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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9) 길거리 축구로 떠나는 세계여행 - 펠라다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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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 길거리 축구

길거리 축구 한 번 안 해본 사람 있을까요?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전천후 스포츠이기에, 굳이 그라운드가 아니더라도 골목이나 공터에 골대 비슷한 것만 세우면 언제든지 축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축구’가 아닌 ‘길거리 축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길거리 축구는 그라운드에서 하는 정식 축구보다도 훨씬 전에 생겨났습니다. 근대 축구의 원형을 군중 축구(mob football, mass football)라고 부릅니다. 군중 축구는 정해진 그라운드와 규칙 없이 순수하게 공 하나를 가지고 양 팀이 쟁탈전을 벌이는 ‘드잡’에 가깝습니다. 중세 마을의 사내란 사내는 모두 몰려나와서 이웃 마을 혹은 구역 사람들과 서로 공 하나를 두고 난투극을 벌입니다. 파울에 대한 규칙은 단 하나, “죽여서는 안된다(No murder).” 였습니다.

군중 축구의 득점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펼쳐진 들판과 강, 담벼락을 넘어 상대방 마을의 교회나 교수대에 공을 갖다 놓으면 득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혹은 해가 질 때 최종적으로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잉글랜드 애쉬본(Ashborn)에서 연례행사로 펼쳐지고 있는 왕립 사육제 축구(Royal Shrovetide Football)에서는 마을 광장의 동판에 공을 세 번 내리치면 득점으로 인정하는 룰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군중 축구에 대한 기록은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중 유명한 것은 프랑스 인들이 잉글랜드 더비(Derby) 지역을 여행하며 남긴 기록입니다. 당시 더비에서 군중 축구가 열린 후에는 피범벅이 된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곳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이 이런 걸 스포츠라고 부르면, 대체 싸움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말까지 했죠. 오늘날 치열한 라이벌전을 더비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축구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흔해서일까요? 오히려 전세계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축구에 대한 기록은 드문 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두 미국인 연인이 무려 3년간 25개 나라의 길거리 축구를 탐방하여 책을 편찬했습니다. 그웬돌린(Gwendolyn)이 쓴 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펠라다(Pelada)>라는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펠라다’는 포르투칼어로 ‘헐벗은, 맨 몸의, 맨 바닥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맨발로 맨바닥에서 하는 길거리 축구를 ‘펠라다’라고 부릅니다.

길거리 축구 찾아 삼만리

루크(Luke)와 그웬돌린(Gwendolyn)은 평범한 미국 대학생이며 서로 연인 관계입니다. 둘 다 꼬마 때부터 축구 선수 생활을 해 왔죠.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프로 선수 생활에 도전하지만 낙방합니다. 특히 새로 출범하는 여성 프로축구 리그를 꿈꿨던 그웬돌린의 상실감은 더 컸습니다. 축구를 잊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루크와 그웨돌린. 루크는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둘은 무심결에 동네 길바닥에서 축구를 하며 놀다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길거리 축구를 즐길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둘은 젊은 혈기에 여행을 한 번 떠나보기로 합니다. 전 세계를 돌며 각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길거리 축구를 즐기는지 알아보기로 한 거죠. 비디오 카메라와 노트 그리고 공 하나를 들고 미국의 가난한 연인은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길거리 축구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말로 불립니다. 미국에서는 ‘픽업 축구(pick-up soccer)’로, 영국에서는 ‘공차며 빈둥거리기(having a kick-about)’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는 ‘땀 좀 흘리기(taking a sweat)’으로, 브라질에서는 ‘펠라다(pelada)’로 이름도 다양합니다.

먼저 브라질, 루크 일행은 ‘아빠’ 소리는 못 해도 ‘볼’과 ‘골’은 말할 줄 안다는 브라질 꼬마들을 만납니다. 여자 호나우지뉴 (Ronaldinha)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네네(Nene)는 판자촌 공터에서 공을 차며 언젠가 대표 선수가 될 꿈을 꿉니다.

아르헨티나의 빈민가 ‘31 주거지(Villa 31)’. 출입하는 외국인들을 경찰이 만류할 정도로 위험한 동네지만, 막상 공사가 중단된 공터에서 공을 차는 청년들은 해 맑기만 합니다. 같이 공 한 번 차도 되냐고 말하는 루크에게, 일견 불량스러워 보이는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공 차길 원하면, 누구나 공을 찰 수 있다(Anyone who wants to play with us can play with us).”

그들은 아르헨티나의 스타 공격수인 테베즈(Carlos Tevez)도 이런 빈민가에서 컸다며 자랑스러워 합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La Paz). 이 곳에는 희한한 감옥이 존재합니다. 산 페드로(San Pedro) 감옥은 재소자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 수 있습니다. 감옥 안은 마치 도시 안의 작은 도시 같습니다. 감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동 주택 같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도시인들과 마찬가지의 삶을 영위합니다. 경찰과 교도관들은 싸움이나 폭동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만 교도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물론 이 도시, 아니 교소도에서도 길거리 축구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도소 중앙의 삼각형 광장에는 매일 길거리 축구 대회가 열리고, 담벼락에는 교도소 내 축구팀들의 엠블럼이 그려져 있습니다. 루크 일행은 교도소 내 큰 손에게 돈을 건네고 경기에 참여합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루크와 그웬돌린. 그들은 파리의 광장에서, 잉글랜드의 초원에서, 이탈리아의 파스타 식당 골목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과 축구를 합니다. 마침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로2008이 열리고 있었죠. 스페인과 스웨덴의 경기를 보려던 루크 일행은 가짜 표를 파는 암표상에 속아 돈을 날리기도 합니다. 경기장 코 앞에서 쫓겨나는 루크 일행은 대신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사고에 대비해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던 소방관과 구조사들이 앰뷸런스 옆에서 신나게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이지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는 쓰레기장에서 공을 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스틴의 경기장(Austin’s field)’라 불리는 이 경기장에는 항상 오스틴이란 청년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오스틴. 이 곳에서 아이들은 바람이 빠진 공을 차며 놉니다.

남아공에서는 2010 월드컵 준비가 한창입니다. 케이프타운의 공사장에는 인부들이 쉬는 시간마다 헬멧을 벗고 공을 차고 있네요.

중동의 이스라엘. 그 중에서도 가장 갈등이 많은 도시 예루살렘의 중앙에는 작은 축구장이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테러가 일어날 정도로 불안한 정세. 하지만 유태인 청년들과 아랍인들은 서로 어울려 공을 찹니다. 간혹 경기 중에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축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정치적 문제가 아닌 스포츠로만 생각하고 싶다는 이들의 모습은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아시아로 건너간 루크 일행. 그들은 마천루가 솟은 상하이 도심에서 프리 스타일 축구에 심취해 있는 청년들을 만납니다. 또 공을 찰 공간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도쿄 도심이지만, 빌딩 옥상에 설치된 유료 축구장에서 공을 차는 회사원들을 만나죠.

마지막으로 루크와 그웬돌린은 이란으로 갑니다. 미국과 적대적인데다가, 이슬람 원리주의로 인해 여성의 축구 관람이 금지된 이란. 그웬돌린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hijab)을 머리에 둘러씁니다. 그리고 루크와 이란 청년들이 신나게 공을 차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죠.

하지만 경직된 국가 이미지와 달리, 이란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란 아저씨들은 마침내 여자인 그웬돌린이 시합에 참여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이란 정부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 경기를 했다며 경고를 날리죠.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히잡을 쓴 이란 여성들은 따로 모여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란 여성들도 다를 바가 없으며, 똑같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루크와 그웬돌린은 많은 걸 느끼며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3년 간, 25개 국을 여행하고, 미국에 돌아온 그웬돌린. 그녀는 다시 한 번 프로 테스트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아쉽게 낙방하죠. 루크는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결국 로스쿨에 진학하니다. 둘 다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결국 세상의 벽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길거리 축구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경기장에서 보는 현대적 축구보다도 역사가 오래된 길거리 축구. 그것이 군중 축구로 불리건, 펠라다로 불리건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들 각각의 직업, 각각의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남는 시간에 공 한 번 차는 것이 인생의 소중한 목표이고 추억이라는 데에는 차이점이 없었죠.

“For all over the world, many people are playing soccer for nothing."
(온 세상에서, 많은 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축구를 하고 있다.”)

독특한 세계일주를 끝내고 그웬돌린이 노트에 쓴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별 소득 없는 여행이었을지도 모르네요. 하지만 그들은 공 하나로 수많은 친구를 만났죠. 그리고 둘은 여행 중에 결혼을 결정합니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축구도 같이 하겠죠. 지구가 둥근 것처럼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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