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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병철의 생체세상] (1) 지고 또 져도 링에 오른다 - 23살 대학생 남승우

* 스포츠는 엘리트선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죠. 하지만 스포츠미디어는 자본의 문법에 따라 인기종목과 스타선수만 주목합니다. 이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은 평범한 우리네 이웃이 스포츠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가는 모습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생활체육 전문칼럼인 '유병철의 생체세상'에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또 생활체육과 관련해 알리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einer6623@naver.com으로 언제든 연락 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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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KBI대회에서 8패를 당한 후 복서 남승우(왼쪽)가 도승진 KBI부회장과 포즈를 취했다.


전형적인 공부벌레였다. 체형은 이른바 ‘마른 비만’. 177cm에 65kg이었는데 근육양이 적어 팔다리가 가는, 완전 약골이었다. 문제는 고3때 터졌다. 여름이었는데 체력이 떨어져 도통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늘 멍한 상태에, 학교에서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자천타천으로 ‘공부도 공부지만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방학 때 복싱체육관을 등록하고, 한달을 다녔다. 복싱을 택한 것은 예전 아버지가 집근처 복싱체육관을 다니는 것을 슬쩍슬쩍 본 것이 제법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3인 까닭에 복싱수련은 한 달에 그쳤다. 그래도 복싱의 매력에 빠지기는 충분했다. 고등학교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줄넘기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남승우(23)는 2015년 목표로 했던 서울대 전기전자공부에 입학한 후 바로 복싱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복싱선수가 됐다. 물론 이기는 것보다 지는 데 익숙한 선수지만 말이다.

포스(FOS). ‘서울대의 주먹(FIST OF SNU)’이라는 복싱부는 단순한 동아리를 뛰어넘는다. 서울대의 정식 운동‘부’다. 1995년에 생겼고, 2000년부터 학교 체육부에 등록됐다. 활동하는 부원은 통상 20~30명. 동호인들이 출전하는 생활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국신인전 우승권대회 등 복싱특기자(엘리트선수)들이 경쟁하는 대회까지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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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 남승우에게는 기념비적인 경기 2015년 7월말 망상해수욕장에서 가진 데뷔전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물론 이후 지금까지 8연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물론 남승우를 비롯해 서울대 복서들의 공식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생활체육대회에서야 이기고 지고 하지만, 엘리트대회에 나가면 지는 게 익숙하다. 빠르면 초등학교부터 복싱을 해온 특기자들을 꺾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지는 것으로 유명세를 탄 서울대 야구부와 같은 이치다. 도전 자체가 아름다운 스포츠맨십의 발로인 것이다. 문제는 야구는 기본적으로 ‘공놀이’로 지더라도 즐긴다고 하면 되지만, 복싱은 ‘왜 애써 맞느냐?’는 의문부호가 늘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그 많은 운동 중에 왜 얻어맞는 복싱을 하냐고요? 글쎄요. 설명하기 어렵네요. 복싱 매력은.. 음, 처음 맞을 땐 화가 나죠. 요즘 사람들 맞아 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복싱에서는 맞는 게 시작입니다. 그것도 일부러 맞는 거죠.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안 아프게 맞으면 생각도 안 나요. 아프게 맞으면 나도 저렇게 때리는 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면서 거꾸로 때리게 되죠. 이렇게 되면서 복싱에서 맞부딪히는 느낌이 좋아집니다. 다른 운동에서는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 없죠. 상대도 몇 달 동안 갈고 닦은 주먹으로 나오고, 저도 그렇죠. 진짜 대결하는 느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죠.” 맞다. 복싱을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복싱만큼 짜릿하게 재미있으면서, 운동효과가 뛰어난 스포츠는 없다고. 남승우는 이런 걸 ‘맞는 얘기’로 풀어낸 것이다.

60kg급에서 뛰는 남승우 ‘선수’의 공식전적은 1승 8패. 2015년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린 생체대회에서 데뷔해 승리(판정승)한 후 지난 2월 KBI대회까지 8번을 내리 졌다. 그나마 KO로 진 적이 없다는 것이 마지막 자존심이다. 첫 패배에서 일방적으로 맞다가 기권을 했을 뿐, 나머지 7번은 모두 판정으로 졌다.

“아버지는 복싱을 하셨으니까, 처음부터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복싱을 하고, 대회에 나간다고 하니까 처음에 아주 싫어하셨어요. 하지만 다치지 않았고, 또 제 몸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지금은 격려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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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 훈련을 하고 있는 남승우. 복싱 덕에 그의 체형은 마른 비만에서 잘 빠진 몸짱이 됐다.


실제로 남승우의 몸은 큰 변화를 겪었다. 마른 비만이었는데 복싱을 6개월 하니 군살이 빠지면서 60kg으로 훌쭉해졌다. 이어 체력을 늘리면서 근육이 붙어 63kg의 몸짱이 됐다. ‘몸짱 공부벌레’가 된 것이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 몸짱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란다.

남승우는 2017년 3학년이 되면서 포스(서울대 복싱부)의 주장을 맡았다. 그리고 비록 전적은 볼품없지만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 주문을 넣는 것은 제법 주장다웠다.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서울대)복싱부 얘기를 꼭 넣어주세요. 제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데에는 복싱이라는 운동의 매력도 있지만, 복싱부에서 함께 운동하고 서로 격려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활체육의 장점 중 하나가 운동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승 8패. 그것도 8연패 중인 ‘복서’ 남승우는 역설적으로 한 번도지지 않은, 이 시대 최고의 복서 골로프킨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장차 학자의 길을 꿈꾸는 가운데,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복싱을 할 생각이다. 2승, 그리고 그 다음의 승리를 위해서 말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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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KBI대회 직후의 남승우. 생활체육대회인 KBI는 한 조에 4명씩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는데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해 한 번 지고도 은메달을 땄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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