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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키 칼럼] 애국충절의 땅 천안과 골프, 그 기묘한 조합
땅은 역사를 품고 산다. 오늘도 수많은 이의 발걸음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지문처럼 각인된다. 다만 자세히 공들여 보지 않으면 그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국내 18홀 규모 골프장은 30만평 안팎의 땅에 자리를 틀고 있다. 그 안엔 오랜 세월 그곳을 밟고 지나간 누군가의 의미 있는 역사가 있다. 글 하필운(골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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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있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전 명예회장이 공들여 만든 우정힐스가 있다. [일러스트=김희영].


천안이다. 예부터 교통의 요충지이자 애국충절의 고장이다. 유관순(1902~1920) 열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를 승리를 이끈 충무공 김시민(1554~1992), 상해 임시정부 초대 의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1869~1940), 민족운동 지도자였던 유석 조병옥(1894~1960) 등이 천안 출신이다. 유관순, 김시민, 조병옥은 병천 출신이고, 이동녕은 목천에서 났다.

올해 개관 30년을 맞는 독립기념관은 그래서 천안에 자리를 잡았다. 독립기념관 맞은 편엔 우정힐스 골프장이 떡 하니 있다. 독립기념관이 문을 연 건 1987년, 우정힐스가 오픈한 건 1993년이다.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다. “순국선열의 혼을 모신 맞은편에서 한가롭게 웬 골프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관계 당국이 우여곡절 끝에 골프장 건설 허가를 내주면서 조건 하나를 걸었다. 왜색(倭色), 속된 말로 ‘사쿠라’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봄철 전국의 골프장 중 벚꽃이 만발한 곳이 많지만 우정힐스에서는 벚꽃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다만 2번 홀에 있는 오래된 벚나무는 예전부터 있던 거라 그대로 뒀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정힐스를 만든 건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다. 당시 그의 재력이나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수도권에 충분히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천안을 부지로 낙점했을까. 물론 경부고속도로 목천IC가 지척에 있으니 접근성이 나쁜 건 아니다. 그래도 쉽게 수긍은 안 된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이 작용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1922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이동찬 명예회장은 여강(여주) 이씨 사람이다. 회재 이언적의 16대 손이다. 이언적은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고, 퇴계 이황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 양반가문에 태어나 조상 덕에 명예와 부를 다 가져봤노라고 겸양했다. 실제로 아흔둘 그의 삶은 가진 것에 비하면 소박했다. 아호 우정(牛汀)은 소처럼 우직하면서 근면하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담았다. 우정힐스 아웃코스가 원래 목장이었으니 이 또한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다.

우정힐스는 이 명예회장과 코오롱의 숨결을 담았다. 코오롱이 공장을 구미로 이전하면서 대구공장에 있던 나무들이 우정힐스로 옮겨졌다. 6번 홀에 있는, 100년은 족히 넘은 모과나무를 비롯해 드라이빙 레인지 주변의 나무, 그리고 소나무 수 십 그루가 대구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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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힐스 13번 아일랜드 그린 홀은 이 코스의 시그니처 홀이다.


아일랜드 그린이 특징인 13번 홀은 우정힐스의 시그니처 홀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소그래스 TPC 17번 홀을 본땄다. 우정힐스 13번 홀도 소그래스 17번 홀처럼 그린만 덩그러니 조성될 계획이었다. 설계자의 모든 의도를 그대로 반영했던 이 명예 회장은 그러나 “너무 가혹한 건 한국 정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벙커가 몇 개 놓이게 됐다. 파3 7번 홀 그린 주변에 있는 7개의 벙커는 코오롱 로고에 있는 7개의 삼각형을 상징한다.

13번 홀에 얽힌 유명한 일화 한 토막. 때는 2009년이다. 당시 일본에서 주가가 한층 치솟던 이시카와 료가 출전했다. 그는 그러나 1~3라운드 동안 13번 홀에서 매일 볼을 물에 빠뜨렸다. 3라운드 동안 이 홀에서만 6타를 까먹었다. 우정힐스의 신(神)이 만든 항일(抗日)이었을까.

우정힐스는 2003년부터 한국오픈 코스다. 이 명예회장이 아버지와 함께 설립한 코오롱은 ‘코리아’와 ‘나일론’의 합성어다. 코리아를 사명에 넣은 그의 회사가 코리아오픈(한국오픈)의 타이틀 스폰서다. 골프 국가대표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틀을 완성한 것도 이 명예회장이다.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던 이 명예회장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골프를 통해 나름의 애국을 한 셈이다.

말년에 가을걷이를 마친 소처럼 등산과 그림 등을 즐기며 유유자적 삶을 즐겼던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14년 아흔 둘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8년. 1년을 1홀로 치면 꼭 18홀을 마치고 떠난 셈이다.

자본의 시대, 그 시대상을 반영한 골프. 한국 골프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가 매년 천안 땅에서 열린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6월로 옮겨 치러졌다. 100여 년 전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진 함성이 그린으로 옮겨갔다고 하면 시쳇말로 ‘너무 멀리 갔다’. 어찌 됐건 천안은 예나 지금이나 시끌벅적하다. 역사는 흘러간다. 그리고 변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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