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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집 아저씨 닮은 소박함의 미학, 앙헬 카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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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브레라는 2009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2009년에 그린재킷을 차지하기 전날 밤, 앙헬 카브레라(Angel Cabrera 1969년9월12일~)는 오거스타에 있는 크로거 매장에서 카트를 밀고 가다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사람, 마스터스 선두를 달리는 사람 아냐?”
“비슷해 보이는데 그 선수가 지금 왜 여기 있겠어?”
“맞아,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많이 닮았어.”

뒤뚱뒤뚱 걷는다고 ‘오리’라는 엘 파토(El Pato)를 별명을 가진 카브레라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상관없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지독한 빈곤 속에서 자라게 되면 냉장고 같은 건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매일 장을 보는 습관이 들었죠. 그리고 부모가 나를 원치 않고 할머니가 나를 외면하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해요. 버디나 파는 내일 걱정하더라도 오늘은 닭고기와 국수를 먹어야죠.”

슬금슬금 배가 나오고 머리도 희끗희끗하지만, 눈빛이 빛나는 사내. 넓은 등에 강한 체력을 지닌 그는 메이저에서 우승하기 전에는 실력만큼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가진 게 두 주먹뿐이었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뒷골목 출신으로 가장 출세한 스포츠인 중에 한 명이 바로 카브레라다.

“누구나 뿌리가 있죠. 저한테는 그게 길거리였어요. 길거리에서 살면 스스로를 방어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워요. 다행하게도 저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거든요.”

거친 싸움꾼 생활이 사회에 길들여지면서 카브레라는 과장될 정도로 공손한 캐디가 되었다. 코르도바에서 캐디를 할 때부터 카브레라는 이런 태도로 유명했다. 그는 거리를 잘 읽었지만, 그를 고용한 골퍼들은 라운드 중에 오히려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의 차분한 태도를 더 높이 샀다. 캐디 출신으로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오른 마지막 선수는 리 트레비노가 아니라 카브레라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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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오크몬트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카브레라는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우승한다.


2007년 US오픈에서 우승하기 불과 몇 주 전에 ‘퍼팅 구루’로 통하는 찰리 엡스와 손을 잡았다. 전문 코치로 눌러앉기에는 엡스는 뛰어난 선수였고, 투어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건 불과 한두 가지 결점 때문이었다. 그는 US오픈과 PGA챔피언십에도 출전권을 얻었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자기 관리.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그걸 내 선수들에게는 갖춰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코치와 제자는 의기투합한 뒤 폰테베드라에서 열린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 참가했지만 카브레라는 컷 탈락했다. 그때 찰리는 카브레라에게 물었다. “리 트레비노가 퍼팅을 하러 걸어가는 걸 본 적이 있나? 시선을 그라운드에 집중하고서? 잔디 결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축구선수처럼 자신의 발과 다리로 잔디를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자네는 맨발로 축구를 해본 적이 있나? 샘 스니드처럼 맨발로 골프를 해본 적 있어?”

이후 카브레라는 1.5m 퍼팅을 한 번에 100번씩 하기 시작했다. 79번째에서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밤늦도록 퍼팅을 했다.
“골프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나?” 엡스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합니다.” 앙헬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훌륭하군, 그건 바꾸지 말게.” 엡스는 짧게 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 달인 6월에 오크몬트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했다. 타이거 우즈는 이 대회에서 2위에 그쳤다. 2009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그린재킷을 입었던 카브레라는 2013년에도 다시 우승을 차지할 뻔했다. 플레이오프를 마친 후에 그가 애덤 스캇을 안아주는 모습은 4년 전에 앙헬 자신이 우승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그렇게 편안할 수 있었을까?

“전 세계에서 40번 가까이 우승하면 스스로 상당히 뛰어난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메이저에서 우승을 한 번, 아니 두 번쯤 하게 되면 안심이 되요. 난 대단했어. 난 대단해. 나는 마침내 이해한 거야.”

카브레라는 인생의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작년(2013년)에 나 스스로가 안쓰러웠던 건 사실입니다. 그걸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쁘게 그의 우승을 축하해줄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이해했으니까요.”

그리고 앙헬은 지난 2014년 46세의 나이에 그린브라이클래식에서 우승을 추가했다. 올해 마흔여덟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꿈이 있다. “물론이죠. 없을 이유가 있나요? 위대한 뭔가를 이미 이뤘더라도 꿈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냥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게 낫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박한 말투에 표현이지만, 그의 플레이는 힘이 있고 노련하고 어떤 때는 치밀하기까지 하다. 그 역시 이제 PGA투어에서 활약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지난 2015~2016년 시즌은 상금 랭킹이 180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매 시즌 20여개의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성적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천연덕스럽게 휘청휘청 오리처럼 걸으면서도 묵묵히 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더없이 장중해보이기까지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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