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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8) 다시는 인도 축구를 무시하지 말라 - 에가로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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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축구를 무시하지 말라

아시아에서 축구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는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답은 인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가 1871년에 시작된 잉글랜드 FA컵이란 것은 유명한 사실이지요. 그 다음은 스코틀랜드 FA컵으로 2년 후인 1873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로 오래된 대회가 바로 인도의 듀란 컵(Durand cup)과 인도 축구 협회 컵(IFA shield)입니다. 각각 1888년과 1893년 시작되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도가 이렇게 오래된 축구 역사를 갖게 된 데에는 영국 식민 통치의 영향이 컸습니다. 사실 근대적인 인도 스포츠는 식민지 경영을 하던 백인들의 문화가 인도 서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활성화되었죠. 당연히 지배자인 영국인들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생겨났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손기정 선수의 활약처럼 말이죠.

스포츠를 통한 인도인들의 저항 의식이 잘 나타난 영화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크리켓 영화인 <라간(Lagaan)>입니다. 라간은 인도 현지 말로 “세금”을 뜻합니다. 영국 지배자들이 토지세를 과도하게 걷어가자, 화가 난 인도 농민들은 세금 인하를 놓고 영국인들과 크리켓 시합을 벌이게 됩니다. 크리켓은커녕, 스포츠라는 것 자체도 생소해 하던 인도 농민들이 그들을 동정하던 영국 아가씨의 지도 하에 훌륭한 선수로 거듭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화가 이번에 소개할 <에가로 ? 불멸의 일레븐(Egaro: The Immortal Eleven)>입니다. <라간>은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에가로>는 실제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소개했던 인도 축구 협회 컵에서 최초로 영국 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인도 클럽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 인도 축구를 위해!

1911년 인도의 캘커타(Calcutta, 오늘날의 콜카타Kolkata). 이 곳은 절망과 비극으로 가득합니다.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인들은 온갖 방법을 써서 이 아름다운 나라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있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영국군과 경찰에게 끌려가 고문과 폭력에 시달립니다.

그럼에도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고 활동하는 독립 운동가들은 있습니다. 나겐(Nagendra)은 캘커타 독립 투사들의 지도자입니다. 그들은 영국군 지도자를 암살하고, 지하 비밀 신문을 발행하며 독립된 조국을 꿈꾸고 있죠.

사실 나겐은 몇몇 젊은이들의 행동이 못마땅합니다. 바로 영국의 스포츠 축구를 하는 인도인들이죠. 영국 정부는 인도인들이 독립 운동보다는 스포츠에 더 정신을 뺏기도록 하기 위해, 학교를 중심으로 축구를 보급하고 있었습니다. 인도 독립 투사들에게 축구는 가증스러운 영국인들의 음모에 지나지 않죠.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캘커타 최강의 팀인 모훈 바간(Mohun Bagan AC)의 선수들이 그들입니다. 주장인 십다스(Shibdas Bhaduri)는 축구를 통해 패배 의식에 빠진 인도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겐의 밑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라젠(Rajen Sengupta)은 십다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라운드에서 영국인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축구야말로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 여기는 라젠. 하지만 나겐은 라젠이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그를 조직에서 쫓아내죠.

모훈 바간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듭니다. 공격수인 아빌라시(Abhilash Ghosh)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계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모범생입니다. 하지만 아빌라시의 아버지는 영국 지배자들이 가족을 괴롭힐 수 있다며 아들의 축구 선수 활동을 막습니다.

수디르(Suhdir Chatteherjee)는 영국계 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출세한 인도인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영국 교수들의 눈에는 식민지 유색인종일 뿐입니다. 그런 수디르가 모훈 바간의 선수로 참여하자 학교 측은 수디르를 해고합니다.

이처럼 지배자 영국인은 물론, 같은 민족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축구팀 모훈 바간. 축구화도 없어 맨발로 경기를 해야 하지만, 그들은 놀라운 성적을 거둡니다. 인도 축구 협회 컵에서 영국인 클럽을 차례로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한 것이죠. 캘커타의 서민들은 모훈 바간에 열광합니다. 영국인들은 어떻게든 모훈 바간을 방해하려 하죠. 그러나 독립 운동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1911년 7월 29일, 드디어 결승전이 열립니다. 모훈 바간의 상대팀은 백인들로 구성된 이스트 요크셔(East Yorkshire regiment). 경기장을 둘러싼 구름 관중들은 “조국 만세”를 외칩니다. 과연 모훈 바간은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독립을 염원하는 인도인들의 꿈은 이뤄질까요?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인도 스포츠의 저항사

2011년 개봉된 <에가로>는 바로 100년 전, 1911년에 있었던 기적과도 같은 축구 경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봉 후, <에가로>는 많은 역사적 오류로 인해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세한 고증은 물론이고, 독립 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선수들이 실제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되었죠.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영국 경찰과 군대의 무력에 짓밟히는 힘없는 인도인들을 보면 일제시대에 고초를 겪었던 우리 선조들이 생각납니다. 고문에 시달리는 어느 인도 지도자의 모습은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를 연상시키죠. 영국에 항거하는 지하 신문은 독립 신문을,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영국에 저항하는 나겐의 모습은 백범 김구 선생과 상하이 임시 정부를 닮았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 <에가로>는 국가와 민족을 떠나, 식민 지배의 아픔을 겪었던 사람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부상 당해 의식을 잃은 라젠을 향해 두 손을 올려 “조국 만세”를 외치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3.1운동을 보며 우리가 느꼈던 벅찬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부러운 것은, 100년도 더 된 저항의 역사가 현재 인도 스포츠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모훈 바간은 여전히 콜카타에서 경기를 펼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작은 독립 운동의 장이었던 인도 축구 협회 컵은 아직도 매년 개최되고 있죠. 스포츠의 공정함은 약자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는 법입니다. 지금도 축구가 빈부를 떠나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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