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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3] 로열카운티다운, 세계 최고의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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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운산을 향해 평평한 곳은 페어웨이 불룩 솟은 곳은 러프다.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 100대 코스에서 매번 1위에 오르는 로열카운티다운은 모은산 아래 평화로운 풍경 속에 치열하고 도전적인 코스가 펼쳐진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바닷가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왠지 통상의 링크스가 주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뉴캐슬 남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857m 높이의 모은(Mourne)산이 있기 때문이다. 높다란 노송으로 둘러싸인 뉴캐슬 마을의 전경이 깊은 역사성을 간직한 듯했다. 클럽하우스 앞뜰에 들어서자 마치 잘 정돈된 대저택 마당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이층 남자 라커룸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진노란 색 고스(Gorse) 꽃에 둘러싸인 로열카운티다운의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 들고 있는 보스턴백을 잠시 놓게 했다. 마치 해저드를 대신해 그 노란색 고스 꽃으로 장식한 듯한 사진은 야광 진노란색의 운해(雲海)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에 녹색 페어웨이가 있다는 것이 아름다움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국 골프장에 ‘로열(Royal)’이라는 단어가 붙은 경우를 많이 본다. 왜 그 단어를 붙일까? 골프클럽에 로열 명칭을 붙이는 것은 영국 왕실이 공식 후원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공식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국왕을 위해 봉직하거나 역사적으로 국가에 크게 기여해야 한다. 현재 유럽에서 로열 타이틀을 가진 골프장은 61곳인데 영국에 34곳, 영연방에 25곳, 그리고 예외적으로 2곳(아일랜드의 로열더블린과 체코공화의 마리안스케 라츤GC)이 있다.

로열더블린은 영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고 하지만 체코공화국은 어떻게 로열이라는 칭호를 받았을까? 그것도 2003년에 현재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수여되었으니 오래된 것도 아니다. 마리안스케 라츤은 1905년 개장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가 개장 행사에 참석을 했고, 그 이후 열 번을 방문했다. 그래서 그곳이 왕실의 별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로열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한다.

로열카운티다운은 사진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TV를 통해서는 그렇지 않다. 대회를 유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회를 치르면서 간직한 역사적인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미국과 영국, 아일랜드의 여자 아마추어 국가 대항전인 커티스컵(The Curtis Cup)이 1968년에 개최된 것이 고작이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손자이자 유명한 골프 작가 버나드 다윈은 ‘무아경의 황홀한 꿈 속에서 라운드하는 곳’으로 이곳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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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로열카운티다운은 벙커 에지 하나 조차 자연스러운 난이도의 정수를 보여준다.


원 오브 베스트의 뒤태
1번 홀에 들어서자 스타터(Starter)가 핸디캡을 물었다. 어딜 가든 백 티나 블루 티에서 치고 싶어하는 일행에게 ‘너무 어려우니 화이트에서 치라’고 권했다. 일행 중 함께 한 유럽PGA프로가 프로증을 보여주며 스타터를 설득하지만 ‘프로는 블루 티, 나머지는 화이트 티에서 치라’고 했다. 스코어야 어떻든 블루 티에서 프로와 같이 치면서 폼이라도 잡고 싶은 우리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화이트 티로 옮겼다. 캐디가 그런 우리를 쳐다보며 대부분의 방문객이 그렇다는 듯 무신경했다. 아마도 많은 아마추어가 그렇게 호기를 부리다가 몇 홀 지나지 않아 제 풀에 화이트로 돌아가는, 웃지 못할 광경을 자주 본 듯했다. 아무튼 하이 핸디캐퍼든, 로우핸디캐퍼든 그런 명문 코스에서는 백 티에 서서 빨랫줄 같은 드라이버 샷을 한 번쯤 날리고 싶은 속성을 지녔다. 그걸 나무란다면 아예 티 박스를 닫아두는 것이 어떨까?

1번 홀 파5, 약간 오른쪽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523야드(화이트 티 기준), 캐디는 ‘오른쪽이 숲이고 바다와 면한 OB니 왼쪽 언덕 방향을 공략하라’ 했다. 드라이버를 들고 샷을 날렸다. 첫 홀이 그렇듯 어깨에 힘을 잔뜩 넣고 왼쪽 언덕으로 당겼다. 물론 오른쪽 숲이나 OB보다는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스타터에게 호기를 부린 장본인으로서 겸연쩍었다.

통상의 아일랜드 링크스가 그렇듯 홀과 홀 사이는 모래 언덕(Dunes)으로 구분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구(砂丘) 위에 코스가 앉아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복 받은 위치라 탄성이 나왔다. ‘1889년에 개장했으니 당시 불도저가 있을 리 만무하고 사람이 롤러를 굴리며 만든 골프장일 텐데….’ 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는 역시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바다와의 경계인 모래사구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해풍과 함께 밀려오는 갯내음까지도 상쾌했다. 오감을 동원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골프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1번 홀 왼쪽 언덕 러프를 전전하다 겨우 보기를 적어냈다. 링크스 코스에서 러프로 향한 볼은 반드시 잠정구를 쳐야 한다. 한 번 러프에 깊게 박힌 볼을 욕심내고 건지려 한다면 러프에서 미식축구처럼 10야드씩 앞으로 전진하다 결국 홀을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근데 그것이 스트로크 플레이라면 그날 전체 경기를 망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반드시 잠정구를 치고 그곳이 깊은 러프라고 판단될 때 잠정구의 포지션을 보고 첫 번째 볼을 아예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그때 뒤를 따라와 깊은 러프 속의 볼을 찾아주고 더블 파를 기다리는 동반자라면 다음 라운드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골프장의 아름다움은 홀 아웃을 하면서 뒤돌아보는 전경일 것이다. 특히 이곳 1번 홀은 그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린다. 반드시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남쪽으로 길게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하얀 집들이 파도를 맞이하고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모은산이 다른 링크스에서 맛 볼 수 없는 아늑함을 준다. 그리고 1번 홀 티박스 밖에 자리잡은 성당의 종탑과 클럽하우스의 붉은 지붕은 산에 드리운 짙은 초록과 어울려 한 폭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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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에서는 군데 군데 방향을 알리는 폴대를 가이드삼아 라운드 해야 하기도 한다.


산 아래의 평화로운 홀
몇 년 전에 다시 찾았을 때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해무와 싸운 적이 있었다. 해무는 바닷물 온도보다 공기가 더 차면 안개처럼 피어나는데 바다에서 그런 광경을 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해무가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아니라 띠를 이루고 있다면 상상이 가는가? 골프장 잔디 위 약 1~2m 상공에 3~5m 높이로 해무의 띠가 퍼져있고 그 위에 불쑥 솟아오른 모은산과 성당의 뾰족한 지붕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못내 아쉽다.

2번 홀 티박스로 올라가면 시원스레 펼쳐진 던드럼만(Dundrum Bay) 해안선이 보인다. 부채살처럼 길게 펼쳐진 백사장이 마음을 열게 하고 뒤를 보면 그 해안선이 모은산의 끝자락과 만나는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심호흡을 했다. 무엇인가 쫓겼던 세상살이의 고통과 번민을 날릴 수 있는 그런 샷이 보장될 것 같았다.

백사장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북쪽으로 뻗은 475야드 파4, 3번 홀은 길면서도 좌우로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벙커는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린 쪽으로 턱이 높아 마치 항아리를 그린을 향해 45도 각도로 박아놓은 형상. 기나 긴 세월 빗물이 흘러 들어가 빗길을 만들고, 그 길은 백이십 년이 넘도록 잔디 깎는 롤러로 밀었으니 오죽하랴.

골프 볼이 찾아서 흘러 들어간다는 표현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생도 때로 돌아가야만 하는 길이 존재하듯, 골프 역시 인생의 축소판이라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페어웨이 벙커에서도 옆으로, 뒤로 볼을 빼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 캐디의 조언에 따라야 한다. 벙커에서 무리한 거리 욕심은 가혹한 징벌이 기다린다. ‘운명은 순종하는 자를 태우고 가고, 이에 항거하는 자는 끌고 간다’는 그리스 철학자 세네카의 잠언이 새삼 진리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 홀은 특히 그린 주위의 벙커를 경계해야 한다. 그린 왼쪽 앞에 도사리는 벙커는 그야말로 사자의 입 속과 같아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 따라서 아이언 샷의 런을 이용해 굴려서 그린에 올리는 스타일이라면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8번 홀은 429야드의 파4 홀인데 핸디캡 1번으로 가장 어렵게 레이팅 되어 있다. 왜일까? 그것은 티 샷이 떨어지는 지점에 좌우로 벙커가 자리 잡고 있고, 다행이 그 벙커를 피해 좋은 티 샷을 만든다 해도 세컨드 샷이 문제다. 그린 앞쪽에 긴 사자의 갈기가 휘날리는 둔덕이 좌우로 자리잡아서 짧다면 피칭웨지로 그 둔덕을 올라가야 한다. 조금 길게 치겠다는 전략 또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린에 가까워지면 알게 된다. 그린이 송곳날 같이 서 있다는 게 적절할까? 일반적인 엘리베이티드 그린으로 스핀으로 볼을 세워야 하는데, 아마추어가 그런 샷을 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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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로리 매킬로이재단이 주관하는 유러피언투어 아이리시오픈이 로열카운티다운에서 열렸다.


세계 100대 코스 여행자
나인 홀을 지나면서 전화로 주문한 샌드위치를 챙겼다. 그늘집이 없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래된 골프장은 ‘식후 골프’가 잘 통하지 않는다. 반드시 전투식량을 챙겨야 한다. 백발의 덩치 큰 노신사가 있는 뒷 팀이 다가왔다. 앞 팀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양에서 온 우리를 대견하다는 듯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노신사의 억양으로 봐서 미국 사람인데 내가 쓰고 있는 올드헤드 모자 로고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당신, 그 올드헤드에서 쳐봤냐고?’

‘물론 쳤으니 모자를 쓰고 있다’며 ‘세계 100대 코스를 탐방하는 투어 중’이라는 말에 라운드 하는 친구도 ‘같은 취미가 있는데 그 코스를 다 돌았다’고 자랑했다. 여행 중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보 교환에 큰 도움이 된다. 미국 100대 코스인 오클랜드힐(Oakland Hill)CC 멤버이고 ‘겨울은 멕시코 별장에서 골프를 하며 지내는데 멕시코가 자랑하는 세계 100대 코스가 2개나 있는 서해안의 산호세델카보(San Jose del Cabo)에서 지낸다’고 했다.

서양 골프장은 비지터(멤버가 동반하지 않은 플레이어)와 게스트(멤버가 동반한 플레이어) 간의 그린피 차이가 워낙 크다. 심지어 내가 경험한 골프장 중 그 차이가 가장 큰 골프장은 런던의 웬트워스(Wentworth)였다. 게스트는 25만원, 비지터는 약 50만원이니 그 차이가 두 배에 이른다.

그러니 그 친구처럼 훌륭한 코스에서 게스트 대접받고 친다는 것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제든 오면 같이 라운드 하겠다’ 했다. ‘자신의 집은 방도 많으니 그냥 와서 지내라’는 이 넉넉한 제안에 감동했다. 옆에 있던 내 친구가 ‘오라면 진짜 가는데?’ 하고 농담을 던졌더니 ‘진짜로 오라’며 끝나고 주소를 교환하자고 했다.

13번 홀은 멀리 펼쳐진 언덕 아래로 하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햐얀 집들은 소위 말하는 캠핑카 카라반(Caravan)이다. 끌고 다니는 것도 있고 일정 장소에 고정시키고 손님들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버스 길이만한 그곳에 많게는 더불 룸 3개에 샤워룸 2개, 거실, 부엌 등 비행기 내부처럼 컴팩트하게 정렬되어 있다. 경비 절감을 위해서는 그런 장소에 예약을 하고 머무는 것도 좋은 추억을 만든다.

이 홀은 보기 드물게 길어 보이지 않는 S자로 생긴 파4 423야드 홀이다. 누구나 S라인을 좋아하겠지만 골프장에서는 모두 싫어하는 것이 S자가 아닐까? 티 박스는 언덕 위에 놓여 있다. 홀이 전체적으로 보이지만 티샷이 떨어질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으로 공략하자니 고스가 빼곡이 자리 잡은 언덕이 러프로 가득했다.

550야드 18번 홀에는 항아리 벙커가 18개가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벙커도 모운산을 바라보며 라운드를 마치려는 골퍼의 즐거움을 방해할 수는 없다. 특히 모은산을 바라보며 붉은색 지붕 클럽하우스를 향하는 길이 아름답다.

Royal County Down 골프장 정보
위치 : 북아일랜드 뉴캐슬, 벨파스트국제공항에서 32km. 약 43분
문의: ++ 44 (0) 284 372 3114 royalcountydown.org
규모 : 18홀(파71, 7186야드)
설계 : 올드 톰 모리스, 해리 바든
특이 사항 : 수요일과 토요일은 비지터 라운드 불가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그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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