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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15] 제네시스오픈 개최지 리비에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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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움처럼 조성된 18번 홀 그린. 지평선 나무들 너머 태평양이 살짝 보인다.


1927년 개장 이후 매년 이른 봄꽃이 필 때면 팰리사이드 해안에 인접한 리비에라컨트리클럽(파71, 7322야드)은 LA오픈을 개최했다. 노던트러스트오픈에서 올해부터 현대자동차가 메인 스폰서가 된 제네시스오픈으로 이름을 바꾼 이 대회는 미국 PGA투어 선수와 골퍼들에겐 캘리포니아 드림이다. 선수들은 우승을, 골퍼들은 멋진 코스에서의 라운드를 꿈꾸는 대회다.

서쪽으로 프랑스, 동으로는 이탈리아에 걸쳐 산 언덕과 바다가 급박하게 이어지는 4계절 휴양지가 스페인의 리비에라다. 니스, 깐느, 몬테카를로, 산레모 등 유명한 해안 관광지가 줄지어 마치 ‘목걸이’와 같다고 해서 ‘리비에라’란 이름이 붙여졌다.

롱비치, 산타모니카, 말리부 등 태평양의 환상적인 해안선을 가진 로스엔젤레스의 리비에라CC 클럽하우스 2층 베란다에서 눈을 들면 태평양의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이룬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아래로 시야를 내리면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녹색 필드가 펼쳐진다. 바다가 지척인 데다 산타 모니카 산이 북풍을 막아 겨울에도 춥지않은 휴양지 리조트라서 이름을 리비에라로 지었나 보다.

LA에 좋은 코스는 수없이 많다. 유명한 코스로는 벨에어, LA컨트리클럽, 트럼프내셔널, 란초 팔로버디스, 펠리칸힐스 등이 있지만, 그중에 L.A 해안과 산타모니카 계곡이 만나는 최고의 명당에 앉혀진 코스가 리비에라다. 골프 소비자들이 평가하는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사이트의 ‘세계 100대 코스’ 중 36위에 올랐다. 같은 설계가의 작품으로 21년 개장한 LA컨트리클럽 북 코스는 39위에 올랐다.

마마스앤파파스의 히트곡 ‘캘리포니아 드리밍’ 가사처럼, 영화 ‘중경삼림’에서처럼, 잿빛 하늘과 겨울의 나날을 보내고 봄 기운이 샘솟을 찰라에 일상의 탈출구를 원할 때 꿈처럼 그려지는 골프의 이상향이 바로 리비에라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곳에서 라운드 하는 걸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91년 역사의 코스가 옛 모습을 우아하게 간직한 채, LA를 대표하는 PGA투어가 봄을 알리는 전령처럼 17일(한국시간)부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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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홀에서 올려다본 리비에라. 개장 초기에는 최고급 스포츠 단지였다.


선수와 스타의 자취 어린 91년
세계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에서는 골프붐이 일면서 코스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1922년 LA의 스포츠클럽 부회장인 프랭크 A.가버트는 골프장 부지를 물색하다가 석유업계의 백만장자인 알폰조 벨과 합작해 산타모니카 계곡을 사들였고, 벨에어CC 공사를 마친 촉망받던 코스 설계가 조지 C. 토마스에게 ‘백지수표’를 주면서 최고의 코스를 주문했다.

토마스는 공사 감독 윌리엄 P. 벨과 함께 설계와 공사를 서둘러 26년에 완공했다. 15개 홀이 마무리됐을 무렵 설계가인 앨리스터 매킨지가 방문해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극단을 이룬 코스”라 극찬했다. 매킨지는 훗날 오거스타내셔널과 사이프러스포인트를 설계할 때 리비에라를 떠올리고 참고했을 법하다.

코스 공사비는 총 24만3872달러로 당시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코스로 기록되었다. 그랜드 오픈은 27년 6월24일이었다. 30개의 객실을 가져 ‘골프의 그랜드호텔’로 불린 클럽하우스는 그 이듬해 열었고, 골프장 옆으로는 폴로클럽과 마상마술센터까지 조성한 초호화 골프 리조트로 출발했다.

골프장 운영을 맡았던 더글러스 페어뱅크는 초창기부터 ‘골프장 마케팅’을 펼쳤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두루 코스에 초청했을 뿐 아니라 ‘이 코스에서 70타를 깨면 1000달러 준다’는 이벤트를 열어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미국 골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보비 존스마저도 참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73타를 치고는 자존심이 좀 상한 듯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좋은 코스군요. 그런데 멤버들은 어디서 라운드 하죠?”

본격적으로 코스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는 LA의 오피니언리더 모임인 청년상공회의소가 총 상금 1만 달러를 걸고 1929년에 제 4회 LA오픈을 유치하면서부터다. 맥도널드 스미스가 285타로 우승했다. 이후 LA오픈은 48번을 이곳에서 개최한다. 물론 이 코스와 대회는 스폰서에 따라 닛산오픈, 노던트러스트오픈 그리고 제네시스오픈으로 명칭이 바뀐다.

1945년 한 해에만 18승을 거둔 바이런 넬슨이 우승하지 못한 대회가 LA오픈이었다. 아쉬움이 남았던 그는 46년에 이 대회에 기어코 출전해 우승하고서야 선수 생활을 접고 텍사스로 낙향해 농장을 열었다. 넬슨은 이렇게 회고했다. “리비에라가 미국에서 위대한 코스라고 늘 생각했다. 30~40년대 여기서 열린 LA오픈이 메이저 대회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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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앞에 놓인 벤 호건 동상.


벤 호건과 험프리 보거트
리비에라와 가장 인연 깊은 골퍼를 꼽으라면 벤 호건이다. 그는 47년 이 코스에서 열린 LA오픈에서 우승하더니 이듬해 LA오픈과 US오픈까지 18개월 동안 무려 3개의 큰 대회를 연 리비에라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이후 리비에라는 ‘호건의 오솔길(Hogan's Alley)’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그의 동상이 클럽하우스 후원에 세워진 이유다. 특히 48년에 열린 US오픈은 종전까지 미국 동부에서만 열리던 골프 대회의 전통을 깨고 ‘서부의 루키 발굴’이라는 명제를 걸고 옮겨온 첫 번째 메이저 대회여서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리비에라는 83년에 다시 한번 메이저인 PGA챔피언십을 유치했다. 당시 25살 신예 할 서튼이 잭 니클라우스를 한 타차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50년대에 리비에라CC는 할리우드 영화 무대로도 자주 활용되었다. 51년 벤 호건이 차 사고를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겨 재활하고 대회 우승을 이어간 실화를 영화화한 ‘태양을 따라서(Follow The Sun)’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래이시가 주연한 ‘팻앤마이크’와 ‘캐디’, ‘마크오브조로’의 무대였으며 TV시리즈인 ‘베트맨 로빈’도 리비에라에서 촬영되었다.

토스카나풍의 이탈리아 리조트같은 클럽하우스 뿐만 아니라 코스 구석구석이 당대 스타들의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12번 홀 그린 오른쪽의 높은 무화과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LA오픈을 관전하던 자리여서 ‘보기의 나무’로 불린다. 보가트는 간이 의자에 앉아 보온병에 짐빔 위스키를 챙겨와 대회를 지켜보곤 했다. 바닷바람이 살랑거리고 볕 잘드는 양지에서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프로들이 그린에서 죽 쑤는 걸 지켜보는 터프가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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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그린 옆의 무화과가 영화배우 험프리 보거트의 나무다.


80년대 후반 일본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뉴욕 록펠러센터나 페블비치를 사들이던 시절, 리비에라는 일본 자본에 인수된다. 89년 일본의 부동산, 웨딩사업가인 와타나베 노보루 현 회장이 골프장을 매입하자 초기엔 ‘LA오픈이 열리는 미국의 전통 코스를 일본에 팔았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와타나베 회장은 리비에라의 전통을 보전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대회도 계속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하면서 원성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존폐 기로에 놓였던 LA오픈은 이후 일본 자동차회사인 닛산이 메인 스폰서가 되면서 닛산LA오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이후 20여 년간 닛산오픈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95년에는 메이저인 PGA챔피언십이 한 번 더 열렸고, 98년에는 US시니어오픈까지 개최됐다.

2008년부터는 시카고에 본사를 둔 금융그룹인 노던트러스트가 메인 스폰서가 되었고 대회 명칭은 노던트러스트오픈으로 바꾸어 9년을 개최했다. 첫해와 이듬해는 필 미켈슨이 우승했고 스티브 스트리커, 호주의 애런 배들리가 우승했으며 2015년에는 재미교포 제임스 한, 지난해는 버바 왓슨이 이 대회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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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복도에서 이곳에서 찍은 골프 영화와 이곳의 할리우드스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리비에라 코스는 바이런 넬슨, 벤 호건에서부터, 조니 밀러, 닉 팔도, 프레드 커플스를 거쳐 필 미켈슨, 스티브 스트리커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우승컵을 두고 다퉜던 고색창연한 전장이다. 찰리 채플린을 시작으로, 험프리 보가트, 빌리 크리스탈, 캐서린 햅번, 실베스타 스텔론이 회원으로 혹은 게스트로 이곳을 찾았고 할리우드의 숱한 영화가 만들어진 세트장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국민배우인 와타나베 겐,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여기서 결혼식도 올렸다. 리비에라는 전설이 된 선수와 수퍼스타의 역사가 잘 간직되는 곳이다. 그렇게 세월을 뛰어넘어 과거와 오늘을 연결하기에 리비에라는 명문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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