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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 백과사전 79] 프레지던츠컵에선 왜 항상 미국이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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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송도대회에서 성조기를 중심으로 각국 국기가 따르는 의장대 행진이 있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프레지던츠컵. 우리말로 바꾸면 ‘대통령배’인 이 대회는 2년마다 미국과 인터내셔널 연합군 12명씩 팀매치를 벌인다. 1994년 처음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전적은 인터내셔널팀이 1승9패1무로 압도적인 열세다. 미국팀은 항상 이긴다. 왜 이 대회는 항상 미국이 이길 수밖에 없는지를 운영 배경, 역대 전적, 대의 명분 차원에서 분석해 보았다.

운영 배경: 미국이 만들고 주관하는 대회
프레지던츠컵을 처음 기획한 팀 핀쳄 PGA투어 전 커미셔너는 1994년 첫 대회에서 제럴드 포드 미국 전 대통령을 명예 의장으로 초빙했고, 이후에 매번 개최국 대통령들이 명예의장을 맡도록 설계했다. 미국에서는 조지 H.W.부시(1996년), 빌 클린턴(2000년), 조지 W. 부시(2005년), 버락 오바마(2009, 2013년)에 이어 올해 도널드 트럼프까지 6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명예의장이었다.

조지 부시 가문은 미국에서는 골프 가문 중의 성골(聖骨)이다. 외증조부인 조지 허버트 워커는 1920년대 미골프협회(USGA) 회장을 지냈다.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팀 대항전을 벌이는 ‘워커컵’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는 상원의원이었지만, 본인은 USGA 회장을 지낸 것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41대 미국 대통령 조지 H.W.부시와 43대 조지 W. 부시에 이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잽 부시도 골프를 즐긴다.

2003년 남아공에서 열린 대회의 명예회장은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이었다. 타이거 우즈는 당시 이 대회의 위상이 높지 않아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평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가 나서서 우즈에게 요청하자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대회에 출전했다. 2011년과 2015년의 명예의장이던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골프를 전혀 하지 않지만 명예의장직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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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대회 첫날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동전 던지기로 티샷 순서를 가렸다.


2년전 송도 컨벤시아에서 가진 개막식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개회사를 했다. 대회 첫날 경기가 시작할 때 조지 부시는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인터내셔널팀과 미국팀의 포섬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느 팀이 먼저 티샷을 할지 결정하는 데 그가 ‘동전 던지기’를 주재했다.

부시는 둘째날인 9일에도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필 미켈슨과 격의없는 프리허그를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조가 티샷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그는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격려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상대 팀이 주재하는 대회장까지 가서 주빈 역할을 한다. 한국의 골프 단체가 주관하는 대회가 아니라 미국 PGA투어가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그랬다. 상대국은 대회장을 내주고, 큰 돈으로 후원하고 대회를 진행하는 역할에 그친다.

1927년 창설된 유럽과 미국의 팀 대항전인 라이더컵은 개최 대륙에 따라 주관단체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유러피언투어가 바뀌지만 프레지던츠컵은 철저히 미국 중심이다. 상대국에서 개최하더라도 PGA투어가 주관한다. 2년전 부시 대통령이 상대국에 와서 호스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미국이 처음 만들고 현재까지 이끌어간다. 해외에서 열리면 PGA투어 담당자가 1~2년 전부터 상주하면서 대회를 만들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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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팀은 최근 뉴욕의 소방관들과 월드트레이드센터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전의를 다졌다.


역대 전적: 비대칭 전력의 대결
1승9패1무. 1994년을 시작으로 격년마다 대회를 치러 12번째에 이른 인터내셔널과 미국의 팀매치 프레지던츠컵은 항상 현격한 전력차로 치러졌다. 유럽을 제외한 연합국으로 구성된 인터내셔널팀은 제3회인 1998년 단 한 번 이겼고, 지난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5회 대회에서 무승부를 냈다.

인터내셔널팀이 이긴 건 대회 장소를 처음 해외로 옮겨 호주 멜버른의 로열맬버른GC에서 개최한 1998년이었다. 인터내셔널팀은 호주의 피터 톰슨이 단장이었고, 호주 선수가 4명(스튜어트 애플비, 스티브 엘킹턴, 그렉 노먼, 크레이그 패리), 호주에 이웃한 뉴질랜드에서 2명(프랭크 노빌로, 그렉 터너)이 단장 추천으로 출전했다. 마치 미국 대 호주의 게임 양상이었다.

당시의 게임 방식은 이틀간 포섬(Foursome) 5경기, 포볼(Four-Ball) 5경기를 하루에 치르고 마지막날 12개의 싱글 매치를 벌여 3일간 총 32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첫날 인터내셔널팀이 7대 3으로 앞섰고, 둘째날은 인터내셔널팀이 14.5대(1점은 승리, 0.5점은 무승부의 획득 포인트) 5.5로 3배 가까이 앞섰다. 마지막날 인터내셔널팀은 20.5대 11.5로 더블스코어 차이로 승리했다.

노랑과 초록 색상에 캥거루 모양의 베레모를 쓴 호주 갤러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어울리면서 인터내셔널팀은 미국팀을 압도했다. 프로 1년차 타이거 우즈는 2승3패로 부진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미국팀이 졌던 이유는 호주 로열맬버른의 코스 적응이 어려웠고 게임 일정이 타이트했던 탓이다. 샌드밸트 지역에 조성된 이 코스는 그린이 매우 딱딱하고 그린사이드 벙커도 가혹하다. 처음 호주에서 시합하는 미국 선수들은 코스 적응에 힘들어 했다. 게다가 시즌을 마친 미국 선수들이 하루에 모두 10경기씩을 소화하는 스케줄은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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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팀은 역대 전적 1승9패1무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팬코트 링크스에서 열린 5회 대회에서는 무승부가 나왔다. 최경주가 한국인 중에 처음 출전했던 이 대회에서 인터내셔널팀은 대회 3일차까지 남아공의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의 활약으로 3점을 앞서 나갔다. 마지막 날은 12명의 모든 선수들이 출전하는 싱글 매치였다. 타이거 우즈를 앞세운 미국팀이 맹렬하게 따라잡았고, 대회를 마치고 리더보드를 보니 17대 17로 공교롭게 동점이었다.

양팀 단장 잭 니클라우스와 개리 플레이어는 연장전에 나갈 선수를 골랐다. 타이거 우즈와 어니 엘스였다. 피 말리는 서든데스 연장전은 세 홀이 지나도록 파로 비겼다. 승부욕은 불타올랐으나 코스는 이미 어둑해져서 게임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미국팀은 그날 밤에 돌아갈 전세기를 이미 예약해둔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두 단장은 사상 처음으로 무승부를 선언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끝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게인즈빌의 로버트트렌트존스GC에서 처음 대회를 개최한 뒤로 미국팀은 9번을 이겼다. 본토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진 적이 없고, 2005년 제6회 대회 이래 6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큰 스코어로 이긴 건 2000년으로 미국이 21.5대 10.5로 더블 스코어 이상 이겼다. 2년 전인 1998년 호주 대회에서 인터내셔널팀에 진 것을 설욕한 경기다.

지난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한국 대회에서는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한 승부의 열전이었다. 3일까지는 미국팀이 압도했으나 토요일에 점차 타수를 줄였고, 마지막 날 동점까지 갔다. 하지만 마지막 조에서 미국팀의 빌 하스가 인터내셔널의 배상문을 18번 홀에서 누르고 승점 1점을 차지하면서 최종 1점차(15.5대 14.5) 승리를 가져갔다.

대체로 불균등하고 비대칭인 전력의 싸움이었다. 올해 역시 출전 선수들의 랭킹부터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미국팀은 초호화 군단이다. 세계 랭킹 톱10에 있는 선수만 더스틴 존슨(1위), 조던 스피스(2위), 저스틴 토마스(4위), 리키 파울러(8위) 4명이다. 단장 추천인 찰리 호프만이 23위고, 필 미켈슨이 30위다. 미켈슨은 첫 대회부터 12번째 출전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인터내셔널팀은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3위로 가장 높고, 제이슨 데이(호주)가 7위로 톱10에 들었다. 마크 레시먼(호주)이 16위, 루이 우스투이젠(남아공) 21위, 애덤 스캇(호주) 22위, 찰 슈웨첼(남아공)이 27위다. 인터내셔널팀 단장인 닉 프라이스가 2년 전에 처음 출전해 3전 전패한 리히리를 굳이 뽑은 건 ‘경험’을 중시한 때문이다. 포볼, 포섬이라는 팀 매치를 해본 인터내셔널 팀 선수가 그만큼 적다. 반면 미국팀은 매년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을 출전하면서 팀 매치의 게임 방식에 익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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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호주의 팬클럽이 태극기를 휘두르는 장면은 왠지 생경했다.


대의 명분: 애국심과 팬심의 대결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는 대의 명분은 팀 경기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동기 부여 요소다. 그게 뚜렷하면 팀원들은 하나로 뭉쳐서 없던 힘까지 낸다. 그런데 미국은 있지만 인터내셔널은 없다. 미국은 프레지던츠컵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성조기로 옷과 골프백을 온통 치장한다. 올해 개최지인 미국 뉴저지 저지시티의 리버티내셔널(파71, 7328야드)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 훤하게 보인다.

단장인 스티브 스트리커는 “국가가 울릴 때는 모든 선수들이 서서 존중을 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불거진 다른 스포츠계와는 달리 선수들은 그에 동참키로 했다. 골프광인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US여자오픈 기간에 주말 내내 대회장을 지켰다. 그가 코스에 나와 미국 선수를 격려할 것이다. 미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은 애국심을 위해 뭉친 단합대회다.

미국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팀매치라는 대회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팀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PGA투어에서 함께 라운드 하는 동료들이다. 포섬, 포볼 매치는 파트너십이 중요한 게임이다. 동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전략을 짜기도 힘들다. 미국은 매년 같은 PGA투어를 다니는 절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인터내셔널팀의 경우 출전 선수들이 언어소통부터 어려우면 매치에 대해 세세한 논의를 하기가 무척 어렵다.

2년 전 한국에서 열렸을 때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5명, 남아공 3명, 아시아(한국, 일본, 인도, 태국)에서 4명이 출전했다. 주로 활동하는 투어도 달랐다. 당시 인터내셔널팀의 브랜든 그레이스, 통차이 자이디, 아니르반 라히리 3명은 유러피언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였다.

올해도 인터내셔널팀은 8개국 선수들이 모였다. 호주와 남아공이 각각 3명씩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인도에서 한 명씩,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캐나다,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에서 한 명씩 3명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는 3개국에 불과하다. 쓰는 언어도 제각각이고 처음 만나 인사 나누게 될 선수도 있다. 세계 랭킹 39위인 한국의 김시우를 비롯해 조나단 베가스(베네주엘라), 애덤 해드윈(캐나다), 에밀리아노 그리요(아르헨티나)는 처음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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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조던 스피스의 클럽헤드에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쓰여 있었다.


프레지던츠컵에서 인터내셔널팀은 꼭 이겨야 하는 동기를 찾기 힘들다. 세계 평화를 위할 수도 없다. 히데키 마쓰야마와 김시우는 같은 팀이지만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게 아니다. 잘하니까 뽑혔을 뿐이다. 그리고 골프 팬들을 위해 좋은 경기를 보일 뿐이다.

반면, 미국-유럽의 팀매치인 라이더컵을 보면 유럽팀은 소속감이 크다. 불안하지만 유럽연합은 유로화 경제권 국가들끼리 모였다. 유럽에는 단 한 개의 투어인 유러피언투어가 있다. 또한 링크스에 익숙한 뛰어난 선수도 많다. 게다가 유럽팀이 홈경기에서 미국팀을 종종 이기는 건 엄청난 갤러리가 모여 유럽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효과도 크다.

2년 전 한국에서 시합하는 미국 선수들은 종종 의아해 했다. 자기들이 멋진 샷을 하고 승점을 따는데 한국 팬들이 박수치며 응원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차이가 있다. 한국 갤러리들은 한국 선수 배상문을 응원하러 간 게 아니고, 인터내셔널 팀을 응원한 게 아니다. 유명한 선수의 멋진 샷을 보러갔다.

미국 선수들은 애국심이라는 가치를 위해 똘똘 뭉치지만 인터내셔널팀은 대의 명분이 없다. 멋진 게임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찾자면 팬들에게 멋진 샷을 보이기 위해 경기한다. 여기에 파트너십이 설 자리는 줄어든다. 프레지던츠컵은 그래서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한 골프 제전이 된다. 주연은 미국이고 인터내셔널은 조연에 그친다. 미국팀은 그래서 항상 이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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