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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3만 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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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을 세상에 알린 <아웃라이어>(왼쪽)와 2016년 출판된 <1만 시간의 재발견>.


#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10,000 hour rule)’. 하루 3시간-주 20시간씩 10년, 그렇게 1만 시간을 투자하면 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법칙’은 창시자가 조금 헷갈린다. 미국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이 2008년 11월 <아웃라이더>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는데, 여기서 명명된 ‘1만 시간의 법칙’이 유명해졌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사실 이 개념은 안데르스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라며 반발(?)한다. 심지어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도 나왔다. 진짜 원조를 내세워 ‘그냥 오랫동안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 즉 집중, 피드백, 수정하기 등으로 제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능(혹은 환경) VS 노력. 둘 다 중요하겠지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판단이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성공학개론에서 ‘일정 수준의 노력’은 기본인 듯하다.

# 프로농구선수 주희정(39, 서울 삼성)은 두 가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프로농구 97~98시즌. 그가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한 것부터 화제였다. 소속 고려대에서 신기성에게 밀려 좀처럼 경기를 뛸 수 없었고, 여기에 딱한 집안사정이 겹쳤다. 이를 안 농구인들이 고려대를 중퇴하고 ‘특별히’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남들보다 일찍 프로가 된 까닭에 ‘어리고 착한’ 것이 그의 초창기 이미지가 됐다. 농구선수로는 작은 키(181cm)와 유난히 깊어 보이는 눈매도 일조했다. 실제로 당시 일원동에 있던 나래 숙소에서 주방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등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 두 번째는 성실함이다. 이제 꼭 20번째 시즌이 됐다. 우리 나이로 불혹이 된 주희정은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사이, 프로농구 코트를 지켰다. 주희정은 지난 18일 LG 전을 치르면서 정규시즌 통산 998경기 째를 소화했다. 오는 23일 KGC인삼공사 전(안양)에서 사상 첫 1,000경기 출전이 유력하다. 이 부분 2위가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현 KCC 감독)의 738경기이니 주희정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1,000경기는 매 시즌 50경기를 20년 간 뛰어야 가능한 기록이다. 이 어려운 일을 주희정이 해냈다. 20년 간 그가 부상 등의 이유로 결장한 것은 단 12경기뿐이다. 다시 나오기 힘든, 성실함에 관한 불멸의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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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정은 농구선수로 '3만 분의 법칙'을 만들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사진=뉴시스]


# 주희정의 출전시간을 시간으로 환산하며 총 3만 1,044분(517시간)이다. 998경기에서 평균 31분6초를 뛴 것이다. ‘3만 분’은 당연히 우리 프로농구 역사에서는 유일하고, 미국프로농구(NBA)에서 121명밖에 없다. 미국은 병역의무도 없고, 프로농구의 경기수와 경기시간(48분)이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니 세부기록에서도 주희정은 살아있는 신화가 됐다. 통산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어시스트(5,342개)와 스틸(1,495개)은 불멸의 반열에 올랐다. 통산 득점도 5위(8,529점)이고, 3점슛(1,143개)과 리바운드(3,408개)는 각각 2위와 4위다. 3점슛은 원래 주희정의 약점이었는데 20년을 버티다 보니 역대급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꺾다리들의 전유물인 리바운드까지 톱5에 들었으니 ‘오래 버티는 이가 진정한 승자’라는 시쳇말이 떠오른다.

# 주희정은 책이 아니라 몸으로 ‘3만 분의 법칙’을 만들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주)희정이는 가족을 참 중시해요.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부모가 이별하면서, 할머니가 각종 장사를 하면서 홀로 희정이를 키웠죠. 고려대를 중퇴하고, 프로로 빨리 뛰어든 것도 할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서였죠. 농구선수로 성공한 다음에 찾아온 아버지(영화 <친구>에 나오는 부산 칠성파 소속이었다)도 경제적으로 많이 도왔어요. 효자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정이 그리웠는지 결혼 후 아이를 넷이나 낳고,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바보 아빠’가 됐습니다. 농구선수 이전에 아주 괜찮은 사람입니다.” 주희정은 가족 때문에 성실하게 농구를 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주위에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연습을 했다. “선수 30년(아마추어 10년 포함), 그러니까 40살까지 코트에 서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 10년차였을 무렵 주희정이 한 말이다. 약속을 지킨 주희정에게 수적천석(水滴穿石)의 박수를 보낸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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