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와키 칼럼] 레저복합리조트의 시작 원산 골프장
이미지중앙

원산 해수욕장 전경이 나온 사진엽서.


사진은 해당 시대의 생생한 생활상과 사실을 담은 기록물이다. 한반도 골프 초창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조상우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의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의 타임머신을 타고 백년 전의 한반도로 돌아가 보자.

한반도에 들어선 첫 번째 골프장은 1921년 효창원에 개장한 9홀 코스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께 원산에 영국 해관(海關)인들이 만들었다는 코스는 전설로만 존재했다. 하지만 조 교수가 찾은 자료에 따르면 그곳에 실제로 골프장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해방에 이르기까지 무려 3군데 골프장이 조성되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1880년 함경남도 원산항이 개항했고, 1883년에 원산 해관이 개청했다. 거기에는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인이 공동으로 근무했다. 영국인 J.노트(Knott)등 2명이 상주하면서 유목산 중턱에 6홀 골프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1905년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박탈해 조선해관을 장악하게 된다. 그래서 1897년에 설립된 6홀 원산 코스는 1905년 11월에 영국인들이 떠나면서 사라졌다.

이미지중앙

원산시 지도. A 원산 명사십리 해수욕장. B 갈마반도 알파벳 위로 비행장, C 원산 해관이 있던 지역, D 송도원 골프코스 지역, E 송도원 해수욕장.


원산은 개항 이전에는 시골의 작은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1880년 개항되면서 이곳은 한반도 동북 지역의 중요한 교통과 교역의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고, 일본은 물론 서양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외국 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되던 곳이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원산에 있던 당시 세관에 근무하던 영국인에 의해 한반도 최초의 골프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산에는 동해안 제일의 해수욕장이라 불리던 송도원해수욕장과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있어 여름에는 많은 피서 인파가 몰리던 곳이었으며, 각 해수욕장들에는 숙박 시설과 테니스장을 비롯한 골프장까지도 있었다. 또한 겨울에는 한반도 최초의 신풍리 스키장이 생겨나 겨울이면 스키 열차까지 운행되던 4계절 스포츠의 메카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3년 황해도 구미포에 70동의 외국인 선교사 별장에 골프장이 있었다. 원산의 두 번째 골프장이다. 연세대를 만들고 한국에 근대 문화를 전파한 H.G.언더우드 박사는 황해도 구미포 소래마을을 방문한 뒤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1905년 소래해수욕장을 개장한다. 그리고 얼마 뒤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한 별장을 만든다. 1915년 전후 선교사 에비슨의 일대기에 따르면 황해도 솔내(송천)마을에 선교사들이 예배당과 함께 야구장, 테니스장, 골프장을 만들었다고 나온다.

1924년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 근처에 일본인들에 의해 9홀 2200야드 규모의 원산골프장이 만들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휴양지 골프장으로 쓰인다. 파3와 파5홀이 두 개씩이고 파4가 5개 홀이었으며 그린은 샌드그린을 사용했었다. 이것이 원산에 조성된 세 번째 골프장이다.

이미지중앙

매일신보 1925년.


매일신보 1925년 7월31일
한국골프사에서 원산에는 원산해관 골프장과 송도원골프장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1913년경에 원산 갈마반도 외인촌에 골프장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실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갈마반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주변에 선교사들이 해안 별장을 비롯한 테니스장, 야구장 등을 비롯한 골프장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당시 선교사였던 노블의 일지에서 골프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매일신보(1925년 7월31일)를 통해서도 7월19일에 골프장이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37년 일본이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사라져버렸다.

동아일보 1934년 8월10일자에도 구미포 골프장이 소개된다. 원산 갈마반도의 골프장 위치는 지금은 북한의 비행장 활주로 근처로 추정된다. 황해도 구미포와 원산 갈마반도 골프장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추방당하며 1940년을 전후하여 외인촌과 함께 없어졌다.

이미지중앙

1931년에 작성된 조선골프클럽 회원 리스트.


조선골프클럽회원리스트
이 사진은 조선골프클럽회원리스트(1931)의 원산골프구락부(俱樂部란 ‘클럽’이라는 영어의 일본식 표기다) 회원 리스트다. 당시 총 회원은 24명이었으나 원산의 조선인 골퍼였던 임영식과 이상옥이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이 리플렛에는 경성, 대구, 평양구락부의 회원 명단도 보여주고 있는데, 회원 규모로서는 원산구락부가 가장 작았다. 특이하게 이 리플릿에는 안동(安東)골프구락부도 조선의 골프클럽으로 분류하고 있다. 안동 지역은 압록강 너머 만주에 있던 도시로 지금의 단동(丹東)을 말한다. 당시 한반도의 강역이 만주까지였음을 암시한다.

원산 송도원해수욕장 전경 사진엽서(맨 위 사진)
1923년 ‘원산해수욕장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원산 송도원에는 해수욕장, 별장, 호텔, 방갈로, 테니스장, 보트장 등의 시설을 갖추었고, 1924년 7월에는 골프장까지 개장한 레저복합리조트로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이용하였다. 이곳은 더운 여름에 골프를 치고 바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골프장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미지중앙

원산(Genzan) 골프장을 알리는 자료.


Golf in JAPAN(일본 국영철도국 1934)
일제강점기 일본철도청에서 발행한 골프장 안내책자에 소개된 원산골프장 안내서다. 경성(오늘날 서울)에서 기차로 5시간, 그리고 원산역에서 자동차로 20분 걸린다는 교통안내와 그린피, 식사 등의 이용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자에는 일본의 골프장은 물론 당시 일본 강점기에 있던 조선, 만주, 대만의 골프장까지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당시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이미지중앙

링크스 레일 팜플렛에 나온 원산 골프장의 골프 풍경.


Golf Links in JAPAN(일본국영철도국, 1932)
1932년 원산 송도원골프장 6번 홀의 모습으로 페어웨이 상태는 잔디보다 맨땅이 더 많이 노출되어 있어 코스상태는 좋지 않아 보인다. 송도원 골프장의 위치는 해수욕장 인근의 소나무 숲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4,5,6번 코스는 평평하면서도 완만한 경사가 있어 이상적인 코스였다고 한다.

* 이 글은 코오롱 와키진(www.waacgolf.com)에 연재된 내용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