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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인평 후기]체육계의 김구라-펜싱 김영호 편
이쯤이면 유남규(탁구)의 달변도, 심권호(레슬링)의 질러버리는 입심도, 박재홍(야구)의 개그감도 뛰어넘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플러레 남자개인) 김영호(45 로러스펜싱클럽)는 “원래 스포츠와 개그맨은 충남”이라는 그의 지론만큼이나 ‘스포츠 인물평전’의 역대급 녹음을 만들어버렸다.

검객이라는 말 대신 ‘칼잡이’라는 표현을 쓰는 김영호는 체육계 재야에서 마당발로 유명하다. 국가대표로 20년 가량 태릉선수촌 생활을 하다 보니, 펜싱은 물론이고 여러 종목의 스타 플레이어와 '절친'이다. 녹음 전 ‘인천으로 간 국회의원 문대성’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고, 심지어 모 정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를 받기도 했다는 뒷얘기도 공개했다.

“선수시절 선후배들과 술마시면서 얘기하는 걸 연습했다(이런 것도 연습하나?). 좋은 얘기는 훈련에 반영했다. 펜싱 후배들을 위해 녹음해서 들려주기도 했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기승전‘술’? 술자리 미화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어쨌든 김영호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모인다. 그래서인지 그가 전국 3곳에 운영하는 펜싱클럽은 경이적인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률을 보일 정도로 크게 성공했고, 지난해부터는 프랑스 의류브랜드 K-WAY가 한국 파트너로 그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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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라디오 '스포츠인물평전'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영호.


술로 만든 가공할 인맥


뻔하기 쉬운 러브스토리도 김영호는 재담으로 풀어냈다. 중3이던 1985년에 한 살 연하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펜싱커플을 이뤘고, 고등학교 때 사실상 ‘처갓집 생활’을 한 후 결혼에 골인했다고. 처음에는 펜싱계에서 ‘김영호가 장가 잘 갔다’는 말이 많았지만, 올림픽 금메달 이후 상황이 역전됐단다.

펜싱얘기도 빵빵 터졌다. 체육계 폭력이 빈번하던 시절. 국가대표로 뽑혀 태릉으로 올라오면 휴가를 줘도 반납하고 소속팀행을 거부했다. 또 시골(논산) 출신이라 태릉선수촌의 ‘호화’음식을 먹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하기도 했단다.

“대학에 막 들어가 태릉선수촌에 갔죠. 당시 맥가이버 머리가 유행해서 뒷머리를 좀 길렀는데,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일단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은 후에 머리 깎고 여기 남을지, 아니면 바로 나갈지 결정하라고 말입니다. 식당 음식을 맛본 후 바로 스포츠 머리로 깎았습니다. 그만큼 저한테는 태릉음식이 좋았어요. ”

선배들에게 펜싱칼로 맞았던 얘기, 한달치 식비가 나오면 지역 선배들에게 하룻 저녁에 다 풀어버린 것, 이것저것 ‘서리’를 하던 스토리 등 다소 낭만적인 시절을 거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으로 이어졌다. 8강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를 만나 종료 30초를 앞두고 13-11(15점 획득하면 승리)로 이기고 있던 김영호. 4강만 올라가면 나머지 선수는 모두 한 수 아래였다. 사실 2000년 신화가 4년 먼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골프로 치면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상대 선수의 휴식 요청이 받아들여져 잠시 후 속개된 경기에서 김영호는 말도 안 되는 역전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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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는 183cm인데, 시드니올림픽 때 은, 동메달리스트가 워낙 커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1996년 애틀랜타의 비화

“다음 날 바로 귀국이었기에 한인타운으로 이동해 밤새 술을 먹었어요.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먹었어요.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김포공항이었어요. 선배들이 화물카트로 저를 실어서 비행기에 태운 거죠. 운동을 그만둘 생각으로 칼은 아예 애틀랜타에 버리고 왔고, 한달동안 방황했죠. 그리고 다시 칼을 잡았고, 제가 생각해도 독하게 운동했습니다.”

시련은 또 있었다. 1998년 가슴 기흉으로 폐가 찟어져 1/3을 도려내야 했다. 이걸 이겨내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의 펜싱 금메달 신화를 만든 것이다. 수술 당시 절친 이봉주와의 음주일화도 엽기 수준이다. 수술 후 입원해 있는데 이봉주가 ‘위가 아니니 괜찮다’며 술을 사들고 왔고, 이 때문에 양쪽 겨드랑이 밑의 상처가 덧나 흉터가 커졌다는 것. 수술한 사실을 모르는 노모는 여름철 김영호의 몸을 보고는 ‘넌 왜 젖꼭지가 4개냐?“고 물었단다.

2000년 금메달 스토리는 직접 방송을 듣는 편이 낫다. 김영호는 “정말 사람 좋아하고, 술자리 즐긴다. 올림픽 이후 사람들을 만나서면서 쓴 돈만 모아도 집을 두 채는 샀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세계 펜싱의 패러다임을 바꾼 한국 펜싱은 그 시작에 김영호가 있다. 김영호는 이 외에도 숙이면 찌를 데가 없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남현희, 플러레 예찬론, 펜싱 유망주인 딸 이야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뒷얘기, 이봉주와의 진한 우정 등을 ‘스포츠인물평전-김영호 편’에서 소개했다.

<김용민 최익성의 스포츠인물평전>은 지식라디오를 통해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방송되며, 이후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einer6623@unicon.co.kr]

*김용민 최익성의 스포츠인물평전 해당 회차 다시듣기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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