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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마리케 베르보트의 리우 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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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표지.


# <어떻게 죽을 것인가>만큼 읽으면서 한장 한장을 무겁게 넘긴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아툴 가완디라는 정말 글을 잘 쓰는 미국의사가,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의 죽음(과정)과 죽어가는 환자들 얘기를 바탕으로 책 제목처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요지는 개별적인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누구나에게 찾아올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잘’ 선택하자는 것. ‘잘’은 인간적인,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자는 의미다. 언뜻 안락사(혹은 존엄사)에 찬동하는 것 같지만 가완디는 분명하게 안락사에 반대한다(생각보다 그 근거가 빈약한데 안락사의 나라 네덜란드의 부작용을 짧게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2014년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소설가 장강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독권유지수’가 제법 높다. 시시콜콜한, 아니 정말 힘든 삶의 고민마저 시답잖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 의사와 죽음 얘기가 나오면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일명 죽음의 의사(Dr. Death) 혹은 '닥터 K(kill과 라스트 네임의 이니셜을 담은 중의적 표현)‘ 등으로 불린 잭 케보키언(미국, 1928~2011)이다. 그는 사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불치병환자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30명이 넘는다. 통상의 ’살인‘과는 다른 까닭에 실정법 위반논란이 일었지만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6번 기소돼 모두 무죄). 그러자 1998년 루게릭병 환자의 안락사를 돕고, 그 장면을 녹화해 미국 CBS방송의 ‘60분’이라는 시사프로그램으로 보내 방영되도록 했다. 그의 의도대로 미국에서 안락사 논란이 크게 일었고, 그는 1999년 70이 넘은 나이에 2급살인죄로 감옥에 갔다. 8년 6개월간 복역한 뒤 가석방됐고, 2010년 그의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 <유 돈 노우 잭(You don’t know Jack)>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주인공 알 파치노가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케보키언은 2011년 사망했다(안락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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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유 돈 노우 잭'.


# 안락사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1942년부터 안락사를 허용한 네덜란드를 비롯해 몇몇 유럽국가들(벨기에 스위스 등)은 이미 합법화했다. 안락사가 금지된 나라의 환자를 초청해 죽음을 도와주는 모임까지 있다. 미국에서도 오리건 주가 닥터K가 감옥에 가기 2년 전인 1997년에 합법화를 결정하기도 했다(이후 몬태나 워싱턴 등의 주도 시행한다). 한국의 경우 2009년 5월 일명 ‘김할머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안락사, 존엄사 등의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도 202일을 더 살았다. 이후 2013년 11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 초안이 마련된 바 있지만, 아직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아카데미작품상에 빛나는 <밀리언달러 베이비>, 스페인영화 <씨 인사이드>, 올해 개봉된 <미 비포 유> 등 전 세계적으로 존엄사를 다룬 영화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 세계가 놀랐다. 며칠 전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한 마리케 베르보트(37 벨기에)라는 휠체어육상선수가 올림픽 후 존엄사를 단행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인간 신체 활동의 최고 경연장이다. 출전 자체가 힘들다. 특히 베르보트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하나씩 딴 최고의 선수다. 그런데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의 언론을 통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안락사였다.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라고 밝혔다. 장례식 계획까지 세워놨다고 한다. 이번 보도의 파장이 커 변수가 생길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 베르보트는 패럴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후 존엄하게 삶을 스스로 마감할 것이다.

# 많은 이들의 가슴이 뭉클해지고 있다. ‘품위 있는 죽음’이라며 베르보트를 격려하는 이도 있고,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워 반대하는 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다. 그 끔찍한 고통을 참으며 그래도 살야한다고 역설하는 것도, 그렇다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죽는 것은 훌륭한 결정이라고 박수를 보내는 것도 말이다. 원문을 찾아보니 현재 그녀의 의지는 단호한 듯싶다. “내 장례식은 교회에서 열리지 않을 것이다. 커피와 케익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건배! 최선을 다한 마리케를 위해서. 마리케 너는 좋은 삶을 살았고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간 거야’”(My funeral, it’s not going to be in a church. It’s not going to be with some coffee and some cake. But I want everybody to have a glass of champagne and to say, ‘Cheers, Marieke. All the best. You had a good life. Now you are in a better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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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패럴림픽 이후 존엄사를 단행하겠다고 밝혀 충격을 던진 마리케 베르포트.


#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가완디 박사에 따르면 그 시간이 어느 정도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죽기 전에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갑작스런 사고가 아닌 경우는 말이다). 열심히 사는 시간, 또 고통을 겪는 그 시간의 폭의 각자 다를 뿐이다. 그러니 누구나 언젠가는 베르보트와 같은 결정의 순간을 맞이한다. 지금의 베르보트는 먼저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일 뿐 미래의 우리인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절로 숙연해지고,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철학과 종교의 영역으로 문제는 넘어간다. 그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또 죽음을 결정하면서 이 원초적인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 베르보트에게 새삼 감사할 뿐이다. 췌장암 발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스티브 잡스도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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