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도 보이듯 우측이 짧은 홍은중학교 운동장.
두 번째 공식전에서 내 포지션은 우익수였다. 사실 이 날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빠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터라 오전 훈련에서도 캐치볼을 걸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참석 인원도 12명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당연히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겠거니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결원이 생겼다. 준비가 되어 있을 땐 좀처럼 오지 않던 기회가 무방비 상태에서 찾아오고 만 것이다. 어깨는 덜 풀려있었고, 경기 직전 외야 펑고 훈련에서는 단 하나의 타구도 잡지 못한 채 경기는 시작됐다.
야구는 분위기와 흐름을 타는 스포츠다. 홍은중학교에서 진행되는 홍은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었던 지난 21일. 1회초 타자일순 긴 수비 이후 공격에서 3점을 만회하며 3-7로 따라붙었다. 추격의 고삐를 막 잡아당긴 터. 하필이면 2회초 상대 중심타선과의 맞대결이었다. 어려운 승부가 예상됐으나 결과는 의외로 허무했다. 2회 수비를 끝내기 위해 필요했던 공은 단 4개였다. 공 2개로 상대 4번과 5번 타자를 손쉽게 투수 앞 땅볼로 처리, 2회말 공격까지는 아웃카운트 단 하나만을 남겨뒀다.
수비 시프트는 ‘신의 한 수’가 됐다. 6번 타자와의 승부를 앞두고 총감독님이 내게 전진수비를 지시했다. 운동장 특성상 우측이 좁아 1루수와 2루수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조금 더 앞으로 당기셨다. 땅볼 타구가 올 경우 어쩌면 우익수 땅볼(아웃)도 노려볼 만한 위치였다. 상대 6번 타자는 우리 팀 선발투수의 2구째를 통타, 1루수와 2루수 사이에 높이 뜨는 타구를 때려냈다. 전진수비를 하지 않았다면 바가지 안타를 맞기 딱 좋은 코스였다.
삼자범퇴로 끝난 2회초 수비. 투수 땅볼 2개의 기운을 받아 우익수 뜬공으로 '필자가' 이닝을 마무리했다.
타구는 아주 정직하게 내가 잡을 수 있는 범위로 날아왔다. 공이 오기도 전에 글러브를 일찍 닫아버리는 나쁜 습관 때문에 하마터면 이날도 공을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글러브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왔다. 공을 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다시금 글러브를 확인했고, 그 안에 있는 공을 보고서 난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흡사 끝내기 홈런을 친 타자 같았다. 후에 이날 2루수로 출장했던 동생은 ‘언니니까 서서 잡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점프해서 겨우 잡거나 놓쳤을 거예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불규칙 바운드 볼에 맞아 턱이 찢어진 뒤 생긴 트라우마가 잠시간 잊혀진 순간이었다. 항상 파이팅 있게 플레이하는 막내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기에 꼭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주고 싶었던 간절함이 통했을까. 공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잡아야한다는 책임감이 그 순간 더 컸던 게 틀림없다. 흔하디 흔한 뜬공 수비 하나에 본인 일처럼 기뻐해준 팀원들의 표정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 표정들 때문이라도 야구를 잘하고픈 욕심이 더 커졌다. 아, 그리고 이날 흥분한 나머지 시합구를 글러브에 넣은 채 덕아웃까지 들어온 건 애교로 봐주시길.
*정아름 기자는 눈으로 보고, 글로만 쓰던 야구를 좀 더 심도 깊게 알고 싶어 여자야구단을 물색했다. 지난 5월부터 서울 W다이노스 여자야구단의 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금 큰 키를 제외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야구와 친해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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