷰를 무려 30분간 진행하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대회에서 생기는 색다른 이모저모를 즉시 올린다. PGA투어는 이를 받아 올린다. 이른바 컨텐츠 제작소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슬로건을 적은 티셔츠와 모자를 판매한다. 인기를 얻는다면 더 많은 품목으로 판매상품을 늘려나갈 것이다.

PGA투어는 그들을 지원하면서 다양한 골프 콘텐츠 제작을 후원한다. 이는 골프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내포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처음 열린 PGA투어에 유럽에서는 두 명의 기자가 취재 왔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기자를 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일요일 오전에 열린 모나한 PGA투어 커미셔너 공식 인터뷰에서 스위스에서 온 고참 기자가 “미국 정규 미디어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 섞인 질문을 했다. 모나한은 “미국의 골프 미디어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서 “투어 차원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뉴스 소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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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잉업은 미디어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모자와 셔츠 등을 인터넷 판매한다. [사진=노래잉업 홈페이지]


내년에 더CJ컵이 미국 골퍼들에게서 관심이 높아지거나 조던 스피스 등 유명 선수가 온다면 미국 미디어들이 한국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시차(時差)가 크다. 또한 이 기간 메이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에 밀려 미디어들이 안 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 미디어를 대신해 컨텐츠를 생산하는 노래잉업과 같은 오타쿠 집단을 후원하는 것이 PGA투어로서는 좋은 전략이다. 적은 비용으로 충분히 원하는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바뀐다. 제작 비용을 최소한으로 컨텐츠 생산력은 최대한을 추구하는 미국식 실용주의가 미디어 차원에서 발현된 결과가 노래잉업이다. 정규 뉴스 미디어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바로 이들과 같은 유사 미디어이자 새로운 방식의 게릴라 컨텐츠 생산자들일 것이다. PGA투어를 이끄는 모나한 커미셔너가 공식 기자회견보다 더 오랜 30분의 시간을 그에게 할애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대회 다음날 크리스 솔로몬은 PGA투어 관계자들과 함께 제주를 떠나 HSBC챔피언스가 열리는 상하이로 떠났을 것이다. 그는 내게 “이제 4년 됐는데 사업은 잘 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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