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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 백과사전 63] 선수와 약물, 애증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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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의 경찰서 머그샷 사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지난달 29일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차량 음주 단속에 걸린 우즈는 더 이상 황제의 위용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눈은 풀려 있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으며, 발음도 어눌했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측정 결과 음주운전은 아니지만 약물 중독으로 짐작되었다. 잦은 허리 부상으로 인해 상용했던 진통제 계통의 약물이 그의 신경을 마비시켰는지 모른다.

허리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필드를 떠났던 우즈는 다음날 법원에 자진 출두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귀가했다. 우즈는 ‘허리 수술 후 바이코딘(Vicodin)을 포함해 4종류의 약물을 병원에서 처방받았다’고 진술했다.

우즈는 지난 2009년 본인의 섹스 스캔들이 유발되던 날도 차량 사고를 냈다. 이때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린은 경찰에게 진통제 두 병을 건넸다는 사고 보고서도 있다. 우즈가 수면제의 일종인 엠비언(Ambien)과 환각 성분을 함유한 진통제 바이코딘(Vicodin)을 함께 복용해 왔다는 것이다.

허리 통증에 쓰이는 진통제 바이코딘은 중추 신경계를 둔하게 하며 중독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술과 함께 먹었을 경우 호흡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우즈에게서 혈중 알콜은 측정되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인 바이코딘의 명칭은 약품제조회사의 이름이며 정식 명칭은 아세트아미노펜 엔 하이드로코돈(Acetaminophen and Hydrocodone)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우리가 흔히 먹는 타이레놀이라고 불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품이지만 문제는 하이드로코돈이다. 성분 자체가 중독성 진통제다. 따라서 바이코딘은 모르핀과 타이레놀을 섞어놓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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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ADHD 치료제인 애더럴


청소년도 쉽게 처방받는 애더럴
선수들이 쓰는 약물은 바이코딘, 모르핀 황산염(morphine sulphate)이 있고 가장 흔한 건 애더럴(Adderall)이다. 역대 골프사에서 선수들의 곁에는 약물이 있었다. 20년대는 알코올, 60년대에는 LSD, 80년대에는 코카인이었다. 바이코딘, 애더럴, 황산염은 합법적인 처방약이지만 오늘날 대표 약물 자리를 차지하면서 선수들의 어느 한 부분을 무너뜨리고 있다.

애더럴은 중추신경 자극제 계열인 암페타민이다. 애더럴의 부작용이 중추신경 자극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처방받은 것보다 많은 양을 복용하면 중독될 수 있고, 과량의 복용은 심장질환, 고혈압, 현기증, 떨림, 환각을 비롯한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는 성인부터 초등학생까지 주의력 결핍(ADD)나 과잉행동장애(ADHD)의 충동과 주의 태만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애더럴을 처방받는다. 게다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처방전 없이 파티에서 이 약물을 오용하거나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남몰래 자가 처방을 한다. 현재 미국의 6~17세 청소년 4500만명 가운데 약 9%가 ADD, ADHD 진단을 받았으며, 2011년에 ADHD 약물 처방 중에서 1400만 건은 20~39세의 어른에게 발급되었다.

많은 십대들이 강력한 각성제를 받고 있으니, 그걸 기분전환용으로 사용하는 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미국약물남용연구소에서 발표한 2012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고등학교 졸업반 가운데 8%가 처방전 없이 애더럴을 복용한 적이 있으며, 또 다른 보고서는 ADD, ADHD 문제가 없는 대학생의 최대 20%가 애더럴이나 ADHD 약물을 시험기간에 사용했다고 추산했다. 이 비율은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대학생보다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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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핑기구(WADA)는 홈페이지에서 금지약물 등을 매번 갱신하고 있다.


스포츠계에 만연된 약물 오남용
2005년에 야구선수들의 스테로이드 계열 약품의 오남용을 조사하던 의회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애더럴을 발견했다. 그뒤 MLB에서는 2006년부터 애더럴의 복용을 금지하고, 이를 도핑 테스트 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선수들은 즉시 면제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MLB의 미첼 보고서(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근육강화제 부정 사용에 대한 MLB의 독자적인 조사 보고서)는 ADD/ADHD 진단을 근거로 애더럴의 의료적인 사용 자격을 요청한 선수가 2006년에 28명에서 2007년에는 1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현역 선수들 사이에서 이 장애가 약 10% 늘어난 것인데, 미국에서 이 장애로 진단을 받는 성인의 비율 2~4%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이다. 미식축구 NFL도 청정지역은 아니었다. 시애틀 시호크스의 코너백 리처드 셔먼은 2013년에 <밴쿠버 선>과의 인터뷰에서 “NFL 선수들 가운데 절반이 애더럴을 복용한다”고 말했다.

처방용 약품을 둘러싼 논란은 골프계에서도 있었다. 심장과 혈압 관련 약품을 지칭하는 베타블로커는 심장박동을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1980년대 투어에서 상당히 일반적으로 유통됐다. 그렉 노먼은 자신의 전성기 때 “많은 선수들이 베타블로커를 복용했다”고 말했다. 닉 프라이스는 고혈압으로 약을 처방받아 1984년부터 89년까지 복용했다. 맥 오그레디는 “1985년에 베타블로커를 먹어봤더니 퍼팅 실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프로 골퍼가 PGA투어에서 금지하는 약물을 복용하기 위해 치료 목적의 사용면제권(TUE: Therapeutic Use Exemption)을 받으려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도 해당 약물과 신체 상태에 따라 일련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증상과 관련된 의료기록을 제출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구체적인 테스트나 신체검사, 제3자의 증언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 정보는 위원장과 함께 해당 분야의 의료 전문가가 참여하는 TUE 위원회에 제출된다.

선수가 치료 목적으로 애더럴 복용을 신청했다면 ADD/ADHD 관련 전문가가 참여해서 판단하는 식이다. 해당 선수를 직접 면접 조사하지는 않는다. 위원회의 심사는 익명으로 이루어진다. 위원회에서 면제권을 허용하기로 결정할 경우, 허용기간은 1년에서 4년까지이며, 그 기간이 지나면 면제권의 갱신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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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소지로 인해 약물 중독이 들통난 매트 애브리.


선수의 오남용에 입다문 투어
PGA투어에서 토너먼트 운영과 약물금지를 주관하는 앤디 레빈슨 부사장은 “우리는 ADD/ADHD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누구든 구체적인 조건을 충족하면 필요한 약물을 복용하는 걸 막을 생각이 없지만 애더럴처럼 인지능력을 높여주는 약물은 그걸 오용하려는 사람에게 중대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TUE 면제권을 획득해서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애더럴을 복용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해마다 애더럴과 관련된 면제권이 허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에 처방전 없이 애더럴을 복용했다가 투어에 진출한 후로 중단했다는 PGA투어의 한 챔피언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상황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서는 다들 ‘경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 바로 그게 애더럴의 효과이다. 그건 사실상 우리를 경지에 올려준다.” 버바 왓슨과 이안 풀터는 자신들에게 ADD, ADHD 증세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은 애더럴을 복용하지는 않는다.

도핑방지 세계기구(WADA)의 사무총장은 투어의 약물금지 프로그램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존 댈리와 로버트 개리거스와 같은 선수들도 ‘투어의 소변검사가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리거스는 “알파벳 순서로 검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를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GA투어는 선수들의 기분전환용 약물의 사용 위반 내역을 비공개로 하고 있다. 매트 에브리는 2010년에 3개월 동안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그는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바람에 위반 사항이 공개됐다. 2009년에는 더그 배런이 투어 최초의 위반자가 되면서 1년 자격정지에 처해졌다. 그는 투어에 일시 사용권 신청서를 제출했다가 거절당한 후 처방받은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웹닷컴투어에서의 바빅 파텔이 기능강화 약물 복용으로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투어의 테스트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 무명의 선수들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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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존슨은 지난 2014년 반년간 투어에서 조용히 잠적했다가 이듬해 복귀했다.


더스틴 존슨도 반년간 잠적
현재 세계 골프 랭킹 1위인 더스틴 존슨은 지난 2014년 8월에는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얻고자” 투어를 잠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나중에 골프닷컴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서 ‘존슨의 활동 중단이 3차 약물검사와 두 번째 코카인 사용에 따라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본인은 이를 부인했고 이와 관련된 진실 찾기 이슈는 그가 2016년 US오픈을 우승하면서 땅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PGA투어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많이 수군거리는 얘기가 바로 성장호르몬에 관한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하거나 피로를 느낄 경우 성장호르몬을 사용하기 쉽다.” 한 베테랑 선수의 캐디의 말이다. “투어에서는 이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어의 약물 금지 정책에는 위원회에서 승인할 경우 강력한 증거나 의심이 있을 때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투어는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투어에서 약물금지 정책을 맡고 있는 앤디 레빈슨은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혈액검사의 착수를 막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검사를 통해 위반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기간이 며칠에 불과하다는 점, 둘째는 주사기로 혈액을 채취할 경우 선수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미래는 검출 기간이 늘어나고 미량의 혈액으로도 검사가 가능해진다면 투어에서도 검사를 검토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수는 어떤 힘을 빌어서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하는 만큼 약물 규제나 검사의 빈틈과 사각지대를 이용한 편법 역시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약물과 선수는 애증의 변주곡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숙명을 가졌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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