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호택의 크로스카운터] 대한민국 격투 대중화, ‘우먼파워’에서 길을 찾다
*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 격투기 칼럼을 선보입니다. 저자는 국내 종합격투기 초창기부터 트레이너, 매니저, 기획자로 일해온 이호택 대표입니다. 격투기 팬 및 독자 여러분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미지중앙

지난 12일 열린 MAX FC 퀸즈리그 결승전에서 박성희가 김소율에게 킥공격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전국민의 시선이 광화문의 촛불로 모였을 때 대구 영남이공대에서는 국내 입식격투기 대회 MAX FC06 뉴제너레이션이 개최됐다. 입식격투기의 새로운 세대를 열고자 야심차게 준비한 이 대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시합은 여성 챔피언 도전권을 놓고 겨루는 원데이 토너먼트 '퀸즈리그'였다.

퀸즈리그는 대회 전부터 여성 원데이 토너먼트라는 사실과 새로운 얼굴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입식격투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남성 선수들도 극복하기 힘든 4강 원데이 토너먼트라는 극악의 시험무대에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앳된 아가씨들이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노르웨이에서 온 ‘암사자’ 캐롤라인 샌드(29, 울산신의/노르웨이), 귀여운 외모로 무한 돌격을 보여주는 ‘4차원 박신혜’ 김소율(21, 평택엠파이터짐), 신인답지 않은 화려한 언변과 쇼맨십을 보여주는 ‘똑순이’ 박성희(21, 목포스타), 청각장애를 딛고 링 위에 오른 ‘불굴의 파이터’ 최하나(20, 군산엑스짐) 등 4명은 각자의 개성과 스토리를 발산했다. 4인4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확실한 선수들이었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는 한결 같았다. ‘여성선수 시합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과감히 깨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날 경기는 4강전부터 불꽃이 튀었다. 참가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백스탭 없는 강공 일변도의 시합을 보여줬다. 시합은 밀고 밀리는 난전 형태를 띠었고, 여자경기에서는 보기 힘은 그로기 상황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관중은 열광했고,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포효했다. 결승전은 박성희가 김소율을 상대로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초대 우승자가 됐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지만, 여성의 팬 역시 여성이다. 실제로 K-POP 걸그룹의 수익창출 70% 이상이 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음원 수익은 물론 패션 잡화, 화장품, 식품까지 실구매권을 가진 이는 여성이다. 프로젝트그룹 '아이오아이'가 이슈가 되는 것은 삼촌팬 때문이지만, 정작 실제 음원 판매 주도권은 ‘비선실세’ 여성들에게 있었다. 이는 여성 소비자 특유의 관심이 소비로까지 이어지는 높은 ‘구매전환율’과 더불어 ‘워너비’에 대한 열망도 한몫 한다.

UFC는 신인 파이터들의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TUF를 통해 기존 마니악한 언더그라운드 이벤트에서 당당히 메인스트림 스포츠로 도약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대중화의 성장동력을 만든 것은 철옹성 같던 ‘금녀의 벽’을 무너뜨린 론다 로우시라는 걸출한 여성 파이터의 등장에 기반한다. 로드FC의 송가연은 비록 현재 법정싸움 중에 있지만 국내 여성 파이터로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회사의 브랜드를 대중 인식에 심어놓는 데 큰 몫을 했다. 송가연의 성공에 고무된 대회주최사는 '걸즈데이'라는 여성부 리그를 발족하겠다고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풀이 작은 국내 MMA 시장에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만한 스타 선수 발굴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5일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TFC13에서 가장 큰 이슈를 만든 시합은 대회 전부터 ‘게거품매치’로 마니아 격투팬들을 뜨겁게 달궜던 정유진(22, 코리안탑팀/㈜성안세이브)과 서예담(24, 파라에스트라 청주)의 대결이었다. 양 선수는 시합 전부터 이례적으로 날 선 신경전과 계체량 현장에서 보여준 몸싸움으로 격투팬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이미지중앙

MAX FC 초대 여성 챔피언 김효선(왼쪽)이 퀸즈리그 우승자 박성희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판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스토리가 덧입혀지기 시작하면 구경꾼은 자연스레 모인다. MAX FC의 초대 여성 챔피언 ‘간호사 파이터’ 김효선(37, 인천정우관)의 경우, 챔피언결정전 현장에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인천팬들만 300여 명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토종 격투선수의 팬덤이 형성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특히 이번 MAX FC 퀸즈리그의 우승자가 결정된 무대에는 사복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김효선이 챔피언벨트를 어깨에 두른 채 당당히 링 위로 올라섰다. WWE나 UFC 남성 챔피언들만의 전유물 같았던 장면이 여성 선수에게 고스란히 전이된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남성 선수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유쾌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챔피언 김효선은 어린 도전자 박성희를 향해 “(내게)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인정했다. 박성희는 챔피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언제든 도전하라고 하셨는데, 그 동안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다. 이제 그 벨트를 내 어깨에 옮겨놓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세련된 마이크 어필로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일본 격투 시장의 침체와 더불어 ‘돈이 되는’ 중국 격투시장의 약진 때문인지 국내 격투기 시장 역시 때 아닌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다. 2016년 들어 종합격투기 관련 국내 신규 단체만 5개가 발족했다. 단순히 대중의 이목잡기나 유행에 대한 무조건적 편승이 아닌, 대회사만의 색깔과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대중의 관심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MAX FC는 그 가능성을 우먼파워에서 찾은 것이다.

* 이호택은 국내 종합격투기 초창기부터 복싱과 MMA 팀 트레이너이자 매니저로 활동했다. 이후 국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격투 이벤트의 기획자로 활약했다. 스스로 복싱 킥복싱 등을 수련하기도 했다. 현재는 마케팅홍보회사 NWDC의 대표를 맡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